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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국 야구가 일본을 격침시킨 데 이어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 야구를 이겼다. 이는 선린을 중시해야 하는 외교무대에서 매우 우려되는 일로, 일본과 미국을 자극해 새로운 무역장벽이 생기거나 동북아 안보에 구멍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지난번 한국 야구가 미국팀을 이겼을 때 한나라당의 이계진 대변인(사진)이 이런 내용의 코믹한 논평을 낸 적이 있지요. 한 마디로 한국팀이 일본과 미국을 격파하는 바람에 한미일 동맹에 균열이 생기게 생겼다는 즐거운 너스레입니다.

웃을 '소(笑)'자 소변인이 되겠다던 이계진 대변인. 한국팀의 승리를 축하하며 함께 웃자고 낸 논평인데, 이게 엉뚱하게 네티즌들의 비난만 사고 말았네요. 황당한 일인데요. 이 사회는 농담을 농담으로 들어주는 여유도 없나 봅니다.

이계진 대변인이 그 논평에 대해 "무조건 사과"를 했습니다. 앞으로 웃을 '소(笑)' 소변인의 딱지도 떼겠답니다. 표독스런 망언을 싸던 '대변인'(大便人)이 유머를 아는 '소변인'(笑辨人)으로 교체된 뒤, 한나라당 논평의 격조가 높아진 게 사실인데, 이번 일로 '소변인'을 그만 두겠다니 유감스럽네요.

문제의 논평은 '한·미·일 동맹'을 강조하는 한나라당의 경직성을 스스로 비웃는 자기 풍자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자기를 보고 웃을 줄 아는 여유가 묻어나는 논평이죠. 표준적인 국어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 논평이 반어법으로 된 농담이라는 것을 알 겁니다. 그걸 왜 직설법으로 받아들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정치적으로 워낙 살벌하게들 싸우니, 농담을 농담으로 웃어넘기고, 반어를 반어로 이해해주는 언어의 여유마저 사라진 모양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사회를 이토록 각박하게 만들고, 네티즌들의 사고를 이토록 경직되게 만들었는지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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