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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인근의 집시마을 '키르티메이'. 지난 2004년 겨울 철거 후 사진 속의 집에서 4가족 16명이 모여살고 있다. 그들의 한 달 수입은 1만5천 원에 불과하며 일 주일에 서너 끼 밖에 먹지 못하는 극빈곤층이 대부분이다.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인근의 집시마을 '키르티메이'. 지난 2004년 겨울 철거 후 사진 속의 집에서 4가족 16명이 모여살고 있다. 그들의 한 달 수입은 1만5천 원에 불과하며 일 주일에 서너 끼 밖에 먹지 못하는 극빈곤층이 대부분이다. ⓒ 서진석
"정말 저 안에 들어갈 거예요? 저 안에 들어가면 마약중독자들이 잔뜩인데..."

키르티메이로 가자고 했을 때, 택시기사가 내게 던진 말이다. 키르티메이는 리투아니아 최대 집시 군락소로 세 개의 집시 군락이 모여 있는 곳이다.

간신히 택시기사를 설득해서 마을로 들어서니 3월임에도 눈이 수북하다. 입구로 들어서니 집시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집시들로부터 외부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모를 경찰초소가 떡 하니 세워져 있다. 그 옆으로 마을에서 유일하게 번듯한 건물 하나가 보인다. 리투아니아 집시연맹 사무소다. 집시연맹사무소를 제외하면 집이라고 부르기도 뭐할 정도로, 나무판자와 천조각을 얼기설기 세워 만든 판잣집들이 대부분이다. 더러 지붕과 벽을 제대로 갖춘 집들도 보였지만 허름하긴 마찬가지다.

대낮이었지만 동네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을씨년스럽다. 얼기설기 얹어놓은 판자가 추위나 제대로 막아줄 수 있을까. 더 놀라운 것은 조그만 판잣집에 3~4세대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집시연맹에 따르면, 이곳에 사는 집시 대부분은 직업이 없다.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직업이 없는 집시들은 그 많은 식구를 먹여 살릴 능력이 없어서 굶주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어린아이가 있는 집은 한 달에 50리타스(15000원) 정도를 지원받을 수 있지만 새 발의 피일 뿐이다.

다행히 인근 숲에서 장작이라도 구해다 불을 지필 수 있는 집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그것도 일부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인 듯 보였다. 연기조차 피어오르지 않는 집들은 마치 흉가처럼 보였는데, 누군가 큰 소리로 싸우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걸로 보아 분명히 사람은 살고 있었다.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시내에서 불과 15km 거리, 그곳은 전혀 다른 나라였다. 왜 집시들은 이런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됐을까.

성기절단과 이동제한, 집시들은 왜 차별받았나

오랫동안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 속에서 살아온 집시들. (사진 출처: 리투아니아집시연맹)
오랫동안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 속에서 살아온 집시들. (사진 출처: 리투아니아집시연맹)
유럽에서는 집시들을 '로마(Roma)'이라고 부른다. 현재 유럽 전역에 약 850만 명의 로마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 중 250만 명이 루마니아에 밀집해 있다. 리투아니아에 집시가 처음 들어온 것은 16세기경 폴란드를 통해서다. 리투아니아에 살고 있는 집시들은 발트 3국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작은 규모다. 약 3천 명으로 추산되는데 그중 450명이 기자가 방문한 키르티메이에 모여 있다. 리투아니아 집시들의 생활환경은 루마니아와 함께 가장 열악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한 번도 나라를 만들지 못한 약소민족이었지만, 집시들은 수 백 년 간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지켜낼 만큼 놀라운 생활력을 지닌 민족이다. 그러나 그들의 권리와 권익을 보호해줄 나라를 한 번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다. 중세시대에는 다른 이들과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 때문에 마녀사냥의 주 대상이었고, 2차대전 중에는 유대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가 강제수용소에서 희생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집시들은 유럽 내 가장 열등한 민족으로 분류되어 강제노동과 학살에 목숨을 잃거나, 씨를 말린다는 명목으로 행해진 불임수술과 성기절단을 겪기도 했다.

그들의 비극은 현대사로 넘어오면서도 나아지지 않았다. 2차대전 후 리투아니아가 소련의 공화국으로 복속되면서 이곳에 살고 있던 집시들의 운명은 더 나빠졌다.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유랑생활을 해오던 그들에게 1956년 소련정부가 유랑금지조치를 내린 것. 이주의 자유를 박탈당한 그들이 모여 형성된 곳이 키르티메이 군락이다. 집시들을 향한 고질적 탄압과 불평등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1991년, 리투아니아가 독립을 맞고 이동제한도 풀렸지만 집시들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 빈곤은 깊어졌고, 교육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집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취업이 거부됐다.

합법적으로 사회구성원이 될 수 없던 상황에서 집시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불법을 통한 연명이다. 소매치기와 경범죄가 증가하고, 상당수의 집시는 마약거래를 통해 수입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런 삶은 그들을 더욱 옥죄어 왔다.

마약밀매 : 차별은 곧 불법을 낳고

'집시들의 천사'로 불리는 니콜라스 타마레비츄스(가운데). 리투아니아 집시들의 사회 참여와 자기계발을 위한 교육을 담당하는 활동가 중 한 명이다.
'집시들의 천사'로 불리는 니콜라스 타마레비츄스(가운데). 리투아니아 집시들의 사회 참여와 자기계발을 위한 교육을 담당하는 활동가 중 한 명이다. ⓒ 리투아니아집시연맹
키르티메이는 빌뉴스에서도 개발이 가장 덜 된, 낙후지역으로 손꼽힌다. 이 지역의 상당수의 집시가 마약중독 또는 마약 밀매자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빌뉴스 시민들이 가장 혐오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집시들은 비교적 재배가 용이한 양귀비를 마당에 키우면서 주변 마을에 팔기 시작했고, 그 소문을 듣고 마약중독자들이 마을에 찾아들면서 집시마을은 곧, 마약밀매지역으로 낙인찍혔다.

그런 가운데 2004년 경, 집시마을 입구에 경찰서마저 들어섰다. (결국 경찰초소는 집시들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집시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 단출하게 세워진 경찰초소지만 초소가 지니는 위협은 대단하다. 집시마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마약거래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지만,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집시들의 생각은 그렇지가 않다.

ECRI의 보고서에 의하면 리투아니아 집시들이 겪는 불평등과 차별은 리투아니아 언론의 몫이 크다. 리투아니아의 언론매체들은 근 몇 년간 유대인, 체첸, 집시들에 대해서 부정 일변도의 정보만 내보내 대내외적으로 많은 지탄을 받았다.

집시에 관련된 차별적인 보도행태가 파문을 일으킨 대표적 예가 2004년 12월 초 빌뉴스 시가 집시들의 집 여섯 채를 철거한 사건 때였다. 당시 빌뉴스 시는 그 마을에 있는 집들이 허가 없이 불법적으로 만들어져 화재 등 재해발생이 우려되고 마약거래 위험도 있어 철거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유럽 내 인권단체들은 이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집시구역에 세워진 집들 중 적법한 절차를 거쳐 지어진 게 거의 없다는 점과, 철거 전에 거주 집시들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고 새로운 거주지를 마련해주지도 않았다는 게 이유다.

더욱이 빌뉴스 시가 이들 집을 철거하면서 나뭇조각까지 가져가버려 한겨울에 집시들을 한파 속에 버려두었다는 것도 지탄의 대상이 됐다. 특히 빌뉴스의 이런 모든 행태가 아르투라스 주오카스 시장이 수뢰혐의로 여론의 초점이 되려고 할 때 터져 나왔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의도가 명백하다는 것. 그러나 언론들은 이런 사실을 집시들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현재 집시마을의 철거에 관한 법적 소송이 진행 중이며, 조만간 법원의 판결이 나올 예정이다.

유럽 인권의 척도는 집시에 대한 처우

키르티메이에서 살고 있는 집시들. 리투아니아 집시연맹은 이들의 사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키르티메이에서 살고 있는 집시들. 리투아니아 집시연맹은 이들의 사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리투아니아집시연맹
물론 리투아니아 정부가 집시들의 문제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리투아니아 내무부 소속 소수민족 및 이민자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차원으로 집시들의 사회참여 및 정착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2000년부터 5년에 걸쳐 '집시들의 리투아니아 사회적응 발전계획'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 결과 키르티메이에 전력이 공급되고 수도시설이 설치됐다. 2001년에는 리투아니아 집시연맹의 건물도 마련됐다. 그곳에서 집시 어린이들에게 교육을 하고 운전면허와 자격증취득을 돕는다. 또 판잣집과 천막이 대부분인 키르티메이에 별도로 보호소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집시들은 리투아니아의 이런 정책에 별로 호응하지 않았다. 리투아니아는 이에 대해 집시들이 천성적으로 주변사회와 융합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분석했으나 키르티메이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집시들이 러시아어 뿐 아니라 리투아니아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면 맞지 않다. 현지 집시들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은 발전계획에 장단 맞추기 싫었던 것. 현재 ECRI는 집시들의 의견을 수렴한 제2차 발전계획을 수립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리투아니아의 인권단체들은 어떤 종류의 차별도 근본적으로 금지하는 유럽인권협약(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12의정서를 발효하도록 리투아니아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문제는 리투아니아 내에서 비정부기관이 나설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 자신이 직접 나서서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한 제3자의 간섭은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한다. 아직 리투아니아 집시들 대부분이 문맹자라는 사실을 보면 '자신이 직접 나서서'라는 것은 요원한 상황이다.

그러나 리투아니아 집시문제를 향한 유럽의 곱지 않은 시선은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CRI의 보고서를 통해서 인권문제에 대한 뭇매를 맞은 리투아니아는 유럽연합 가입 이후 산적해 있는 여러 문제에 또 한 짐을 덤으로 안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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