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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철 입맛 돋구는 비빔국수 한 그릇 드세요
ⓒ 이종찬
"상남시장 하모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예"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국 장사치들 사이에 상남시장 하모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예. 오죽했으모 다리 밑에 천막을 쳐놓고 사는 거지들도 상남시장이 열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으니까예. 아쉽기도 하지예. 그나마 요즈음에도 4자와 9자가 붙은 날 상남 상가를 중심으로 어슬픈 장이라도 서니까 다행이지예."

요즈음에는 상남시장(경남 창원시 상남동)이 반듯한 상가로 탈바꿈했지만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앞만 하더라도 상남시장은 창원 일대에서 손꼽히는 오일장이었다. 그때 상남시장은 소시장에서부터 낫, 호미, 부엌칼 등을 만드는 대장간, 나무시장, 옷시장, 한약시장, 각종 먹거리시장 등 그야말로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만물시장이었다.

게다가 상남시장이 서는 날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갖 희귀한 물건을 우마차에 싣고 몰려든 상인들과 그 물건을 사려고 창원, 마산, 진해, 김해 등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잔칫날이 따로 없었다. 상남시장이 서는 날이 곧 상남면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들판이 마구 들썩거릴 정도로 시끌벅적한 잔칫날이었다.

그중 지금도 쉬이 잊혀지지 않는 풍경이 있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상남시장 들머리 길가에 걸린 커다란 가마솥에서 구수한 내음을 풍기며 팔팔 끓고 있는 멸치국물… '아지메! 국수 한 그릇'하면 커다란 대접에 허연 국수와 나물을 담아 순식간에 허연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멸치국물을 듬뿍 부어 주던 아주머니의 땀방울 송송 밴 콧잔등….

▲ 이 집에서는 양념장 재료로 조선 간장을 쓴다
ⓒ 이종찬
▲ 잘 비벼진 비빔국수 한 그릇
ⓒ 이종찬
"어머니의 어깨 너머로 국수 만드는 법을 배웠어예"

"처음 국수 장사를 할 때는 시장에서 파는 좋은 멸치를 골라 (멸치로만) 국물을 냈지예. 근데, 인공 조미료에 입맛이 길들여진 손님들이 국물맛이 좀 심심하다 그래예. 그래서 무와 다시마를 멸치와 같이 넣고 국물을 우려냈지예. 그 뒤부터는 손님들이 국물맛에서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진다며, 다른 손님들까지 모시고 자주 찾아와예."

지난 10일(금) 오후 4시에 찾았던 국수전문점 '상남원조촌국수'(창원시 상남동 재래시장 3층). 이 집 주인 손만지자(63) 씨가 바로 그 옛날 오일장이 서는 상남시장 들머리에서 오가는 손님들에게 값 싼 국수를 말아팔던, 배고픈 거지들이 찌그러진 깡통을 내밀면 그저 손에 잡히는 만큼 국수를 덜어주고 맛깔스런 멸치국물을 듬뿍 부어주던 그 살가운 아주머니다.

30년이 훨씬 넘게 국수를 삶아 팔았다는 손씨는 "어릴 때 울타리도 없는 손바닥만한 자리에서 국수를 삶아 파는 어머니의 어깨 너머로 국수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이어 "국수 맛은 곧 국물맛 아니겠어예? 특별한 거는 없고 멸치, 무, 다시마 같은 거 듬뿍 넣어 오래 끓이면 구수한 국물맛이 나게 되어 있어예"라고 귀띔한다.

나그네가 손씨에게 "이름이 참으로 특이하십니다"라며, "진짜 본명이 맞습니까"라고 묻자 고개를 까딱한다. 나그네가 다시 "손을 만지자 금세 맛깔스런 국수가 되어 나온다는 이름 같습니다"라고 하자 손씨는 아무런 말없이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한다. 마치 타고날 때부터 '너는 음식조리를 하라'는 뜻에서 일부러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는 듯이.

▲ 매콤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비빔국수
ⓒ 이종찬
▲ 옛날 재래시장에서 먹던 그 비빔국수의 맛이 여기 있소이다
ⓒ 이종찬
"음식을 직접 만들어야 마음이 놓인다"

"물국수는 국물맛이지만 비빔국수는 양념맛이지예. 저희 집은 양념을 만들 때 메주로 직접 담근 조선간장을 써예. 조선간장을 쓰지 않으면 깊고 은은한 감칠맛이 나지 않지예. 저희들은 물국수의 국물을 낼 때에도 가스불을 사용하지 않고 연탄불로 은근하게 오래 우려내지예."

이 집에서 비빔국수(3500원)와 물국수(3000원)를 만드는 방법은 쉬워 보인다. 먼저 국수를 삶은 뒤 얼음물에 담갔다가 건져내 쫄깃한 면발을 만든다. 이어 커다란 대접에 국수를 넉넉하게 담고 열무김치, 봄나물, 당근, 부추, 파저리, 김가루, 통깨, 달걀지단 등을 올린 뒤 이 집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독특한 맛의 고추장을 듬뿍 올리면 그만이다.

물국수 또한 그리 어렵지 않다. 물국수는 커다란 대접에 쫄깃한 국수를 푸짐하게 담고 미리 버무려 둔 여러 가지 봄나물을 보기 좋게 올린 뒤 양념을 올려 김이 무럭무럭 나는 구수한 맛국물을 부으면 끝이다. 여기에 따라 나오는 송송 썬 매운 고추를 입맛에 따라 적당히 넣어 국물에 말아먹으면 매콤하면서도 시원한 물국수로 탈바꿈한다.

"음식은 좋은 재료를 골라야 하고, 직접 만들어야 마음이 놓인다"라고 말하는 손씨. 그러고 보면 이 집 국수맛의 비결은 전통 간장과 손씨의 손끝에서 나오는 듯하다. 손씨는 "봄철 입맛이 없을 때는 국수가 가장 먹기 좋은 음식"이라며, "국수는 소화가 아주 잘 되기 때문에 푸짐하게 먹어야 한 끼 식사가 된다"고 귀띔한다.

▲ 그릇 안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 듯한 물국수
ⓒ 이종찬
▲ 바삭거리는 고소한 맛이 일품인 파전
ⓒ 이종찬
코 속으로 상큼하게 불어오는 맛바람

이 집에서 자랑하는 파전(4000원)을 안주 삼아 마시는 북면 막걸리 맛도 끝내준다. 널찍한 접시에 두텁게 구워 나오는 파전이 마치 뻥튀기를 씹는 듯 바삭거리는 게 아주 맛이 좋다. 특히 이 집 파전은 여느 집에서 나오는 물컹거리는 파전과는 달리 씹으면 사그락 소리가 날 정도로 노릇노릇하게 구워내는 데 있다.

걸쭉한 북면 막걸리 한 사발을 달게 마시고, 고소한 맛이 나는 파전을 뜯어먹는 맛은 그 어디에도 비길 수 없다. 파전 속에 든 홍합과 낙지의 쫄깃쫄깃거리는 맛도 기가 막힌다. 밑반찬으로 나온 무말랭이무침의 부드럽고도 달착지근한 맛과 태양초로 벌겋게 담근 깍두기가 아삭아삭 씹히는 맛도 일품이다.

달착지근한 북면 막걸리 내음. 씹을 때마다 바삭거리는 고소한 파전. 어머니의 손길이 묻어나는 듯한 무말랭이무침. 새콤달콤 끝없이 혀를 희롱하는 비빔국수 한 그릇과 국물맛이 시원하면서도 뒷맛이 깔끔한 물국수 한 그릇. 코 속으로 상큼하게 불어오는 맛바람. 언뜻 풀내음 향긋한 봄 속에 앉아있는 듯하다.

음식값 또한 몹시 싸다. 끼니때가 아니어도 이 집에 옛 상남시장처럼 손님이 북적거리는 것은 음식맛도 기막히지만 무엇보다도 국수 양이 푸짐한 데다 값이 싸다는 데 있다. 북면 막걸리 한 병(1.8L, 3000원)과 파전, 비빔국수, 물국수 한 그릇을 시켜먹어도 1만3500원 밖에 되지 않는다.

▲ 북면 막걸리 한사발과 먹는 파전의 맛이 끝내준다
ⓒ 이종찬
▲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지는 무말랭이무침
ⓒ 이종찬
온 몸이 나른하게 풀리면서 입맛까지 떨어지는 봄날.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지만 가까운 벗들과 어울려 막걸리 한 사발도 기울이고 맛깔스런 음식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싶다면 이 집으로 가자. 가서 푸짐하게 나오는 국수만큼이나 푸짐한 손씨의 살가운 인심도 맛보고, 떨어진 입맛도 되살려보자. "국수, 넌 이제 죽었다."

▲ 이집 비빔국수는 쫄깃거리는 맛과 부드럽게 넘어가는 뒷맛이 아주 좋다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서울-대진고속도로-진주나들목-남해고속도로-동마산 나들목-창원역-명곡로터리-창원시청-롯데백화점-상남재래시장-국수전문점 '상남원조촌국수'   

※'U포터 뉴스', '시골아이 고향' 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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