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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배꽃
아그배꽃 ⓒ 이승숙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소싸움과 씨없는 감으로 유명한 경북 청도에 시조공원이 만들어집니다. 청도 출신인 이호우-이영도 남매를 비롯해 정철, 황진이, 이병기, 정인보 등 조선시대와 근현대 시조시인 45명의 시비가 건립됩니다. 시조 문학관을 비롯하여 상징 조형물과 산책로 등을 갖춘 ‘청도 시조 공원’이 만들어집니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다 고향 같습니다. 그 곳에서 만난 사람은 등이라도 치고 싶을 만큼 반가운 이들일 것입니다. 어느 집에 들어서도 반갑게 맞아 줄 것 같습니다. 살구꽃 핀 마을은 우리 모두의 마음 속 고향입니다.

생가 안마당에 있는 이호우. 이영도 남매 시인의 시비
생가 안마당에 있는 이호우. 이영도 남매 시인의 시비 ⓒ 이승숙
‘살구꽃 핀 마을’을 쓴 시조시인 이호우는 경북 청도군 유호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유호리는 청도읍에서 경남 밀양 방면으로 가다가 유천에서 좌회전해서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청도군의 골짝 골짝을 훑어 내려오던 강들은 유천에 와서 비로소 큰 강이 됩니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처럼 재치발랄하게 굽이쳐 내려오던 여러 강들이 유천에 모여서 낙동강과 한 몸이 됩니다.

유천은 예전에 꽤 큰 동네였습니다. 사방 50리 안팎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장이 열리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의 무심함은 그 곳이라고 비켜갈 리가 없었습니다. 다른 농촌 마을들과 같이 유천도 쇠락해가고 있었습니다.

원래 있던 찻길을 비켜서 왕복 4차선의 새 길이 뚫렸습니다. 그래서 차들은 유천을 스쳐 지나가 버립니다. 소비를 많이 하는 젊은 인구는 자꾸 줄어들고 대형 마트들이 생기자 유천장도 빛이 바래어져 갔습니다.

멈춰버린 시간
멈춰버린 시간 ⓒ 이승숙
시인의 생가를 찾아 나선 길에 본 유천은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길 가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여러 채 줄지어 있었는데, 마치 70~80년대를 재현한 드라마의 세트장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시인의 집은 큰 길 가를 약간 벗어난 골목 안에 있었습니다. 씨없는 감의 고장답게 감나무가 집 안팎에 여기 저기 서 있었고 자갈돌과 흙을 한 층 한 층 켜켜이 쌓아서 만든 담장도 정겨웠습니다. 집 뒤 안에는 대나무가 푸르게 일렁이고 있었고 뜰에는 시린 겨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햇살이 조용히 머물고 있었습니다.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시인이 태어난 집
시인이 태어난 집 ⓒ 이승숙
시인은 이 집에서 태어나서 이 마당에서 뛰어 놀았겠지요. 감꽃이 필 때면 감목걸이를 만들어서 목에 걸고 놀았겠지요. 여름이면 동네 앞으로 흐르는 강에서 물장구치며 놀았을 테고 가을이면 붉게 익은 홍시를 달게 먹었겠지요.

아! 시인은 멀리 있지 않았어요. 시인은 바로 우리들의 어릴 때 모습을 지니고 있었어요.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집, 감나무가 지켜주고 푸른 대가 일렁이는 집을 보면서 나는 시인이 아주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청도가 낳은 시조 시인 이호우님의 시를 다시 한 번 가만히 암송해 봅니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 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초당(草堂)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덧붙이는 글 | 우리 민족은 노래 부르기와 춤 추기를 즐기는 흥이 많은 민족입니다. 유흥의 자리에서 시 한 수 읊는 여유와 운치를 누려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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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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