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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다시 희망의 바람을 불게 하는 것은 이 분의 소명인 듯하다.
농촌에 다시 희망의 바람을 불게 하는 것은 이 분의 소명인 듯하다. ⓒ 이우성
시아버지는 벌써 55년 전 이곳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곳을 꿈꾸며 아리랑 농장을 만들고 채소 품종 육성과 채종을 시작했다. 45년 전에는 동백나무 200그루를 야산에 심어 동백 동산을 만들었다. 그 나무들이 말없이 우람하게 자라 주인에게 받은 정성을 고스란히 이곳에 발길이 닿은 외지 사람들에게 큰그늘을 드리우며 자연이 빚은 선물로 돌려주고 있다.

충남 서천 합전마을에서 만난 최애순(47)씨는 20년 전 결혼하여 이곳에 들어와 선대가 만들고 꿈꾸었던 그 '세계의 중심지'를 활짝 꽃피우고 있는 여성농민이다. 일찍이 누구보다 먼저 그린투어리즘을 실천하고 한국농촌의 모델을 만든 장본인.

그는 이제 다른 꿈에 부풀어 있다. 새로운 농촌가족공동체 모델로 실버농장을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펼치려고 한다. 아름다운 아리랜드에서 막 터뜨리기 직전의 동백꽃이 수줍은 듯 봄 햇살을 기다리고 있다.

"결혼하고 첫아이를 낳은 후 외로움을 견디기 어려웠다. 어디에서 산들 그런 고충이 없으랴마는 또래가 없는 곳에서의 견딤은 외로웠다. 그때 결심했다. 내 삶은 이제부터 여성농업인들과 함께 하는 삶이라고. 이제부터 이런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리라 결심했다. 누구의 관심이 없어도 내 갈 길을 간다. 여전히 내 삶터인 이 농촌과 여성농민을 위한 일을 계속하리라. 던져주는 물이 아니라 땅속을 비집고 뿌리를 내려 물줄기를 찾아내어 자생하리라."

아리랜드 홈페이지(www.ariland.net)에 쓴 최씨의 글이다. 선구적인 농촌마을을 만들기 위해 왜 몸과 정신의 고통이 없었겠는가. '동백축제가 열리는 마을'로 더 잘 알려진 아리랜드는 6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대물림이 이어지는 곳이다. 일찍이 정순보 선생이 이 땅이 세계의 중심지가 되기를 기도하며 나무를 심고 가꾸었던 곳. 지금은 아들 정의국(49), 최애순 부부가 유지를 이어 생명 농업의 중심을 꿈꾸고 있다.

아리랜드가 있는 합전마을은 금강이 서해바다에 와 닿는 곳에 있는 조개모양(蛤田)의 마을로 87농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어촌과 산촌과 농촌이 적절히 조화되어 있는 곳. 쌀과 한산세모시, 소곡주, 주꾸미, 전어, 꽃게, 김, 멸치 등이 생산되고 있다. 특히 합전마을은 주민 공동으로 죽염과 죽염된장, 간장, 토종돼지를 키워 경제 자립을 이루고 있다.

아리랑 농장에서 바뀐 아리랜드는 전체 약 3만 평에 동백 동산만 5000평이나 된다. 수령 60~70년생 동백나무 150여 주와 꽃이 피면 장관을 이루는 수선화 10만 구, 목련, 왕벚, 소나무, 단풍나무, 각종 야생화 등이 어울려 숲을 이루고 있다. 특히 해마다 4월이면 동백축제를 열고 야생화 전시회와 환경농산물과 향토 음식을 준비해 도시 사람들의 지친 심신을 위로한다. 일 년에 찾아오는 도시 사람만 5000명이 넘는다.

초입에는 "이 땅이 세계의 중심 되게 하소서"하는 새김 글씨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을 일군 시아버지 정순보 선생의 꿈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최씨는 이 꿈과 기도를 우리 모두가 함께 가꾸어야 할 아주 소박한 꿈으로 생각하고 마치 휴대전화기를 충전하듯이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충전소가 될 야무진 설계를 하고 자신 안의 잠자는 거인을 깨워 원하는 길로 매진했다.

최씨는 서천에서 태어나 서천읍내 고등학교 사서로 근무했다. 그때 학교 선생님으로 있던 지금의 시누이의 소개로 남편 정의국 씨를 만나 결혼하고 이곳 아리랜드로 들어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농업과 농촌에 대한 큰 기대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던 때였다.

시아버지께서는 일찍이 육종가로서 십자화과 채소인 배추, 무 등의 품종을 개발, 채종했다. 이들 부부도 이 일들을 계승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농촌의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히면서 가정 경제는 날로 어려워졌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찾아오는 농촌, 함께 하는 농촌을 만들어 소득이나 문화에 변화를 줄 생각을 했다.

그때가 1988년이었으니 당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희망 있는 농촌을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하여 도시의 소비자와 직거래를 했고, 농산물을 가공하여 가공품으로 만들어 판매했다. 그리고 음식으로 만들어 판매도 했다. 도시 소비자가 농촌을 직접 찾아오게 하는 '찾아오는 농업'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생태 순환적인 유기농업을 하면서 농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가공농산물을 만들어 농업 환경을 자원화하여 도시민의 휴식처로 이용하자는 계획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이 마을에 오는 사람들은 민박을 하면서 농촌전통 문화 체험, 갯벌체험을 하고 농산물도 사간다. 바닷가 지역이라 쌀, 마늘, 땅콩, 고추, 콩이 잘 되는데 쌀을 제외하고는 전량 판매가 다 이루어졌다.

아직 동백이 수줍은듯 망울만 맺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곧 활짝 피어 숲을 이루어 도시민에게 휴식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겠지.
아직 동백이 수줍은듯 망울만 맺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곧 활짝 피어 숲을 이루어 도시민에게 휴식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겠지. ⓒ 이우성
아리랜드가 1999년 농협 팜스테이 마을대표로 지정되면서 더 적극적인 도농교류를 실시했고 그동안의 노력 결과로 많은 사업도 했다. 2001년 아름마을 사업, 2002년 정보화마을 사업, 간이 상수도 사업, 마을 가꾸기 경진대회 우수상, 2003년 마을 주민들의 일본연수 등 많은 활동을 하면서 선도적인 농촌마을로 자리매김했다.

잘 나가던 공동체는 IMF 여파와 고령화로 인한 생산력 약화, 어업보상을 하는 과정에서 이웃마을과의 갈등, 마을 주민과의 갈등으로 큰 회오리를 맞는다. 여러 사업이 한꺼번에 진행되면서 주도적인 지도력을 갖고 사업을 시행하다 보니 여러 마찰이 생겼다. 그래서 최씨는 생산을 위한 과도한 노동의 투입이나 자신의 주장을 상대에게 주입하는 식의 지도력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느끼고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 마을 사람들 스스로 일을 풀어나가는 것으로 문제를 풀었다.

물론 이것은 늘 열려 있는 마음일 때 가능했고 자신을 깨뜨리는 아픔도 있었으나 자신이 선택한 인생의 발판이 이곳임을 늘 깨닫고 자신을 잘 다스렸다. 해가 갈수록 정리되어 가는 동백동산과 찾아오는 손님을 보면서 마을 사람들은 '찾아오는 농업'에 대한 농촌의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은 마을 이장과 부녀회 중심으로 일을 해나간다. 농가 스스로 농촌부흥을 위해 적극 노력하여 주도권을 형성하는 것이다. 일찍 시작한 만큼 미리 앓는 진통이어서 오히려 달갑다.

역사가 오래 되어서 그런지 고정으로 찾아오는 도시 사람들이 많다. 큰돈을 벌겠다고 생각하면 큰 부담인데 자신의 일을 찾는다는 생각으로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쪽으로 생각했더니 넉넉하지는 않아도 보람은 컸다.

최씨는 서천군농업기술센터 대표를 맡아 여성농업인의 전문인력화, 농업 경영능력강화를 위한 교육과 더불어 여성농민의 삶의 질과 지위향상을 위해서도 노력한다. 여성농민의 고충을 들어주고 상담, 교육, 영유아 보육, 아동 방과 후 교육을 하고 있다. 마을 가꾸기, 한산모시조각 꽃만들기, 황토염색, 수지침, 건강체크 같은 일을 하면서 여성농민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농촌에도 도시의 결손가정 아이들이 많이 내려와 마을마다 많이 있는데 그들을 보듬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선생님 4명에 영유아 40~50명이 있다. 시설 지원은 없고 교사지원과 운영실비 지원이 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뜻있는 귀농인은 여성농업인센터 같은 것을 만들어 소신을 펼치면 좋을 것이라고 추천한다. 여성농업인이 저변에 깔리면 큰 힘이 되고 이 땅 농업의 횃불이 될 것으로 자신한다. 시어머니, 며느리의 힘을 키우면 지역을 살릴 수 있는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그는 자신한다.

농민 부부는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큰 그림은 남편이 만들고 채우는 역할은 여성이 하는 것이 좋겠단다. 서로 잘한다고 칭찬을 하고 남편과는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동지라는 신념으로 남편의 꿈을 잃지 않도록 접근한 것이 오늘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최씨는 지금도 공부를 한다. 아무래도 농촌문제의 열쇠는 도시민이 갖고 있으므로 도시민에게 다가가는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10년 뒤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농촌이 행복할 것인가, 나이 들어서도 물려줄 수 있는 농촌을 그리는 연습을 지금부터 하려고 한다.

특히 여성농민 시각에서 주인으로 살아가는 여성을 만들고 주체성 있는 농촌여성을 위해서도 할 일이 많다. 그도 이제 연륜이 쌓인 듯하다. 스스로 부드러워지고 즐거워졌다고 말한다. 욕심보다는 자신을 뒤돌아보고 자신을 즐긴다는 것이다. 자신이 먼저 행복해져야 그 빛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된다는 신념이 생겼다.

이제 농촌도 농촌환경을 이용해 영혼과 체력이 재충전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으면 한다. 농촌을 도시민의 안식처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실버농장이다. 올해를 실버농장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한다. 생산을 공유하고 소득을 보전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유스럽게 일하고 취미활동에도 시간을 안배하고 싶은 것이다. 노후를 아름답게 보내려는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는 준비생을 모집해 프로그램을 짜고 운영계획을 만들 생각이다. 20농가 정도 공동체를 이룰 생각을 하고 있다.

친구들과 자연 속에서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는 조력자가 되겠다고 포부를 말한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자랑스럽게 우리를 얘기하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도시 소비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고 관광만으로 농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아쉽다고 털어놓는다. 돈 내고 왔다는 생각보다는 농촌체험과 문화를 배우러 왔다는 생각으로 농촌은 소중한 곳, 농촌과 함께 하려는 생각을 우선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는 아주 힘들고 작은 일로도 내가 위로받는구나 생각하고 선택해서 한 일, 내가 책임진다고 생각하고 일에 달려들면 일이 쉬워진다고 나름의 지혜를 얘기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보람된 일을 찾아서 능력껏 하면 훨씬 능률이 오른다는 것.

그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고3인 아들, 풀무학교 1학년 딸,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두었다. 결혼 후 10년만에 그들은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남편은 주경야독하면서 농학석사를 했고 최씨는 식품가공학으로 석사학위를 했다. 최씨는 문학세계로 등단한 수필가이기도 하고 신지식농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1년에는 농림부장관이 다녀가기도 했고 2002년에는 새농민 본상을 받았다.

끊임없이 농촌을 살리기 위해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공부하는 사람, 여성농민만이 농촌을 살릴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해 발 벗고 뛰고 있는 사람, 조력자의 임무를 자신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 최애순씨는 이미 한국 농업의 중심에 섰다. 이미 세계의 중심이 자신임을 깨닫고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에게서 빛을 본다. 힘을 느낀다.

덧붙이는 글 | 한사람이 마을을 바꾸고 이제 더 높이 비상하여 우리 농업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이분의 꿈이 현실이 되어 이웃과 어울려 살기 좋은 농촌이 되면 좋겠습니다.
흙살림신문 3월호에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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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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