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봄청 기운 북돋워주는 아귀수육 드세요
ⓒ 이종찬
재수 나쁜 고기 '물텀벙', 하지만 맛은 너무 좋아

생김새가 워낙 흉측하고 지지리도 못생겨 그물에 잡히면 어부들이 재수 나쁜 고기라 하여 곧바로 바다에 버렸다 해서 '물텀벙'이라 불리는 물고기 아귀. 아귀는 예로부터 염치 없이 먹을 것이나 탐내고, 싸움을 잘하는 사람(아귀 같은)에 흔히 비유되곤 했다. 또한 불교에서 말하는 '아귀도'도 굶어 죽은 귀신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아귀는 비늘이 없고 살이 물컹물컹하며 우둘투둘 거무스레한 껍질에 덮혀 있어 무척 징그럽게 느껴진다. 게다가 아귀의 생김새는 머리는 납작하고 입은 엄청나게 큰 데다 톱날모양의 날카롭고 강한 이빨이 달린 아래턱이 위턱보다 툭 튀어나와 있어 물고기들을 잡아먹기에 좋게 되어 있다.

아귀는 머리 맨 앞쪽에 '아귀의 낚싯대'라 불리는 촉수가 길게 늘어져 있다. 아귀는 이 촉수로 물고기들을 끌어들이는데, 한번 먹이를 물면 절대 놓아주지 않으며, 자기 몸뚱이보다 훨씬 더 큰 물고기도 한 입에 꿀꺽 삼켜버린다고 한다. 하긴, 오죽했으면 서양에서 아귀를 '악마 물고기'라 불렀겠는가.

아귀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등과 배가 모두 거무스레한 것(아귀)이 있고, 다른 하나는 등은 거무스레하고 배는 하얀 것(참아귀)이 있다. 그 중 배가 하얀 참아귀가 맛이 훨씬 좋다고 한다. '못생겨도 맛은 좋아'라는 유행어도 아마 지지리도 못 생긴 아귀의 뛰어난 맛과 영양가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 아귀수육 한 접시면 소주가 한 짝
ⓒ 이종찬

▲ 아귀는 저지방 저칼로리 식품이다
ⓒ 이종찬
아귀의 간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예전에는 아구(아귀)가 잡히면 배를 갈라 속에 든 물고기들을 꺼내고 선창가에 던져버렸지예. 근데, 요즈음에는 '아구 먹고 가자미 먹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구가 귀한 몸이 되었다 아입니꺼. 아구는 수육으로 해도 부드럽게 쫀득쫀득거리는 게 맛이 좋고, 찜이나 국으로 끓여도 속풀이에 그만이지예."

지난 달 20일(월) 저녁 7시. '고 이선관(1942~2005) 추모 준비모임' 일행들과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찾았던 생선국 전문점 '사돈집'(경남 마산 불종거리). 생선국 끓이기만 30여 년이라는 이 집 주인 김민효(65)씨는 "아구를 넣어 아구탕을 끓이다보면 자연스럽게 아구수육이 나오게 되어 있다"라고 잘라말한다.

김씨는 "아구수육과 아구탕은 아구찜의 매운 맛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즐긴다"라며, "아구수육의 참맛은 아구의 내장에 있다"고 귀띔한다. 아귀의 내장 중에서도 간과 위가 가장 뛰어난 영양가와 맛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아귀의 간은 열량이 일반 고기의 다섯 배쯤 되고, 비타민 A가 많아 대부분 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는 것.

김씨는 "아구찜 집들이 줄줄이 들어선 오동동 아구찜 골목에서도 아구의 애(간)는 따로 돈을 얹어줘야 겨우 맛 볼 수 있을 정도"라고 속삭인다. 김씨의 말에 따르면 생선가게에서도 아귀가 좀 크다 싶으면 한결같이 내장이 빠져 있으며, 특히 간은 찾아볼 수가 없단다. 또한 아귀가 1kg에 5천원쯤 하면 아귀의 간은 5만원쯤 할 정도로 아주 귀하다는 것.

▲ 아귀수육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 이종찬

▲ 아귀수육과 아귀탕은 아귀찜의 매운 맛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즐긴다.
ⓒ 이종찬
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귀수육, 소주 생각 절로 나

'사돈집'의 아귀수육을 만드는 방법은 조금 색다르다. 먼저 아귀를 삶을 때 비린내를 없애고 깔끔한 뒷맛을 내기 위해 아귀 뼛가루와 무, 양파, 멸치, 새우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12시간 이상 우려낸 맛국물을 사용한다. 이어 그 맛국물에 된장을 풀고 토막낸 아귀를 넣어 한소끔 끓이다가 건져내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찍어먹으면 그만.

"아구는 다른 생선에 비해 비린내가 적게 나고 칼칼한 맛이 나지예. 그리고 부위별 맛도 다 다릅니더. 아구의 등지느러미 살은 쫀득쫀득한 게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좋고, 아구 꼬리는 쫄깃하고 뒷맛이 담백해 아구찜을 만들 때 최고의 재료로 손꼽힌다 아입니꺼. 특히 아구의 간은 세계 3대 진미에 꼽힐 정도로 맛이 기막히지예"

이윽고 김씨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귀수육(대 2만원, 소 1만 5천원) 한 접시를 상 위에 올린다. 커다란 접시에 푸짐하게 담긴 아귀수육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까지 푸짐해지면서 침이 절로 꼴깍 넘어간다. 이어 밑반찬으로 된장에 박은 고추와 파릇파릇한 봄동무침, 파래무침, 김장김치, 도토리묵, 감자샐러드, 고추냉이, 간장이 차례대로 올라온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할 틈도 없이 손으로(젓가락으로는 먹기 어렵다) 아귀수육을 한 점 집어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찍어 입에 물자 미끌미끌 씹히는 게 살코기가 몹시 부드럽다. 특히 아귀수육에 붙은 거무스레한 껍질은 마치 생엿을 씹는 것처럼 쫀득쫀득한 게 뒷맛이 아주 깊다. 절로 소주 생각이 난다.

▲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아귀수육을 찍어먹는다
ⓒ 이종찬

▲ 이 집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맛 생대구탕
ⓒ 이종찬
생대구탕의 그 시원한 맛도 속풀이에 그만

소주 한 잔 털어넣고 뜯어먹는 등지느러미 부위의 살도 쫄깃쫄깃거리는 게 독특한 맛이 난다. 하지만 아무리 아귀수육을 뒤적여도 세계 3대 진미에 꼽힌다는 아귀의 간은 보이지 않는다. 김씨의 말에 따르면 요즈음 아귀의 간은 모두 일본으로 수출하기 때문에 아귀를 잡는 사람들도 쉬이 맛보기 어렵단다.

고추냉이를 푼 톡 쏘는 간장 맛도 독특하다. 여느 집 같으면 붉은 초고추장을 내놓았을 텐데, 이 집은 초록빛 고추냉이를 푼 검은 간장에 아귀수육을 찍어먹게 되어 있다. 미끌미끌 쫄깃쫄깃거리는 아귀수육의 독특한 맛과 톡 쏘는 간장맛. 먹어도 먹어도 자꾸만 손이 가는 이 기막힌 아귀수육의 맛!

이 맛을 무슨 맛이라고 해야 할까. 쪽빛 남녘바다로 솔솔 불어오는 봄바람의 맛이라고나 해야 할까. 아니면 저 깊은 바다 속 아무도 모르는 곳에 꼭꼭 숨겨두었던 용왕님의 진수성찬을 은근슬쩍 훔쳐먹는 맛이라고 해야 할까. 그도 아니면 어릴 때 할머니께서 다락에 꼭꼭 숨겨둔 꿀단지 속의 꿀을 훔쳐먹는 그 설레이는 맛이라고 해야 할까.

아귀수육을 소주 안주로 다 먹고 난 뒤 저녁 식사로 시켜먹는 생대구탕(8천원)의 시원하고도 매콤한 국물맛도 일품이다. 생대구탕에 하얀 쌀밥을 넉넉하게 말아 푸짐하게 든 생대구의 하얀 속살을 올려 몇 수저 떠먹으면 금세 이마와 목덜미에 땀방울이 송송송 맺히면서 지난 겨우 내내 쓰렸던 속이 확 풀어진다.

▲ 생대구탕 한 그릇이면 숙취해소 그만
ⓒ 이종찬

▲ 밥을 말아 생대구 살과 함께 먹는 맛도 그만이다
ⓒ 이종찬
"갓 잡아올린 아귀의 싱싱한 애(간)를 소금에 살짝 찍어먹으면 그대로 입 안에서 살살 녹아내린다 아입니꺼. 게다가 아귀는 저지방 저칼로리 식품이어서 여성들의 피부미용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고 합디더. 특히 요즈음처럼 나른한 봄철에는 아귀수육 이기 몸보신에 그만 아입니꺼."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서울-대진고속도로-진주나들목-남해고속도로-서마산 나들목-불종거리-삼성생명 맞은 편-아귀수육 전문점 '사돈집'

※'U포터 뉴스', '시골아이 고향' 에도 보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