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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속의 TV
TV속의 TV ⓒ MBC
자고로 자본을 앞세운 기업이건 공권력을 등에 업은 국가이건 간에, 덩치가 커지고 책임이 늘어날수록, 옆에서 이를 자체적으로 견제하고 건전한 비판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감시 체제가 제대로 수립되어 있어야함은 물론이다. 자고로 '쓴 소리'가 없는 곳치고, 권력의 일방적 독주가 나타나거나, 게임의 질서가 무너지지 않은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사로 치면, 감시와 균형의 원리에 걸맞게 '쓴 소리'의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곳이 바로 옴부즈맨 프로그램들이다. 주말 오후를 시작하는 황금시간대, 재미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내버려두고 금쪽같은 1시간동안 별 재미도 없고 내키지도 않는 시청자 '불만' 접수나, 자사 프로그램 헐뜯기에 시간을 할애해야하는 방송사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차피 옴부즈맨의 정체성은 귀를 열고 쓴소리를 귀담아듣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그냥 형식적으로 '우리는 시청자님들의 의견을 열심히 반영하고 있습니다'고 생색만 낼게 아니라면, 관성에 물든 형식적 비판이나 은근슬쩍 물타기보다는 때로는 혹독한 자기반성과 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하지만 최근 각 방송사 옴부즈맨 프로그램들의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이런 프로그램들을 감시할 또 다른 옴부즈맨 프로그램이 필요할 판국이다.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옴부즈맨 프로그램이란 게 결국 '제 얼굴에 침 뱉기'니 혹독한 비판을 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비판을 가장하여 오히려 옴부즈맨의 시간이 은근슬쩍 자사 프로그램의 홍보로 모습을 바꾸는 '반칙 구성'은 그야말로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MBC의 < TV속의 TV >는 최근 몇 달간 'TV 돋보기'와 '집중점검'이라는 코너를 통해 자사 드라마·예능 프로그램 '띄우기'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자사의 야심작인 수목드라마 <궁>과 연관된 내용을 포맷만 살짝 바꿔 2주에 걸쳐 내보내는가 하면, 주말극 <결혼합시다>와 <신돈>, 신설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야>와 관련한 내용 등, '비판'이나 '점검'보다는 프로그램 자체의 내용 소개하기에 바빴다.

열린 TV시청자 세상
열린 TV시청자 세상 ⓒ SBS
사실 타 방송사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SBS <열린 TV 시청자 세상>은 '방송 현장과 사람들'이라는 코너를 통하여 몇 주 연속 '사내 방송'에 가까운 수준의 홍보활동에 주력하더니, 4일 방송에서는 인기그룹 동방신기가 출연한 '반전드라마' 자화자찬에 시간을 허비하며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문제는 코너 자체가 이 프로그램들에 대한 편향적인 칭찬 일색으로 흘러갔다는 점이다. 드라마의 대중적 인기나 완성도에 대한 호평은 과대포장하면서 막상 작품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에 대해서는 최대한 짧거나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방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처리하고, 향후 방송에 관한 발전적인 대안이나 진지한 고민도 전무한 관습적인 구성이 주류를 이뤘다.

옴부즈맨 프로그램은 나름대로의 정체성이 있다. 옴부즈맨 자체가 굳이 시청률을 의식해서 예능 프로그램을 흉내 낼 이유는 없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3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잇단 방송사고 등의 악재와 기획력의 부재로 여러 차례 곤욕을 치렀지만, 자아비판은 대부분 솜방망이에 그쳤고 시청자의 의견을 현장에서 직접 반영하겠다는 적극성을 보여준 적이 거의 없다.

뉴미디어와 케이블의 득세로 지상파의 권위가 하락하고, 미디어 시장이 변화하는 흐름 속에도 각 방송사 옴부즈맨 프로그램들은 이런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자성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문제제기보다, 자사 프로그램에 대한 자화자찬의 비중만 날이 갈수록 높이고 있다. 날이 갈수록 사내 방송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옴부즈맨 프로그램이 앞으로도 각 방송사의 나팔수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할 바에야 존재 자체가 무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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