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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 예술노동자들은 보호조치 없는 해고 위험에 떨고 있다. 사진은 세종문화예술회관 예술인 노조가 임금삭감과 부당해고 시도 중단을 요구하는 공연집회(위)와 노동자로서의 권익과 예술 공공성을 확보해가고 있는 뉴욕 필하모니의 공연안내(아래)
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 예술노동자들은 보호조치 없는 해고 위험에 떨고 있다. 사진은 세종문화예술회관 예술인 노조가 임금삭감과 부당해고 시도 중단을 요구하는 공연집회(위)와 노동자로서의 권익과 예술 공공성을 확보해가고 있는 뉴욕 필하모니의 공연안내(아래) ⓒ 우먼타임스
현재 우리나라에는 70여개가 넘는 국공립예술단체가 있으며 예술기관에 속한 예술장르는 약 170여개, 이곳에 종사하는 공연예술인은 약 1만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매년 혹은 2년 단위로 개별실시평가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단원평가제도'에 의해 평가받고 그 결과에 의해 임금과 고용여부 등이 결정된다.

예술단체와 예술단체구성원을 평가하기 위한 제도는 매해 또는 격년 연말, 예술단원만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연말일시평가'와 상시적으로 실시되는 '상시평가'로 나뉜다. 평가항목은 크게 예능도와 근무태도로 구분된다. 예능도 평가는 표현력, 창의력 등을 주된 지표로 삼고 있으나 세부적인 기준은 심사위원들에게 전적으로 맡겨져 있어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예술노동자들의 권리와 생존권 쟁취를 위해 2003년 12월 17일 출범한 전국문화예술노동조합(이하 예술노조)은 평가제도 문제에 대해 '종합적 판단이 요구되는 예술능력을 심사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에 맡기는 점' '공연활동이 대부분 집단 활동으로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기본 기량에 대한 평가만 이뤄지는 점' '평가 절차 및 공개의 불투명성으로 인한 비민주적 평가과정' 등을 문제점으로 제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평가제도는 예술노동자들이 1년에서 2년 단위의 단기위촉계약직이라는 고용관계에 맞물리면서 재계약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평가제도를 통해 등급조정, 임금결정이 내려져 많은 예술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평가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상태다.

실제 지휘자에게 운영문제를 지적하고 개선할 것을 요구하면 예술단체는 단원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평가제도를 악용, 부당한 경고 및 해고까지 자행한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민영화 바람이 생존권 위협

평가제도뿐 아니라 '국공립 문화예술기관의 민영화 추진' 또한 예술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화의 공공성과 지역주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만들어진 국공립예술기관이 민영화되면서 재정·조직운영 문제뿐 아니라 예술단원들의 인력 축소 및 비정규직 전환 등의 문제를 양산해낸 것이다.

이용진 예술노조 위원장은 "문화예술 특히 공연예술은 예술가 개인이나 예술집단의 자생력에만 의존할 경우 국민들에 대한 예술편식을 가속화시켜 문화예술에 대한 기형화를 낳을 수밖에 없다"며 ▲합당한 공연활동을 위해 재정자립기금, 공연제작비 등 균등 배분 ▲전문성 확보를 위한 문화예술지원인력 교육기회 제공 등 여러 가지 법,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05년 세종문화회관에서 해고당한 이후 5개월간의 투쟁 끝에 복직판결을 이끌어낸 이재용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단원은 "문화예술기관이 예술과는 전혀 관련 없는 낙하산 경영 인사들에게 맡겨지면서 여러 공연단체들을 강제 해체시키고 수익성 위주의 대관사업 등에만 힘을 쏟고 있다"며 "지난주 복직판결을 받았지만 세종문화회관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디자이너도 노동권확보 나서

공연예술인과 애니메이션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애니메이터 등에 이어 디자이너들도 '디자인노조추진연대'를 꾸려 노동조건 개선 및 권리향상을 위한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현재 244명의 회원이 참가하고 있는 디자인노조추진연대(이하 추진연대)는 지난해 2월 디자인 포털사이트 정글(jungle.co.kr)에 '디자이너노동기본권모임'을 개설한 이후 여러 차례의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지난 9월 노조추진을 위한 규약 초안과 조합원 가입원서 초안을 마련했다.

추진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디 세가지소원(26)은 "몇 안 되는 대기업 소속 디자이너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 임금이 몇 번 체불되는 것을 오히려 사업주들이 관행처럼 여기고 있다"며 "7개월 동안 임금이 체불돼 관할 노동사무소에 신고하고 1년 넘는 싸움 끝에 체불된 임금 지불이라는 판결이 났는데도 사업주는 모른 척했다"고 말했다.

아이디 연필깎기(32)는 "디자인 업무는 정해진 시기까지 일을 마쳐야 하는데 그 기간까지 평균노동시간 초과, 밤샘작업 등에 대한 보상을 전혀 받을 수가 없다"며 "이같이 임금체불과 비정규직으로 인한 고용불안으로 인한 고충이 큰 디자이너들이 온라인을 통해 모여 노동권에 대한 목소리를 모으게 됐다"고 말했다.

외국은 어떨까?

외국의 경우 문화예술이 공공성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국가지원은 최대로 하되, 간섭은 줄여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장치를 두고 있다.

영국의 경우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독립된 '잉글랜드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 이하 ACE)'를 두고 예술에 대한 지식, 이해 증진과 영국 내 대중들의 예술 접촉기회 확대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문화예술을 정부기구가 아닌 연방정부 산하 독립기구인 '국립예술기금'이 주관하고 있다. 국립예술기금은 예술가의 창작지원을 위한 지원금과 예술 가치와 지역중요성이 높은 사업 지원금 등으로 나뉘어 쓰이며 '예술과 예술단체 창의력 고양과 예술작품 보존' '예술에 대한 접근 및 향유권리 확대' 등에 지원 목적이 있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에서는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안정적인 문화 예술활동을 위해 '예술인 사회보험제도'를 두고 있다. 독일의 경우 조형예술가, 연극배우, 음악가 등 예술 활동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문화예술인들의 신청을 받아 예술가 사회금고(KSK)의 엄정한 심사 후 예술인 사회보험 가입이 가능해진다.

가입 이후 의무적으로 연금, 의료, 간호보험을 들게 되며 이때 회원은 전체보험료의 50%만 분담하고 나머지 50%는 연방정부의 보조금(20%)과 예술적이고 저널리즘적인 활동들을 활용하는 기업들(30%)이 함께 분담하게 된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예술인 사회보장제도 도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 뉴욕의 필하모니, 오스트리아 비엔나오케스트라,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등 세계 대표적인 예술단은 이미 노동조합을 결성해 노동자로서의 권익과 예술 공공성을 확보해가고 있다.

여성예술노동자들의 고충

예술노동자 중 여성노동자들은 고용불안문제와 함께 술자리나 회식자리에서 연주를 강요당하고 춤을 추게 하는 등의 문제에도 시달리고 있다.

'영동부군수 성추행 사건'은 여성예술노동자가 성폭력 피해사실을 공개, 가해자 직위해제까지 이끌어낸 첫 사건으로 여성예술노동자들의 성폭력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설립 추진 중인 디자인노조의 경우에는 여성 디자이너들의 잦은 밤샘작업 과정에서 남자상사에 의해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예술노동자들이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나혜경 예술노조 청주시립예술단지부 사무국장은 "영동부군수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예술단체 내 성폭력 실태를 조사, 공개해 예술단체의 지배구조와 여성비하적인 문화 폭로를 통해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할 계획"이라며 "예술노조 내 여성사업에 대한 확대와 여성 관점에서 사업 및 활동을 재점검하고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 사무국장은 각 지자체마다 성폭력에 대한 문제인식이 실제 정책이나 제도로 마련될 수 있도록 조례개정, 성폭력예방교육, 처벌에 관한 내용 명시 등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윤훈 예술노조 사무국장은 "그간 여성의제에 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며, 앞으로 전체 예술단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및 실태조사를 통해 문화예술 전반의 문제를 드러내 예방대책을 세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디자인노조추진연대 홈페이지 운영자 최정기씨는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방지와 성차별 문제를 해소하고 여성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 논의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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