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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택시나 시내버스를 안 탄 지도 꽤 오래되었다. 차도 없고 면허증도 없는 남편을 둔 아내도 그것을 불편해 하기는커녕 걸어서 다니는 것을 즐기는 눈치다. 내가 따라나서기만 하면 왕복 두세 시간이 족히 걸리는 곳도 마치 마을 앞 가게라도 가듯 훌쩍 다녀올 태세다.

걸어서 갔다가 걸어서 돌아오면 우선 건강에 좋고, 차비가 들지 않아서 좋고, 부부간에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고, 공해를 내뿜지 않아서 좋다. 일석사조인 셈인데 일 석오조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가령, 이런 날은 말이다.

천변 둑길을 걷다가
때마침 지나가는 기차가 있어
손을 흔들어줄 요량이었는데
알고 보니 화물열차였다.

올렸던 손을
바로 내리기도 야박해서
잠깐 망설이는 사이
손은 가슴께에 와 있었다.

가슴에 손이 닿은 채
기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차마 손을 내리지 못하고
사뭇 오랫동안 서 있었다.

하늘에서 눈발이 내린 것은
기차가 소실점으로 사라진
한참 뒤의 일이었다.

- 시, '소실점' 모두


ⓒ 이종찬
그때 기대했던 객차가 나타났다면 시가 찾아오지는 않았으리라.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다. 가끔은 어긋난 틈새에서 생명이 움트기도 한다. 하지만, 시가 나를 찾아오리라는 것을 예감했을 뿐, 시가 완성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나는 왜 산모롱이를 돌아오는 기차가 화물열차인 것을 확인하고서도 손을 내릴 수 없었을까?

처음에는 그것이 자못 궁금했던 것이다. 그 궁금증이 풀리는 순간이 곧 시가 완성되는 순간이라고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머릿속으로 무수한 상념이 스쳐갔지만 어느 것 하나 건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을까? 기차에 손을 흔들었을까? 기차에 손을 흔들었다면 나는 혹시 시커먼 쇳덩어리에 미안했을까? 손을 올렸다가 사람이 아니라고 손을 내리려고 했던 사실이.

얼마 후, 나는 이런 생각들을 지우기로 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만이 진실은 아닐 테니까. 그때 나를 찾아온 뭉클하면서도 막연한 감동은 산소와 수소로 나눌 수 없는 물의 원형일지도 모르니까.

그 무렵, 한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거짓말을 잘하지만 천진한 아이. 그런 형용 모순이 가능한 아이. 그 아이가 가출한 것은 지난 가을이었다. 휴대전화에 문자를 남겼지만 한 달이 다 가도록 소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전화가 왔다. 연락이 닿지 않아 애를 태웠지만 막상 통화가 되니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말을 할 때는 예쁜 토끼와 대화를 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토끼는 귀엽지만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지는 못한다. 그럼 내가 토끼가 될까? 그 아이와 있으면 그런 동화 같은 상상력에 빠질 때가 많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만남은 동화 속 얘기가 아니다.

"지금 네가 학교를 나오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뭐냐?"
"학교 다니기 싫어요."
"왜 싫은데?"

"그냥 싫어요."
"그래도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싫고, 학교에서 머리도 내 맘대로 못하게 하니까 싫어요."

이쯤 해서 나는 말문이 막힌다. 더는 무슨 대화가 가능할까? 하지만, 교사에게 그런 자포자기 감정은 금물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대화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럼 무슨 말을 한담? 잠시 후, 나는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것이 고등학교 2학년 학생으로서 제대로 된 생각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니?"
"예, 알아요."
"아는데 잘 안 된다는 거야?"
"예."

나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귀여운 토끼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마치 먹구름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보는 그런 기분이었다. 내 목소리는 일말의 희망과 자책감 사이에서 사뭇 떨리고 있었다.

"선생님이 너 사랑하는 줄 알지?"
"예, 알아요."

"고맙구나. 그럼 너에게 한 가지만 부탁하마. 우선 집으로 들어가거라. 너도 네 행동이 잘못된 것을 안다고 했으니까 엄마가 너 때문에 많이 힘드신 것도 알고 있겠지? 네가 학교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네 잘못이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엄마를 아프게 하는 것은 큰 불효야. 약속할 수 있겠니?"

"생각해 볼게요."

사흘이 지나 아이는 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변함이 없었다. 다행히도 겨울방학이 와주었고, 나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아이를 기다릴 수 있었다. 내 부탁을 받은 친구의 설득으로 아이가 학교로 돌아온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지금 그 아이는 새 학기를 맞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얼굴에 홍조가 가득한 채 교실과 복도를 휘젓고 다니고 있다.

학교에는 교사의 인간적인 지도를 거부하거나 어떤 다정한 손짓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어쩌면 그들은 더 확실한 사랑을 받고 싶어서 교사를 상대로 기다림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한 아이가 시야에서 소실점으로 사라질 때까지 가슴에 손을 얹고 사뭇 오랫동안 서 있어 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월간지 <사과나무>에 기고한 글을 조금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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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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