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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해찬(사진) 국무총리는 80년 당시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운동권' 출신이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 총리는 88년 당시 김대중(DJ) 총재가 이끈 평민당에 재야 영입 케이스로 정계에 입문해 13대 때 처음 국회에 진출한 이래 내리 5선을 했다.

군사정권으로부터 상도동(김영삼)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탄압을 받은 동교동(김대중)계는 원내 진출도 그만큼 더디었다. 동교동계의 맏형인 권노갑 전 의원이 쉰아홉의 나이에 13대 때 처음 원내에 진출했을 정도다. 권씨와 함께 '동교동 1세대'인 김옥두·한화갑씨도 14대 때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5선 의원인 이 총리의 정계 진출은 그만큼 일렀다.

동교동계는 상대적으로 골프와도 거리가 멀었다. DJ가 골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옥두·설훈·한화갑씨 등 대부분이 골프를 멀리했다. 그러나 권노갑 전 의원과 '리틀 권노갑'으로 통한 이훈평 전 의원은 예외다.

45살 넘어서 골프를 처음 시작한 늦깎이

권씨는 25년 구력의 보기 플레이어다. 권씨는 오랫동안 DJ를 대신해서 외부인사 영입 및 협상창구 역할을 맡다보니 자연히 골프와 친했다. 권씨는 민주당 고문 시절에도 당시 대선후보로 거론된 노무현·이인제·정몽준 의원과 각각 '탐색 라운딩'을 갖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0년 당시에 처음 골프채를 잡은 '완전 초보'였다.

'동교동계 특무상사'로 불리는 이훈평 전 의원은 남의 머리를 잘 올려주는 것(첫 필드 출전)으로 유명하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싱글 수준인 그가 '입봉'시켜준 골퍼는 3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해찬 총리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이 총리의 형님은 골프 실력이 '오리지날 싱글'이라고 한다. 그러나 재야 운동권 출신인 이 총리는 3선 의원 때까지도 골프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훈평 전 의원이 금배지를 달기 전인 97년 이 총리에게 "이제 이 의원도 3선이니 골프 세계를 알아야 한다"며 권유한 것이 입문 계기가 되었다.

권노갑씨가 정태수 한보 회장으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에 대해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받아 교도소에 수감중일 때 면회를 다녀오던 차안에서의 일이었다.

이 총리는 "그렇지 않아도 친구가 골프를 배우라고 사준 골프채를 승용차에 6개월 넘게 싣고 다닌다"고 답했다. 그러자 '특무상사'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럼 오늘부터 바로 하자"며 이 총리를 국회의사당에서 가까운 염창동의 한 골프연습장으로 데리고 가 등록을 시켰다.

당시 <한겨레21> 기자였던 김성호 전 의원도 이 무렵에 함께 등록시켰다. 그리고 이훈평씨는 등록 이튿날부터 새벽 6시면 전화해 골프 연습장에 데리고 나가 두 달여 동안 맹훈련을 시킨 뒤에 두 사람의 머리를 얹어줬다.

'동교동 특무상사'가 머리 올려주고 권노갑 고문은 내기 '밥'

그러니 이 총리는 45살이 넘어서 골프를 처음 시작한 늦깎이 골퍼다. 그러나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이 총리는 거의 매일 골프연습장과 필드에서 살았다. 남몰래 서울 대방동 해군 골프연습장에서 피나는 훈련을 쌓기도 했다.

그러다가 권 고문이 98년 8·15 특사로 나오면서 골프에 맛을 붙인 이해찬 총리는 본격적으로 '범동교동 노땅'들과 어울렸다. 거의 매주 권노갑·김영배·안동선 의원과 팀을 이뤄 내기 골프를 쳤다.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이 진승현씨와 함께 평창동 권 고문 집을 찾은 날도 바로 이 4인이 골프를 약속한 날이었다.

필드에서 구력은 가장 짧지만 판돈은 늘 이 총리 몫이었다. 이 총리는 (실력이) 올라가는 골프이고 노인들은 내려가는 골프이니 돈을 떼일 수밖에. 내기 골프 하면 맨날 지는 통에 '노인 3총사'가 이 총리 돈 한번 따려고 별렀지만 거의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피나는 훈련 덕분이지만 승부욕이 워낙 강한 데다가 골프에서도 깐깐한 성격을 그대로 반영해 좀처럼 상대방에게 틈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퍼팅할 때는 이러저리 너무 재서 주위의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흔들림이 없었다는 것.

'재야 운동권' 출신의 정치인 이해찬은 지금은 평균타수가 80대인 '필드 운동권' 총리로 변신했다. '골프광' 이해찬의 오늘 뒤에는 '동교동 특무상사'가 올려준 '머리'와 내기 골프에서 기꺼이 '밥'이 돼준 권노갑 고문이 잃은 '돈'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총리의 머리를 올려준 이훈평 전 의원은 정작 이 총리와 골프를 자주 치는 편이 아니었다. "내가 골프에 입문시켰는데 나보다 더 잘치게 되니까 괜히 같이 치게 되질 않았다"는 것이 이 전 의원의 설명이다.

게다가 요즘은 자신이 이 총리 골프 파동의 '원인 제공자'가 된 탓에 괜시리 국민에게 미안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고 한다. 이 총리의 도무지 멈추지 않는 '골프 구설수' 때문이다.

'공무원 골프금지령' 내렸다가 '적반하장' 비판 받기도

총기 난사 사건 다음날인 지난 2005년 6월 20일 열린 국무회의. 이해찬 총리는 이 자리에서 공무원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총기 난사 사건 다음날인 지난 2005년 6월 20일 열린 국무회의. 이해찬 총리는 이 자리에서 공무원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 국무총리실 홈페이지
이해찬 총리가 철도파업 첫날인 1일 부산에서 이 지역 상공인들과 골프를 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또 다시 그의 골프행각이 도마에 올랐다. 총리실은 이에 대해 "골프를 치면서도 철도파업 등 국정 현안에 대해 충분히 지시를 내릴 수 있다"는 논리로 해명했으나 국민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특히 일각에서는 이 총리가 법조 브로커 윤상림씨와 수 차례 골프 라운딩을 가진 것과 관련,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과 설전을 벌인 뒤 끝에 이런 일이 생기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재야 운동권'에서 '필드 운동권'으로 180도 변신한 이해찬 총리가 골프와 관련 구설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총리는 지난 2004년 6월 군부대 오발사고 희생자 조문 전에도 골프모임을 가져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해서, 지난해 식목일에는 강원도 속초·양양 일대에서 대형 산불이 번지고 있는 가운데 골프를 쳤다가 비난 여론이 일자 국회에서 "근신하겠다"고 사과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총리는 그로부터 두 달여만인 지난해 7월초 남부지방에 집중호우 피해가 났을 때 제주도에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등과 라운딩을 해 물의를 빚었다. 이어 12월에는 대통령만 사용하는 봉황 문양이 새겨진 골프공 세트 선물을 돌린 것이 논란을 일으키더니, 최근에는 법조브로커 윤상림씨와 수 차례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나 구설에 올랐다.

게다가 이 총리는 총기난사 사건 영결식이 열리는 날 '공무원 골프금지령'을 내렸다가 네티즌들로부터 '적반하장'이라는 집중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90년 3당 합당으로 집권하는 과정에 골프 덕을 톡톡히 봤지만, 정작 대통령이 된 뒤에는 공직자 골프금지령을 내렸었다.

이 총리의 '오불관언 골프', 갈수록 JP 닮아가

역대 총리 중에서 최고의 골프 애호가로는 단연 김종필(JP) 전 총리가 손꼽힌다. 때때로 골프에 비판적인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도 그로서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JP의 골프 예찬론은 "내가 건강을 잃으면 그 사람들(골프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책임진대?"라는 투깔스런 반문 속에 잘 담겨 있다. 이 총리의 오불관언 골프는 점점 JP의 그것을 닮아가고 있다.

골프를 좋아하는 것은 비단 우리 정치인만이 아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은 재임 8년간 800라운드가 넘는 골프를 쳤다고 하고,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걸프전 와중에도 골프를 즐겼으며, 아들 부시 대통령 또한 골프 건으로 구설에 오르내렸다. 클린턴 전 대통령 또한 이라크 공습 때도 필드를 찾곤 했다.

그러나 어떡하랴. 미국은 미국이고 한국은 한국인 것을. 성인군자도 시속을 따르라 했거늘, 아무리 취향이라지만 국민들은 총리의 앞뒤 안가리는 '골프질'이 볼썽사납다는데…. '운동'이 그렇게 좋으면 총리직 버리고 '프로'로 전향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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