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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운동 봉화제 점화식 사진.
3.1만세운동 봉화제 점화식 사진. ⓒ 충남도청 제공
우리나라가 독립국임과 자주국임을 전 세계 반방에 알린 3.1 기미 독립선언문을 발표한 만세운동이 충남 지역은 3월 6일 임천면을 시작으로 4월 7일까지 만세운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났는데, 충남 14개 군, 64개 읍면동에서 101건의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충남지역 최초 만세운동은 3월 6일 충남 임천

충남지역 3.1만세운동을 일어난 시기별로 분류해 보면 제일 먼저 부여 임천에서 3월 6일 처음 만세 운동이 일어났고, 예산 3월 10일-아산 온양 3월 11일-논산 3월 11일일-서산 3월 16일- 홍성 3월 18일- 연기 3월 26일-대전 3월 27일-천안 3월 27일- 서천 3월 29일-보령 3월 29일-병천 4월1, 2일- 공주 4월 1일-청양 4월 5일 순으로 이어졌다.

일제강점기의 엄중한 시기에 위축되었던 민중들의 만세운동은 일부 조직 동원도 있었으나, 대중의 분노를 폭발시켜 시위에 참여하게 하는 대중조직 방식을 많이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세밀하게 살펴보면 먼저 마을의 지도자가 중심이 되어 만세운동을 조직된 경우가 32개 지역으로 나타났으며, 일상적인 시장에서 조직한 경우 6개 지역, 대중이 모이는 장날을 이용해 태극기를 나눠주고 만세운동을 조직한 곳이 13개 지역이었다.

그리고 억눌린 민중의 분노를 표출시키는 방법으로 앞산과 뒷산에 산불을 지르고 산불을 끄려고 모이는 주민들에게 준비한 태극기 등을 나눠주고 산을 내려오면서 시위로 발전시키는 독특한 조직 방식이 충남지역 29개 지역에서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산불을 질러 대중을 모은 독특한 조직방식 눈길

특히 산불을 지른 곳은 충남 전체 지역에서 골고루 나타나는데 온양아산 지역은 온양, 둔포, 신창, 배방면, 탕정면, 함사리, 영인면, 백석포, 공세리, 갈해 등 10여 곳에서 연달아 산불을 질렀으며, 천안 성환 지역은 각 동리에서 일제히 산불을 질렀고, 대전 가수원, 연기, 공주 우성면 도계리, 예산읍, 서천 한산, 장항, 논산 두마면, 두계면, 예산 오가면 신례원 등 충남지역 곳곳에서 산불을 지르고 시위를 조직한 것이다.

산불은 밤에 주로 이루어진 일로 충남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3월 중순에서는 산불을 지른 곳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일본 경찰의 감시가 강화된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집중적으로 산불을 지르고 이를 통해 폭발적인 대중 만세운동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 당시 산은 민중들에게 땔감과 집을 짓는 중요한 재산 중에 하나였으나, 억눌린 군중들의 분노를 표출하는 일환으로 사용한 것을 볼 때 민족의 독립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산불을 통해 표출하고 승화시킨 것을 볼 수 있다.

3.1만세운동 충남병천 봉화 점화식.
3.1만세운동 충남병천 봉화 점화식. ⓒ 충남도청 제공

노동자 만세운동, 충남에서 직산광부 유일

3.1만세운동에서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참여한 곳은 유일하게 천안 직산. 금광광부 수백 명이 3월 27일 밤 8시를 기해 헌병 분견소를 습격하고 만세운동을 부르고 시위운동을 하였는데 일제 헌병들이 노동자들에게 총을 쏘아 5명이 현장에서 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지역에서 70여명 사망

충남지역 만세운동 중 3월 말경 일본경찰과 헌병의 감시와 통제가 강화되는 시점에서 산불을 통한 시위와 만세운동이 대중화되자, 일제는 총칼을 동원하여 무차별적인 사격 등 폭력진압으로 사망한 애국 열사들이 많았다.

예산지역이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내었는데 예산읍에서 헌병이 발포하여 3월 29일 28명이 사망하고, 고덕면 대천에서 1명 사망하여 모두 29명이 사망했다,

천안지역에서는 천안읍내 헌병 분소를 습격한 광부 노동자 5명이 사망했고, 유관순 열사가 활동한 병천 지역에서도 사망자가 많았다.

가장 많은 1만여명 군중이 모인 4월 2일 병천 장날에서는 오후 3시경 헌병이 유관순 열사를 칼로 찌르자 분노한 민중들이 손에 몽둥이를 들고 헌병 분견소를 포위했고, 헌병들이 일제히 발포하여 사상자가 많았다. 총 사망자는 21명(유중권, 동부인 이씨, 김구응, 동모당 최씨, 조인원, 김상헌, 서병순, 박상규, 권치관, 한상필, 윤희천, 유중오, 윤태영, 이성하, 박병호, 신을우, 박유복, 박영학, 방치석, 박준규, 유관순)이고 부상자가 수백 명이 되었으며, 검거된 인원이 50명이나 되었다.

또 청양 2명, 정산 7명, 대전 3명, 논산 서산 각각 1명씩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충남지역에서 만세운동 당시 모두 70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지역에서도 10여 곳 만세운동 일어나

대전지역의 만세운동을 살펴보면 10여 곳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는데 3월 27일 오후 3시경 시장(현재 인동시장 부근)에서 수천 명이 집결하여 태극기를 들고 정거장(대전역전)을 거쳐 서대전으로 왔다 갔다 하며 시위를 하였는데, 이때 경찰이 급히 출동하여 4, 5명을 검거하고 해산시키려 했으나, 시위가 더욱 거세어져 오후 5시경 기마헌병을 동원하여 칼을 빼들고 공포를 발사하여 해산하고 주모자인 김창규씨 등 20여명을 검거했다.

이날 다시 밤 8시경에 주모자 검거에 분노한 민중 3천여 명은 등불을 들고 모여 시위를 벌이다 해산했다.

28일 오후 다시 3천명이 모여 만세를 부르던 중 20여명을 검거하자, 더욱 맹렬히 시위하였다. 28일 유천면(현재 유천동 산성동 일대)에서는 면회의 날 구장들이 모여 회의를 마치고 나오다가 만세를 부르자, 인근 부락에서 수백 명이 호응하여 만세를 부르다가 헌병들의 저지로 해산했다.

대전 장날에 윤명화씨가 각 상점에 오늘 만세를 부를 것이니 문을 닫고 참여하라고 통고한 사실이 발각되어 구속되었으며, 27일부터 시위주동자로 검거되어 구속된 사람은 윤명화씨, 김창규씨, 조경재씨, 김성현씨 외 2명으로 나타났다.

31일 유성온천에서 수백 명이 만세운동을 벌였는데 헌병이 저지하자, 돌과 흙을 던지며 맹렬히 시위했다. 며칠 후 유성시위로 홍병두 외 야소교인 2인, 천도교인 2인이 구속돼 공주지방법원으로 압송됐다.

4월 1일 가수원 산에 불을 놓고 군중이 모이자 만세를 부르자, 인근부락에서 호응하여 수천 명씩 각각 자기 동리 뒷산에 불을 놓고 시위를 벌였다. 4월 1일 서대문(현재 지명?)에서 수백 명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대전시내로 들어가다가 선화 동에서 해산 당하였다.

4월 1일 장날을 이용하여 수천 명이 만세를 부르다가 현재 대전역으로 진출하던 군중에게 경찰이 총을 쏘아 현장에서 즉사하였다(사망자 명단은 미상).

회덕은 4월 1일 오후 8시경 각 부락에서 수백 명씩 만세를 부른 후 밤 12시경 횃불을 들고 회덕 정거장으로 모이는 것을 경찰이 저지하자 해산하여 만세운동이 일단락됐다.

이 같은 기록은 1959년 10월 31일 시사시보사 출판국에서 발행한 <3.1운동비사>(이병헌 편저(에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함태영 선생, 이갑성 선생, 이규갑 선생과 저자의 서문, 을사조약, 국내인심 동요(의사들의 활동, 일진회, 한일합방, 해외투쟁), 최린 선생 자서전 중 원문, 손병희 조선독립선언함, 독립선언서, 독립 선언자 33인과 관련자의 취조서, 증인신문조서, 3.1독립선언사건 판결문, 각 지방 의거사건 13개 지역 편과 해외 편, 대동단사건, 광복단, 상해임시정부에 대한 기록들이 수록되어 있다.

함태영 선생은 서문에서 "우리 민족이 영원토록 기억해야 될 이 민족운동의 대부분의 국민은 그 윤곽만을 알뿐이지 그 운동의 경위와 내용을 혹 오전하는 점도 없지 않으므로 나 자신이 그때의 모든 일을 계획하던 한사람이라 그 당시의 진정한 면모를 밝힐 수 있는 기록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병헌 선생은 기미운동 당시 청년으로서 민족운동에 헌신하였으며, 그때의 실정을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는 터라 이 책자는 그동안 선생이 모든 고난을 무릎 쓰고 간직해온 모든 자료를 중심으로 편저하였는데 그 당시 독립운동의 전모를 사실 그대로 우리에게 알려주는 사료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이 영구히 자랑하고 간직해야할 산 역사적 문헌"이라고 말했다.

또 함태영 선생은 “이 책을 펼쳐 볼 때마다 그 당시를 회상케 되어 감개무량하다"며, 이 문헌을 세상에 내놓기 위하여 가진 고난을 겪은 이병헌 선생의 노고에 대해 거듭 치하하는 바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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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청지역에서 노동분야와 사회분야 취재를 10여년동안해왔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빠른소식을 전할수 있는게기가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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