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여성신문
서울 하월곡동에 거주하는 이모(58)씨. 3억 원이 조금 넘는 집 한 채와 매월 남편(62)의 퇴직연금 110만 원으로 생활하는 그는 자녀들이 분가한 뒤 재정적으로 독립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는 정부가 내년부터 시행하는 '공적 보증 종신형 역모기지론'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정부안에 따르면 3억 원의 집을 담보로 이씨 부부가 받게 되는 금액은 93만 원. 죽을 때까지 받을 수 있다니 언뜻 '괜찮다'싶지만 자세히 따져보니 그리 '고마운' 제도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선 3억 원 주택의 경우 대출 한도는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1억4655만 원이다. 즉 50%가 넘는 금액이 이른바 위험부담금인 셈이다. 이는 정부가 주택가격 상승률 연 4%, 기대 수명 83세를 기준으로 미래의 주택가치를 계산한 뒤 다시 주택가격 하락, 장수리스크(100세) 등을 감안해 금리 6.5%에 1.5%를 가산한 8%의 할인율을 적용해 산정한 금액이다.

여기에 정부는 역모기지 보증재원을 마련책으로 가입자에게 보증보험료를 부담토록 하고 있는데 3억 원 주택 담보의 경우 가입 초기 보험료(주택가액의 1∼2%) 약 600만 원과 매년 70만 원(대출잔액의 연 0.5%, 월 5만8000원)의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이는 은행이 파산하는 등의 이유로 대출금을 지급하지 못하거나, 주택 가격의 폭락 등으로 은행이 손해를 볼 경우 정부가 손해를 보증하기 위한 재원이다.

임계희 재무설계사(파이넨피아 대표)는 "이 계산대로라면 굳이 역모기지론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며 "현 역모기지 대출안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50% 정도로 노령의 서민을 위한 제도로 볼 수 없다"며 "LTV를 높이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연구원의 한 관계자도 "현재 역모기지론 방안대로라면 6억 원대 주택 소유자보다 재산 운용에 자신이 없거나 대안이 없는 3억 원대 주택 소유자들이 주로 이용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에 김이한 재경부 보험제도과 사무관은 "종신연금과 같은 역모기지론은 가입 연령과 기간에 따라 적용 금액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 LTV 비율로 계산할 수 없다"며 "다만 이자율 표준화 과정을 거쳐 현재 적용한 6.5% 대출 이자율은 낮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든든한 노후자금 대출이라며 적극 홍보에 나선 역모기지 대출. 각계에서 말하는 몇 가지 문제점을 짚어보았다.

▲ 6억 원 주택 소유자, 역모기지 대출 필요 없다

3억 원의 집을 팔아 도시 근교의 1억5000만 원짜리 주택을 구입하고, 나머지 1억 5000만 원을 종신형연금보험(확정이자 4%, 복리)에 들 경우 매월 받을 수 있는 금액이 93만 원으로 역모기지 대출과 같거나 더 많기 때문이다. 또 안정적인 채권상품에 투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따라서 6억 원 주택 소유자의 경우 당연히 더 많은 가능성이 있는 셈. 노령의 부부가 생활을 위해 3억 원 정도의 주택으로 옮기면 현 대출 한도 2억9310만 원에 월 186만 원을 지급받는 것보다 훨씬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다.

▲ 주택 공동명의, 안심할 수 없다

많은 전문가들은 "주택 명의가 남편인 경우 미리 남편의 유언을 통해 주택의 소유권을 확보할 것"을 조언한다. 남편보다 평균 8∼10년 더 살게 될 여성에게 주택은 노후생활의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상속법의 유류분 제도에 따라 남편 사후 재산은 자녀와 분할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공동명의 주택이라고 하더라도 남편 몫에 한해 자녀들이 상속권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역모기지 대출을 활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 남성 배려해 연령기준 62세로 낮춰야

한편 부부 모두 65세 이상인 사람들을 신청 대상으로 한정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의 소리가 높다. 한국은퇴자협회(회장 주명룡)는 "우리나라 남녀의 결혼 연령차는 2005년 기준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3.1세 많은데 이에 따르면 남성은 최소 68∼69세가 되어야 역모기지를 이용할 수 있다"며 "남성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연령기준을 62세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독신 노인의 경우 65세 이상이면 성별 관계없이 가입할 수 있어 "또 다른 차별이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 지방 거주 노인 '세제혜택 불공평'

지방 거주 노인들의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3억 원 이하 25.7평 이하 주택의 재산세를 25% 깎아주고 대출이자도 연 200만 원까지 소득공제 해준다고 하지만 지방의 경우 3억 원 정도의 주택도 드물고, 3억 원이 넘어도 25.7평이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세제혜택도 못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지방 거주 노인은 등록세 72만 원, 국민주택채권매입 33만 원, 재산세 추가분 매년 10만 원, 대출이자 소득공제 혜택 등에서 제외돼 서울 거주 노인보다 추가세금 16만 원을 더 물어야 한다.

재개발 소문이 도는 지역의 주민들도 '오를 것이 분명한 주택을 담보로 생활비를 받고 집을 은행에 주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 분위기다. 이에 전문가들은 "결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안정되어야 역모기지 대출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 LTV : Loan To Value ratio.  담보가치 주택가격 대비 대출비율. 은행들이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해줄 때 적용하는 담보가치 대비 최대 대출가능 한도.


댓글

(주)여성신문은 1988년 국민주 모아 창간 한국 최초의 여성언론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