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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김치찌개를 끓일 때마다 고기를 사러 가던 정육점에 들어갔습니다.
"아저씨, 김치찌개 끓일 건데요. 3000원치만 주세요."
아저씨는 그 말을 듣고 고기를 꺼내려 하다가 잠시 멈칫거렸습니다.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니 아저씨가 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5000원 이하로는 칼질 안해요."
취업 면접 때 좋은 인상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평상시에도 늘 웃고 살아야 한다며 웃으려 노력했던 결심이 그대로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얼굴은 오만상이 찌푸려지면서 입에서는 상소리가 나올 뻔했습니다. 기분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지라 적어도 저보다 20년쯤 더 살았을 아저씨에게 온갖 인상을 다 찌푸리고 훽하니 나와 버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는 5000원 이하로 샀는데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잘라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전 주로 그 정육점에서 제 형 정도 되는 아저씨들에게 샀었습니다. 어찌되었든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 거리며 나오자 수퍼마켓에서 좀 더 구경하다가 정육점으로 오는 여자친구가 제게 "왜 그러냐"며 물어봅니다.
화가 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자리서 싫은 소리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전, 여자 친구를 만나자마자 제 억울한 사연을 풀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얘기를 풀어 놓는 중에 그녀가 묻는 말 한 마디에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그래? 근데 여기 말고 고기 살 다른 데는 있어?"
아, 이럴 수가. 그러고 보니 대부분 대형 마트에 가서 장을 보다 보니 집 앞에 있는 가게들이 어디 있는지는 잘 모른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정육점은 여기 하나밖에 모르는데 어째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들어가서 사자니, 어쩐지 그 정육점 아저씨 상술에 넘어가는 것도 같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고기 넣지 말까?"
옆에서 들리는 여자친구의 공포스런 목소리에 더욱 더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저 마트 아저씨한테 다른 데 어디 있냐고 물어봐."
아, 제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아저씨에게 물어 보니 우리가 사는 아파트 후문 쪽으로 가면 정육점이 또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화를 벌컥벌컥 내면서 일이라도 저지를 것처럼 굴었지만, 막상 그 정육점 앞에 가니 또 거절할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결국 제 여자친구를 앞세워 갔습니다. 여자가 물으면 그래도 잘해 주겠다고 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창피하지만 그녀가 묻는 동안에 거절 당하는 것이 두려워 쭈뼛쭈뼛 밖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곳 정육점 아주머니는 그런 제 걱정을 한 방에 날리듯 "당연히 되죠"라며 시원하게 답변해 주며 어떻게 요리해야 맛있다는 것까지 알려줍니다. 그제서야 전 그 판에 끼어들어 불만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쪽 정육점에서는 해주지 않는다, 나쁘다 뭐 이런 얘기를 하니 아저씨와 아줌마가 맞장구를 쳐줍니다.
"그러게요. 먹고 싶은 만큼만 먹어야지. 먹지도 않을 건데 많이 사서 뭐해요. 조금씩 사도 자주 오세요."
결국 전 그 정육점 앞에서 늘 그곳만 오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주로 차를 타고 마트에 가는 편이니 얼마나 그 집에 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동네에서 살 일이 있을 때는 늘 가던 정육점이 아닌 처음 가 본 그 정육점을 갈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와 메추리 알을 까며 생각해 보니 처음 갔던 정육점 아저씨 마음이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만약 장사하는 입장이었다면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그 앞에서 자연스레 "에이 왜 그래요. 좀 해주세요"라고 능청스럽게 말하지 못하고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내는 제 자신의 인격에도 문제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제가 만약 5000원짜리 고기를 살 돈이 없어 돈을 절약해 하는 상황이라 3000원치만 사야 하는 그런 절박한 입장이었다면 그 정육점 아저씨가 하는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소심한 제 성격상 싸우지도 못하고 나와서 투덜거리면서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도 기웃기웃 거리는 하지만 쉽게 똑같은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 기억 속에는 좋은 정육점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많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도 많다는 것 잘 알고 있고요. 또 3000원도 사실 제 돈이라기보다 아버지 돈이지만, 현재 경제적 능력이 없는 저로서는 한 푼이 아쉽기에 '정말 돈이 없는 사람들이었다면'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드네요. 서로간에 상처 주지 않고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건 지나칠 만큼 이상적인가요?
이렇게 생각한다면, 정육점 아저씨도 3000원이나 5000원이나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똑같이 피땀흘려 모은 돈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 주기 쉬웠을 텐데 참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그 순간에 제가 그렇게 그 아저씨에 능청스럽게 말해 주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저씨와 그로 인해 혹시 대판 싸움을 벌이게 될지라도 그런 말을 해주지 못한 건 어디까지나 제 부족함입니다. 더욱이 그런 생각이 그 정육점에서 나와 집에 돌아 가는 길에 생각났다는 점에서 제 스스로에게도 많은 부끄러움이 느껴집니다. 소심한 성격 탓에 그 정육점에 다시 돌아가 이런 말을 할 자신은 없지만 대신에 이 지면을 빌려 정육점을 하는 아저씨들에게 이런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3000원이 정말 아쉬운 사람들도 있다 생각하고 3000원어치만 달라고 해도 너무 박하게 대하지는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