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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법흥사 적멸보궁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법흥사 적멸보궁 ⓒ 이기원
불상을 모시지 않고 휑하니 뚫린 적멸보궁 건물 뒤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부도와 자장율사가 수도 정진했다는 토굴이 보였다. 원래 법흥사 자리에 있었던 흥녕사는 신라 말기의 9산 선문의 하나였으며, 지장율사는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요선정의 요선암에서 불법을 강의했다고 한다. 흥녕사의 길잡이 탑이 충주에 이를 정도라면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이런 규모의 사찰이 속세와 단절된 세상일 수는 없는 것이다.

자장율사가 수도정진했다는 토굴(적멸보궁 뒤)
자장율사가 수도정진했다는 토굴(적멸보궁 뒤) ⓒ 이기원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은 부도탑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은 부도탑 ⓒ 이기원
더구나 백성들의 삶이 길바닥의 잡초만도 못하고, 꿈틀대는 미물보다 하찮게 대접받던 난세에는 더욱 그렇다. 신라 말기의 선종은 당시의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이다.

불교 성지를 둘러보기 위한 종교적 목적에서 찾는 법흥사라면 진신사리의 신성함과 온갖 번뇌와 망상이 적멸해버린 적멸보궁의 경건함에 젖어 둘러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역사의 맥과 숨결을 찾으려면 흥녕선원이 갖는 의미와 선종과 호족의 숨결을 찾지 않으면 헛걸음에 그칠 것이다. 속세에서 벗어난 고즈넉한 산사가 아니라 속세의 격랑 속에 뛰어든 호족의 거친 숨결이 박동치는 역사의 중심지가 법흥사였던 것이다.

수주면 무릉리의 요선정에는 마애석불이 있다. 높이 3.5m 정도의 마애석불이다. 정교함과 균형감각으로 따진다면 신라 중대의 불상에 비해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 하지만 거대한 바위의 전면을 쪼아 새긴 불상의 규모로 보면 많은 공력이 든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 요선정 마애석불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 요선정 마애석불 ⓒ 이기원
이 거대한 불상을 만든 이는 누구였을까? 그리고 만든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신라 말기 선종의 유행과 함께 호족의 세력이 강화되면서 각 지방의 호족들은 독자적 세력을 구축하면서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그 하나의 수단이 불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세력 과시용 불상에서 중요한 것은 불상의 정교함과 섬세함 보다는 규모였다. 따라서 바위 전면에 불상을 새기는 마애석불이 유행하게 되었다. 파주 용마리 불상과 원주 주포리 마애석불 등은 대표적인 것이다. 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까지 독자적 세력을 구축하며 지방을 장악했던 호족은 이렇듯 불교의 선종과 연결되면서 자신들의 세력 확장 및 과시용으로 불상을 적극 활용했던 것이다.

원주시 귀래면 미륵산 마애석불
원주시 귀래면 미륵산 마애석불 ⓒ 이기원
신라 말기 사자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호족의 모습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수주면 무릉리 요선정 마애석불이다. 무능하고 부패한 중앙 권력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만의 세력을 형성했던 게 지방의 호족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또한 세력을 키워가면서 또 하나의 권력이 되어 백성들 앞에 군림하고자 저렇듯 거대한 불상을 바위에 조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거대한 불상을 조각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고자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새 세상에의 꿈은 그만큼 멀어질 뿐이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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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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