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5일 열린우리당의 조일현, 이은영 의원이 개최한 토론회를 기점으로 개헌 논의에 불이 붙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개헌 논의의 대상인데,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김헌태 소장에 따르면 정치권에서는 개헌을 논의해야 할 핵심 쟁점으로 권력구조 개편을 든 반면, 많은 국민들은 토지공개념을 들었다.

애초부터 토지공개념이 헌법에 명시되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함을 확신해 왔던 기자에게는 반가운 사실이기는 하나, 많은 사람이 작금의 토지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할 뿐더러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본 논의는 뒷전으로 하고 여타 자신들의 당리당략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이는 주제에만 열을 올리는 정치권을 보고 있자니, 근본 생리를 십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씁쓸한 뒷맛이 남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이러한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토지공개념 개헌과 관련된 논의의 필요성이 이처럼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그동안 다양한 루트를 통해 논의되어 왔던 토지공개념 개헌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고 그 당위성을 점검해 보는 것은 '저들만의' 우선 순위와는 별도로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사료되는 바이다.

토지와 일반 자본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토지는 자그마한 볼펜에서부터 거대한 건물에 이르기까지 땀 흘려 이루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자본재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논의를 위한 몇 가지 핵심적 특징을 살펴보자.

무엇보다도 토지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냥 옛날부터 주어진 것이다. 세상의 아무리 뛰어난 그 누구라 할 찌라도 토지를 만들어 낸 사람은 없었으며 이는 앞으로도 불가능하다. 물론 간척지 같은 경우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질문 하는 사람은 대부분 그 답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간척지는 개간이라는 노력의 결과물과 천부적 토지의 요소가 섞여 있는 혼합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토지는 그 위치가 고정되어 있다. 이 점으로 인해 모든 토지는 각각의 위치에 따라 고유의 특성을 지니게 되며 생산성 및 가치에 차이가 나게 된다. 이 때 생산성의 차이는 물리적 비옥도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단순한 위치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진전이 계속될수록 후자에서 오는 생산성 및 가치의 차이가 더 크다고 하겠다.

토지만의 중요한 특성 중 또 하나는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마모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다른 자본재들처럼 감가상각 되지 않는다. 즉 일방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에 시간의 경과에 따라 그 가치가 상승한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이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인해 착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날 발생하는 다양한 부동산 불로소득의 문제는 바로 토지의 위치적 고유성과 더불어 본 특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까닭은 단순한 예시하나로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 서울의 강남의 낡고 오래된 아파트와 지방의 최신식 공법으로 지어진 아파트 중 강남의 아파트가 훨씬 더 비싼 까닭은 무엇인가? 바로 토지 가격의 차이 때문 아닌가?

이와 같은 토지만의 독특한 특성 때문에 토지를 여타 자본재와 마찬가지로 판단해서 경제 현상을 파악하는 것에는 커다란 위험이 따른다. 따라서 토지는 토지만의 고유의 영역, 즉 앞에서 논한 천부적 특성과 경제에 일으키는 공적인 효과를 감안하여 공공재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하겠다.

토지공개념, 헌법에 배치되지 않는다

1980년대 후반, 개발붐을 타고 전국적으로 부동산(근본적으로는 토지) 투기의 광풍이 몰아치면서 우리는 숱하게 많은 서민들의 눈물과, 심지어는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러야만 했고 언제 터져 버릴지 모르는 부동산 버블로 인해 결국에는 전국민적으로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요구하게 되었다. 토지공개념 3법이 바로 이러한 요구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 법들은 그 내용이 조악하기도 했거니와 일부 시행 방식의 반 시장적 측면, 행정상의 문제점 등으로 인해 1990년대 이 후에 위헌 판결을 받아 사라지거나 실효성을 잃어버려서 사문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여기서 분명히 해 두어야 할 부분이 있는데 토지공개념 3법이 사실상 이처럼 사라져 버렸다고 해서 당시의 긍정적 역할 자체를 무시해서는 안 되며, 위헌 여부 등으로 소멸된 까닭 또한 토지공개념 정신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지지해 주는 대표적인 사례를 택지소유상한제에 관한 위헌판결문에서 찾을 수 있는데, 판결문에서 '토지는 (중략) 그 사회적 기능에 있어서나 국민경제의 측면에서 다른 재산권과 같게 다룰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공동체의 이익이 보다 더 강하게 관철될 것이 요구된다'는 내용을 통해 오히려 토지공개념의 정신 자체는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구체적 실현 방법을 잘 다듬기만 한다면 토지공개념을 실행하거나 헌법에 도입하는 것 자체는 위헌 논의 여부와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

순환논법의 위험을 안고 있긴 하지만, 만일 토지공개념 자체가 위헌이라고 한다면 토지공개념을 헌법개정의 제 1과제로 삼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모두 위헌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우리의 희망,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으로 헌법에 담을 수 있다

경제에 관한 헌법 119조의 내용을 보면 1항과 2항이 일반적인 경제 이론상 서로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실제로 재벌과 일부 학계에서는 이를 문제 삼아 2항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 헌법 조항을 살펴보자.

제119조 ①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1항과 2항의 내용이 담고 있는 핵심을 요약하자면, 경제의 '자유와 창의의 존중' 및 '(균형 성장 및 적정 소득분배의 내용을 포함하는) 경제의 민주화' 정도라고 할 것이다. 기자가 헌법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면 '경제에 있어서 효율과 형평의 적절하고 조화로운 추구'라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듯 하다.

일반적으로 경제에 있어서 효율과 형평이라고 하면 하나가 증진되면 다른 하나는 적당히 포기할 수밖에 없는 두 마리 토끼로 받아들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내용은 적어도 모든 경제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토지문제에 있어서는 수정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다시 말해 토지문제에 있어서는 효율과 형평을 동시에 증진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 방법론이 바로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인데 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토지불로소득은 완전 환수한다. 그 근거는 논의의 일관성을 위해 효율과 형평의 두 측면에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보이는데, 우선 효율 측면에서 보면 토지불로소득을 완전 환수하게 되면 경제 주체들의 지대추구행위를 원천적으로 방지함으로써 시장원리에 입각한 가치판단을 내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도록 독려한다. 즉 경제 주체들의 의사결정이 왜곡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시장을 시장답게 하는 것이다. 또한 토지불로소득의 환수에 따라 투기적 가수요를 철저히 차단하기 때문에 토지시장을 실수요자 중심으로 개편하여 토지이용의 효율을 크게 증대 시킨다.

형평 측면에서의 근거는 더 명백한데, 토지불로소득은 특정한 개인이나 개별 경제주체의 기여에 기인한 것이 아니므로 이를 해당 개인 혹은 경제주체가 소유하는 것은 '노력한 만큼 소득을 얻는 사회'라는 보편적 정서에 부합되지 못한다는 사실 정도로도 충분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의 두 번째 내용은 보유세 중심의 토지불로소득 환수이다. 이는 토지보유세 방식이 거래세 방식에 비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탁월한 장점을 지닌다는 점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첫째, 부동산 매매차액에 과세하는 거래세 방식은 거래를 위축시키는 반 시장적 동결효과 및 공급감소로 인한 가격 상승효과를 가져오지만, 보유세 방식은 이와는 관계가 없다.

둘째, 토지불로소득은 '보유기간의 지대'와 '매매차액'으로 이루어짐을 감안할 때 거래세 방식으로는 '매매차액'에 대한 환수만 가능한 반면, 보유세 방식을 사용하면 '보유기간의 지대'를 환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가를 하락 시키므로 '매매차액' 자체를 소멸시킨다.

셋째, 거래세 방식, 특히 양도소득세 같은 경우 (기타 거래세와는 차이가 존재하지만) 매매차액에 대한 과세이므로 '불로소득의 발생 원인은 매매'라는 착시현상을 일으키지만 보유세 방식은 '불로소득의 원천이 토지의 임대가치에서 옴'을 직시하게 한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의 마지막 핵심 내용은 바로 토지불로소득 환수에 맞춘 기타 생산 활동에 부과되는 세금의 감면이다. 이 또한 전술한 두 가지 근거, 즉 효율과 형평의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데, 우선 효율 측면에서 살펴보면, 이와 같은 세금의 감면은 생산에 대한 압박을 풀어주므로 경제주체들의 능률과 의욕을 고취시켜 경제의 효율을 크게 증대시키게 됨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또한 형평 측면에서도 생산활동에 대한 과도한 과세는 앞에서 논한 '노력한 만큼 소득을 얻는 사회'라는 보편 정서에 정면으로 위배되므로 생산 활동에 부과하는 세금의 감면은 그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토지공개념 개헌, 통일 한국의 기초

분단 이후 다양한 성격의 정권을 거치면서 통일에 대한 논의도 감상적이고 이상적인 관점에서 보다 현실적인 관점으로 전환되어 왔다. 이는 통일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하지만 실제적인 문제들을 고민하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배경은 전 세계의 유이(唯二)한 분단 국가 중 하나였던 독일의 통일 과정을 십수 년간 지켜보면서 이를 통해 다양한 문제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 측면에 기인하는 바 크다고 하겠다.

특히 독일의 통일과정 속에서 꾸준히 발생해 왔고, 여전히 가장 큰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토지 문제이다. 독일은 통일과 함께 구 동독 지역의 토지를 사유화 조치하였으며, 따라서 분단 직전에 서독으로 피난한 구 동독 지역 토지의 원소유자들의 토지 반환 요구를 인정하고 말았는데, 이로 인해 베를린 근교 지가가 200배 가량 폭등하는가 하면 여전히 200만 건 이상의 토지 반환소송 중 1/3도 해결하지 못하는 등 토지에 인한 다양하고 심각한 문제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독일이 진정한 통일 국가가 되는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살펴볼 때 적어도 토지문제에 있어서는 양 체제의 차이점을 인정해야 할 필요성을 충분히 절감하게 되며, 토지문제의 현실적 해결은 통일이라는 건물을 짓는 데에 있어서 튼튼한 구조물을 세우는 일과 같이 핵심적이고도 중요한 과제임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인 남한에 입장에서는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의 내용을 담은 개헌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북한은 이미 대부분의 토지가 국유지임을 감안하여 토지를 공공으로 임대하는 방식을 적용하여 양측의 차이점을 적절히 좁혀가는 것이 통일에 대비한 기초적이면서도 핵심 절차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제 정치권의 과단을 주문한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고 다들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사독재 시절, 높은 생산성을 구가하며 한국경제가 성장하고 있었을 때 토지에 대한 만인의 권리가 인정됨으로 말미암아 토지불로소득이 적절하게 환수되어서 그것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고 또한 경제적 재생산에 투입되었더라면, 그리고 반대 급부로 온갖 생산활동에 부과된 각종 세금이 감면되어 성장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던 경제에 탄력을 줄 수 있었더라면, 또한 문민정부 이 후 민주화가 찾아오기 시작하였으나 경제의 성장률이 떨어져가던 시기에 이미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의 내용이 헌법에 명기되어 경제의 형평을 더욱 더 강화함과 동시에 효율을 끌어 올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접을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서두에서 확인했듯이 많은 국민이 토지공개념이야말로 헌법 개정을 논할 때 가장 절실한 내용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후세가 이 내용을 놓고 또 다른 '만약'을 논하지 않도록 정치권의 과단(過斷)이 필요한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조영민 기자(ymcho82)는 토지정의시민연대(http://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