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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상엽의 공격과 거의 동시라 생각되는 순간에 상문(霜雯)이 그의 하체를 공격해 오는 중이었고, 상엽의 막내 동생 역시 그의 좌측 옆구리를 파고드는 상황이었다.

"이 놈…!"

상문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상엽의 검이 저 자의 가슴을 베었다면 뒤로 물러섰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 순간 금색면구의 사내가 그의 등을 베였을 것이다. 동시에 자신은 옆으로 비껴나가는 저 자의 다리를 자르고, 자신의 막내 동생은 결정적으로 저 자의 허리를 반쯤 갈라놓았을 터였다.

저 자를 몰아가면서 결정적인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그의 뇌리에는 이미 그러한 영상이 떠올라 있었던 상황이었다. 헌데 오히려 맏형의 검은 금색면구의 사내를 찔러버렸고, 맏형 역시 급살을 맞은 듯 뻗어버렸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멈출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이런 기회를 더욱 파고들어야 했다. 상대는 자신의 공격에 당황한 듯 한쪽 발을 들면서 자신의 검배(劍背)를 슬쩍 차는 듯 했다. 그러자 자신의 검은 일순 방향이 꺾이면서 몸을 옆으로 누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순간 그의 동공에는 하나의 검날이 다가오며 자신의 몸에 내려쳐지는 모습이 확대되어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화끈한 느낌과 함께 앞이 캄캄해왔다.

"왜…?"

자신의 가슴서부터 옆구리까지 파고 든 검은 분명 막내 동생의 검이었다. 그 검이 왜 자신을 베었는지 그는 죽어가면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마 그는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담천의 양 팔이 사각으로 가슴에서 옆구리를 베어오는 검날을 슬쩍 밀어내 방향을 바꾸어 아래로 향하게 하고 거기에 가속을 붙여 상문을 베게 했다는 사실을... 담천의의 수법은 매우 교묘하여 내려치는 힘에 가속을 붙게 했을 뿐만 아니라 옆으로 뉘인 자세의 상문의 가슴서부터 허리를 가르게 하고 쏘아오는 속도에 방향을 틀어 슬쩍 밀어냈던 것이다.

거의 동시라고 생각되는 순간 담천의의 손바닥이 막내 동생의 등을 밀듯이 때리자 그의 신형이 늘어져 있는 천에 박히는가 싶더니 동굴 벽에 머리를 부닥치며 뇌수를 뿜었다.

퍽----!

등을 밀듯이 때린 수법은 마치 무당의 면장과 같았는데 상엽의 형제들과 같은 고수들이 자신의 몸 중심을 잃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변화였지만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아마 지켜보고 있다가 무의식중이라도 눈을 감았다 떴다면 어떻게 네 명이 거의 동시에 죽어갔는지 도저히 알 수도 없었을 것이고, 믿지도 않을 것이었다.

"사량발천근(四兩發千斤)…!"

백결의 입에서 경악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듣기는 했어도 보기는 처음이었다. 넉 냥의 힘으로 천근의 힘을 발휘한다는 수법. 사실 정해진 초식이 있거나 형식을 갖춘 무공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단지 임기응변이나 손재주도 아니었다.

간혹 싸움을 할 때 상대의 주먹을 비껴나가게 한다거나 슬쩍 발을 걸면 제풀에 못 이겨 쓰러지거나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대의 공격을 피하며 슬쩍 밀거나 힘을 가해주면 더욱 맹렬하게 나가떨어지기도 한다.

이것이 사량발천근의 원리였다. 그 원리를 발전시켜 상대의 힘을 이용해 상대에게 더 큰 충격을 주거나 상대를 공격할 수도 있고, 단지 방향을 바꾸어 주어 제 힘을 이기지 못해 낭패를 당하게 만드는 수법이었다.

간단한 수법 같지만 사량발천근의 수법을 사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생사를 앞둔 상황에서 그러한 수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리(武理)를 진정으로 깨닫지 못하면 감히 펼칠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무리를 완전하게 깨달았더라도 배우는 단계가 아니라 이제 자신 만의 새로운 무공을 창조해 내는 경지가 아니라면 펼칠 수 없는 수법이었다.

"……!"

백결은 모든 것이 끝난 후에 그대로 선 채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 보이는 담천의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또 다시 새로운 무학의 세계를 엿본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은 이 짧은 시간에 담천의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백결은 담천의를 알면 알수록 더욱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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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울적하면 술이라도 한 잔 나누자고 찾아올 것이지 왜 그리 두문불출하고 있었던 겐가?

침상에 누워있던 목득, 아니 목득으로 변장하고 있던 당중은 찾아 온 손님을 보고 내심 긴장했다. 이미 자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목득이 비류지흔(飛琉脂痕) 연자광(燕孜匡)과 친분이 두터웠던가? 알 수 없는 일이군.)

비류지흔 연자광은 모용세가의 가신이었다. 유리처럼 투명한 지풍이 날면 상대의 온 몸에 열개의 구멍이 난다는 인물로 지공의 고수였다. 그는 손에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술병을 들고 있었는데 그가 손을 흔들 때마다 술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갑자기 웬일인가?"

상대의 태도로 짐작해 대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겉모습이야 목득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다지만 상대의 태도에 따라 장단을 맞추는 것이다. 의형제요, 천궁문의 문주를 잃은 목득을 위로하기 위해 이미 몇 사람이 다녀간 터였다. 얼렁뚱땅 상대의 말투나 태도로 보아 조심스럽게 대하며 넘어가기는 했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 문주의 장례는 무사히 치렀는가?"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잠시 당중을 쳐다보았던 연자광이 탁자에 술병을 놓으며 물었다. 임시이기는 했지만 제마척사맹이 자리 잡고 있는 좌측 공터에 죽은 군웅들의 시신을 매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거기에 생긴 봉분만 해도 백여 개를 헤아릴 정도였다.

"철혈보와 같이 조용하게 장례를 치렀다네."

반당과 좌승 역시 그곳에 묻은 모양이었다. 이런 곳에서는 화장을 하고 마는 것이 관례였지만 무림맹의 성격을 가진 제마척사맹의 군웅들의 죽음을 헛되이 만들 수 없다는 생각에서 나중에 이장(移葬)하려는 의미였다.

"한 잔 받게나."

연자광은 탁자에 놓여있던 찻잔을 바닥에 털고 나서는 당중에게 건넸다. 목득으로 변장한 당중 역시 탁자에 앉으며 연자광의 태도를 유심히 살피다가 잔을 건네받았다. 헌데 그 순간이었다. 잔이 당중의 손에 건네지는 순간 연자광의 손가락이 튕겨지며 그의 손끝에서 네 줄기 투명한 기류가 쏘아졌다.

스으으-----!

투명해 보이는 기류는 손가락이 튕겨지자마자 당중의 네 군데 혈도로 파고들었고 나직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어찌해 볼 사이도 없었다.

"으흑---!"

동시에 잔을 받은 당중의 손목이 연자광의 손아귀에 잡혔다. 일련의 동작은 너무나 빠르고 정확해 당중이 설사 예측했다 해도 도저히 피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연자광의 솜씨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고명해 세인들이 그를 잘못 평가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왜…?"

당중이 의혹에 찬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바로 아혈이 봉쇄되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연자광이 몸을 일으키며 당중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는 아주 나직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당중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는 누구지? 어떤 놈이기에 목득으로 변장하고 있나? 목득은 어디에 있지? 이미 죽었나?"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듣는 당중은 소름이 끼쳤다. 마치 어둠 속에서 들리는 염왕사자(閻王使者)의 속삭임과도 같았다. 더구나 이미 아혈을 제압당해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라 더욱 답답하고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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