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리산-'방콕'이던 아내가 작년에 무려 세번이나 지리산을 다녀왔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저도 지리산에 다녀왔지요. 그때 찍은 사진입니다.
지리산-'방콕'이던 아내가 작년에 무려 세번이나 지리산을 다녀왔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저도 지리산에 다녀왔지요. 그때 찍은 사진입니다. ⓒ 안준철
지금 아내는 외출 중입니다. 부친상을 당한 초등학교 동창을 문상하러 고향인 장수에 갔습니다. 아내는 장수가 고향인데, 저도 그곳에서 이태 동안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아내와 저는 한 동네에서 살았고, 그것도 한 집 건너 가까운 이웃으로 살았습니다. 그 사실을 어른이 다 되어 서로를 찜하고 난 뒤에 알았으니 아내와 저는 애초부터 부부의 연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내가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입니다. 아내가 처음으로 동창회 모임에 나가기 위해 부산을 떨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아내는 별명이 '방콕'일만큼 집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사흘 동안 한 번도 땅을 밟아보지 않았다고 해서 깜짝 놀란 적도 있습니다. 그런 위인이었으니 그날 집을 떠나며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지요.

"여보, 나 이십이 년만의 외출인 거 알아?"

누가 그러라고 했냐고, 저는 퉁명스럽게 대꾸를 하고 말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제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그 벌충으로 다음 날 새벽에야 돌아온 아내를 저는 아무런 불평도 없이 뜨겁게 맞이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저녁 산책길에 끝도 없이 늘어놓는 동창들 얘기를 군소리 없이 경청해주었지요.

아내는 고향인 장수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다보니 무려 9년 동안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서 생활을 한 동무들도 있었습니다. 그 오랜 고향 벗들을 만나고 온 소회가 깊었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갈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내의 이런 호들갑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줄 수밖에요.

"여보, 있잖아. 그러니까 안 만난 지가 사십 년이 다 되잖아. 그런데도 금방 친해지는 거 있지. 남자 동창들도 그냥 말을 놓아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어. 어리고 순수했을 때 만난 동무들이라 그런가 봐. 다음 동참 모임 때도 보내줄 거지?"

그 날 이후, 아내의 생활 풍속도가 사뭇 달라졌습니다. 저녁밥을 먹기가 무섭게 동창회 카페에 들어가 동창들의 근황을 알아보고 동무들이 올린 글에 답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아들이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 있으면서 혼자 전용으로 사용하던 컴퓨터를 아내와 공유하게 된 것이지요. 그 컴퓨터 속에 아내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그런 아내의 변화가 조금은 낯설기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아내는 사람들이 동창모임 같은 곳에 나가는 것을 그리 탐탁치 않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교적이지 못한 아내의 성품 탓도 있었지만 그 못지않게 동창 모임을 다소 소비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것은 아마도 아내가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두어 차례 동창회 모임을 다녀온 어느 날인가는 아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보, 나 동창 모임 나가는 거 그만둘까?"
"왜?"
"당신한데도 미안하고…."
"뭐가 미안해? 당신 요즘 활기가 도는 것 같아서 좋기만 한데."
"그리고, 하나님이 혹시 싫어하지 않을까? 동창들 만날 시간에 성경 한 줄 더 읽는 것을 원하실 거 아니야?"
"글쎄. 그럼 당신 텔레비전도 보지 말아야지."

일단 그렇게 대꾸를 해놓고는 그래도 표정이 여전한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당신 생각에 말이야, 사을이가 어떻게 살았으면 가장 좋겠어? 나는 기쁘게 살았으면 하거든. 물론 도덕적인 인간이 되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그것이 너무 심해서 삶에 기쁨이 없다면 부모인 우리 마음이 즐겁겠어? 하나님도 그러실 거야. 동창도 열심히 만나고 성경도 열심히 읽어. 그러면 되잖아."

아내는 저보다 더 현명하고 생활력도 강하지만 마음이 소심한 편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한때는 우울증 증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람이란 다 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지요. 그럴 때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말 한 마디가 큰 힘이 되기도 하겠지요.

저는 아내를 사랑하기에 아내를 구속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생각일 뿐, 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아내가 나만의 여자이기를 바라는 옹졸한 마음도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그랬겠지요. 언젠가 아내가 동창들과 지리산 천왕봉에 간다고 했을 때 저는 불끈하고 말았습니다.

"아니, 다른 산도 아니고 지리산을 나랑 같이 가야지 누구랑 간다는 거야?"

지리산 상고대
지리산 상고대 ⓒ 안준철
작년에 아내는 동창들과 어울려 지리산을 세 번 다녀왔습니다. 첫 산행은 백무동에서 동창들끼리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새벽같이 산을 올랐는데 제 휴대폰을 빌려주고 자주 전화를 걸어 아내의 건강상태를 점검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내와의 통화가 불가능해지자 저는 한 순간 멍한 상태로 앉아 있었습니다. 마치 아내가 어떤 경계를 넘어 가버린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제가 아내에게 얼마나 길들여져 있었는지 실감이 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내년에 동창들과 함께 중국에 간다고 합니다. '방콕'인 아내가 그런 말을 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처음 그 말을 듣자 지리산을 가겠다고 했을 때보다 두 배는 더 펄쩍 뛰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곧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아내를 위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제 자신을 위해서도 아내가 남편과 아들의 굴레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가끔 거실에서 책을 보다가 안방에 있는 아내가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몇 번씩이나 안방을 들락거리기도 하지요. 그 정도를 심하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아내의 흰머리를 뽑아주다가도 아내의 얼굴이 보고 싶어 아내의 고개를 돌려놓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이기에 아내를 가정과 남편의 틀에서 놓아주고 싶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저도 가끔은 그럴 때가 있으니까 말입니다.

저는 아내와 함께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오고 싶습니다. 언젠가 그런 뜻을 내비쳤더니 아내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리산을 당신하고 가면 당신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생겨서 더 힘들지도 몰라."

저는 그 말이 듣기가 좋았습니다. 아내가 홀로서기를 하겠다는 각오를 보여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의 이유 때문입니다. 제가 아내에게 의지하듯 아내가 저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싫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런 길들여진 사랑도 저에게는 소중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