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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초, 아버지와 석 달 동안 미국 여행을 하고 돌아와 보니 집이 쫄딱 망해 있었다. 구구한 속사정은 각설하고, 여덟 살이던 나는 졸지에 서울에서 최고 빈민촌에서도 산꼭대기에서 두번째 낮은 집 문간방에 세를 들어 살게 되었다.

학교에서 집까지 오르내리는 길은 가팔랐고, 악취가 진동했다(달동네엔 지역 특유의 골목 냄새가 있다). 그런데 그 길 딱 중간 언덕에 여섯살 난 흑인 혼혈아가 살고 있었다. 밝은 밤색 나무 대문 집 아이였다. 초코 우유 빛 피부색깔을 가진 아이의 머리카락은 지독하게 고부라져 있었고, 얼굴과 팔 다리엔 손톱자국과 딱지 앉은 상처가 무성했다.

달동네 여섯살 흑인 혼혈아에 대한 기억

또하나의 한국인... '혼혈인'의 이름으로 '순혈주의' 한국사회의 편견과 따돌림을 겪으며 살아온 혼혈인 1, 2세대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 <또 하나의 한국인-혼혈인에 대한 사진보고서 1992-2005>이 지난해 말 출간됐다.
ⓒ 연합뉴스
그 아이를 보는 건 하루의 일부였다. 하교 길에 산 중턱까지 헉헉대고 오르다보면 혼혈아는 언제나 자기 집 대문 앞에서 동네 아이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것도 혼자서 초등학생 형 여럿과 싸우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삥 둘러서서 대문을 등지고 서있는 혼혈아에게 돌을 던지고 '튀기'라고 놀려댔다.

"튀기래요, 튀기래요, 깜둥이래요, 깜둥이래요~."

리듬을 맞춰가며 아이들은 돌을 던졌다. 그러다 한두 명이 혼혈아를 향해 돌진을 하고 주먹으로 있는 힘껏 아이의 얼굴을 올려 쳤다. 코피가 툭 터진 혼혈아는 허공에 팔 다리를 휘두르며 그 또래 아이들에게서는 상상할 수 없는 욕지기를 해댔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나의 어머니에게 혼혈아 이야기 해주는 것을 훔쳐 들었다.

"깜둥이 미군하고 양색시가 결혼해서 낳은 아이래요. 미군은 애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소식이 끊겼대요. 아유, 징그러워. 어떻게 깜둥이랑~."

아주머니는 아이에 대해서도 일러 주었다.

"애가 어찌나 사나운지 동네 아이들하고 안 싸운 애가 없어요. 나이도 어린 것이 어쩜 목소리는 그렇게 크고, 욕은 어디에서 배웠는지, 아주 얼굴에 독기가 올라 있다니까요."

꼬마 악마이기라도 한 것처럼 악을 쓰며 욕을 해대는 그 아이의 상처투성이 몸은 내게 오랫동안 충격적인 장면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어렸을 적에 나는 가수 인순이를 통해 혼혈인에 대한 또 하나의 장면을 기억하게 되었다. 자신의 피부를 하얗게 만들어 보려고 "모래로 얼굴을 닦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랬더니 살은 하얗게 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되어 피가 나더라는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아팠을까.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가장 인기 있던 TBC 방송국이 사라졌다. 장님 가수였던 이용복도 사라지고, 백인 혼혈 가수 윤수일, 흑인 혼혈 가수 박일준이 사라졌다. 인순이도 사라졌다. 어른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정권의 높은 분들이 혐오감을 주는 연예인들을 TV에 못 나오게 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아이는 왜 날마다 집 앞에 나와있던 걸까

나이가 들어 한동안 미국 생활을 하면서 그 나라의 다양한 인종 문제를 접할 수 있었다. 인종의 문제는 몸은 섞여도 정신은 쉽게 섞이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특히 미국 내 흑인 차별에 관한 역사를 배우면서는 그 여섯 살 혼혈아에 대한 상념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은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어디에 살고 있을까? 궁금한 한편으로, 거의 삼십 년이 지난 지금에야 깨달은 그 혼혈아에 대한 한가지가 있다. 왜 날마다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으면서 집 앞에 나와 있었던 것일까, 왜 그렇게 욕을 해대는 것일까에 대한 해답이다.

혼혈아에겐 친구가 필요했던 것 같다. 노는 것이든 싸우는 것이든 그 애에게 관심을 가져줄 또래 아이들이 필요했던 것 같다. 혼혈아의 어머니는 아이와 자신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여섯살박이 혼혈아는 가장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어 하는 나이에 단 한명의 친구도 얻지 못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곁에 없었다.

결국 혼혈아는 아이들을 보는 것으로 외로움을 풀었을 것 같다. 학교에 간 아이들이 돌아오기 시작하는 정오쯤부터 집 앞에 나와 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싸움질을 하는 것이 하루를 보내는, 어쩌면 가장 흥미 있는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시절에, 미군 그것도 흑인의 피를 절반이나 뒤집어쓰고 있는 어린 아이의 출생의 부적절함에 따뜻한 손을 내밀어줄 용기 있는 자는 없었다.

"Korea is a racially homogeneous country!"

워드 신드롬... 미국 프로풋볼(NFL) 슈퍼볼에서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와이드 리시버 하인즈 워드가 지난 7일 피츠버그 중심가에서 벌어진 우승 축하 퍼레이드에서 한 팬이 준 모자를 써보고 있다. 이날 25만명의 시민들이 영하의 차거운 날씨에도 불구, 퍼레이드가 열린 도심으로 몰려 승리를 자축했다.
ⓒ 로이터/연합뉴스
나는 흑인 혼혈아에 대한 차별이 타인종에 대한 단순한 배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혼혈아의 모습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존심에 총체적인 주홍글씨였다.

"Korea is a racially homogeneous country!"(한국은 단일민족 국가입니다.)

미국의 대학 수업 시간에 한국 학생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그러나 한반도 역사는 다른 진실을 일러준다. 침략을 받으며 수없이 '섞였던' 역사를 '화냥녀'라 손가락질하며 적대와 멸시로 풀었던 민족이다.

세월이 변했다. 21세기 대한민국엔 황당한 또 하나의 현실이 존재한다.

"베트남 처녀와 결혼 도와드립니다."

지방 국도 여기 저기 현수막이 걸려 있는 현실이다. 80년대 말, 90년대 초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이 한창이더니 결국 '국내 공급'에 실패한 우리나라는 이제 외국에서 여자들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올해 1월 24일, 로이터 통신은 우리나라가 우즈베키스탄 등 외국에서 신부를 데려오는 한국의 시골 남성들을 위해 6백여만 원씩을 지급한다는 보도를 전 세계에 타전했다. BBC 방송도 이를 큰 뉴스로 다뤘다. 기사는 또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제 결혼 사례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통계청이 집계한 자료만 가지고도 2002년에 1만1017명에서 2004년에 2만5594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결혼을 하면 자식들은 고스란히 혼혈아가 된다. 그들은 이 나라에서 '호모지니어스'들과 평등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을까.

예전에는 침략에 의한 '섞임'이었던 것이 이제는 노동 인구의 국제적 이동에 의한 '섞임'으로 변했다. 합법·불법 이민자들이 우리나라에도 정확한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고, 서울을 조금만 벗어난 변두리 지역의 영세 업장에서는 어김없이 타 인종들이 노동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 핏줄의 '단일성'은 이 순간에도 쉼 없이 섞이고 있다. 국가가 개인의 국제결혼을 지원해 주는 마당이다. 그러나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

미국의 풋볼 스타 하인즈 워드의 성공 스토리가 이제야 이 나라에서 혼혈아에 대한 저주 같은 차별 문화를 치워 내려는가. 숨 막힐 정도로 잘 생긴 다니엘 헤니의 "혼혈은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말 한 마디가 우리들의 정신문화를 바꿔 내려는가. 지금 한창 목소리가 높아져 있는 우리들의 자성이 혼혈아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무엇인가. 동정? 한때의 관심? 달동네 시절 같이 놀아주지 못했던 혼혈 꼬마에 대한 나의 슬픈 단상이 성인이 되었을 그의 인생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자성도 감정이다. 위로도 감정이다. 감정은 변덕스럽다. 이 나라에서 살고 있는, 성공하지 못한 '하인즈 워드'에게 필요한 것은 차별받지 않을 제도적 장치이다.

다민족사회,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

▲ 지난해 7월 열린 '혼혈아동나누기! 펄벅 여름캠프'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인기 탤런트 다니엘 헤니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상학
2003년 초, 청와대에서는 '뜬금없어 보이는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하나 있었다. 한국의 미래 성장 동력 산업 발굴, 고령화 사회 대비책 강구 등 우리나라의 미래에 관한 준비 로드 맵을 한창 만들고 있던 때에 노무현 대통령이 "다민족 사회에 대한 대비책도 만들어 보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법무부의 대응과 중소기업들의 인력난으로 인한 갈등이 적잖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앞으로 우리나라도 빠르게 다민족 사회가 되어갈 것인데 이에 대한 제도적 준비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단일민족 감정이 유난히 많은 나라이니 문화적·제도적으로 충격을 흡수해 내면서 타민족들도 차별받지 않을 방안들을 찾아보라"고 지시했었다. 그러나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다른 중요한 일들이 산적해 있는데 "거기까지…"라는 측면도 있었고, "체감되지 않는 생경한 문제"라는 생각들이 지배적이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하인즈 워드 사건'으로 인해 이제라도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배척감에 경종을 울린 것이 기회가 아닐까, 한다. 전 국민이 관심을 두고, 자성의 소리가 높은 이 기회를 통해 한국의 하인즈 워드들이 무엇보다 먹고 살 수 있도록 고용 기회의 평등권을 제대로 누리게 하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 보면 어떨까. 호적상 내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이들의 호적 제도 문제를 들여다보면 어떨까. 막연히 생각나는 것이 그것들이다. 고용과 호적 문제. 인순이가 나서면 어떨까.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이다. 국민들도 이제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필자인 이진은 작가이자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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