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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 청암면을 지나다 만난 계단식 논
하동군 청암면을 지나다 만난 계단식 논 ⓒ 이종혁
어리지도 많지도 않은 어정쩡한 나이에 두번째의 시골생활을 정리하고 도시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스물여덟 살 때 산청에서 일 년, 나이 서른네 살에 하동에서 육 개월의 시간…. 나는 왜 귀농을 하려고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영농으로 경제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물좋고 공기좋은 곳에서 살고 싶어서? 시골에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서?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명확하지는 않네요. 이런저런 많은 기대도 즐거움도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흙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좀 더 현실적인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산청에서 보낸 일 년

첫 직장생활을 부산의 환경단체에서 시작했습니다. 오래 회원활동도 했고 전공과 약간 관련도 있고, 꼭 해 보고 싶은 일이기도 해서요. 하지만 조금은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생각에 둘러싸여 살던 어린 시절이라 단체에서의 생활이 정신적인 충만함을 채워주는 데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장의 즐거움보다는 계속 소모하는 느낌만 들었고 뭔가 더 근본적인 삶의 문제에 접근해 보고 싶어 사표를 던지고 찾아간 곳이 대학시절 '농활'을 하기 위해 들어갔던 마을의 농민회 회원댁. 어찌 시골에서 살 수 있겠느냐 상담했더니 산청군 농민회에 간사로 있으면서 이것저것 겪어보고 판단해 보라고 말씀해 주셔서 농민회 사무실에서 회원분들과의 면담을 하게 됩니다.

'젊은 놈이 뭐할라꼬 이런 데 들어올라 카노. 그냥 오지 마라!'

열심히 해보라는 분들 말씀에 마음 놓이기도 했지만. 다그치듯 말씀하시는 손아무개 회장님의 말씀에 움찔 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무서운 분으로 느꼈는데, 잘 챙겨주시고 나중에 떠나올 때는 많이 섭섭해 하셨습니다.

'아무든 열심히 해 보겠습니더, 많이 좀 도와주이소.'

이렇게 산청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농민회 어르신들의 호칭은 대부분이 회장님입니다. 당시 강아무개 회장님은 젖소를 키우시고 논을 스무마지기, 밭을 어느 정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저는 회장님 논 근처에 네 마지기 정도의 논을 빌려서 회장님 댁 농사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제가 빌린 땅에 장비 및 기술을 지원받는 형태로 시골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일이 바쁘지 않을 때는 주위에 일손이 필요한 곳에 품을 팔러 다니며 생활비를 벌었고 농민회 간사로서 월급도 조금 나왔습니다.

거의 일년 내내 저녁이면 농민회 회원님들이 찾아와 밤늦게까지 회의나 이야기로 술자리를 하고, 새벽이면 일하러 나가고, 사안이 있으면 집회에 참가하는 생활이 반복되었습니다.

도심에서 자란 저에게 씨 뿌리고 수확까지 해 보는 영농의 체험은 정말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비록 일 년밖에 못했지만. 열심히 땀 흘리던 순간들과 수확의 기쁨! 제가 키워서 수확한 쌀을 차에 싣고 아는 분들께 인사드리고 팔러다니던 즐거움이 아직 생생합니다. 이런 저런 먹을 것 잘 챙겨주시고 어려움은 없는지 살펴주시던 형님들, 어르신들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정확히 일 년이 지나고 나서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맨손으로 들어온 이곳에서 몇 년 간이나 머슴 생활을 더할 수 있겠지만 과연 자립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많이 들고, 돈에 대한 문제, 부채와 보증 때문에 갈등하는 회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현장을 떠나갈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곳에서도 채워지지 않은 마음의 충만함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겠지요.

고마운 산청의 가족들을 뒤로 하고 도시로 떠나온 후, 몇 개월간 프로그래밍을 공부해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005년 6월까지 프로그래머로서 생활이 계속됩니다.

하동에서 보낸 육 개월

도시에서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시골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동군 악양면에 위치한 '자연농업 문화센터'라는 곳에서 시골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관행농업에 대한 경험만 있고 유기농에 대한 시각이 비관적이었던 저에게 자연농업은 큰 희망으로 느껴졌고 업무도 프로그래머와 기자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부분이 맘에 들었습니다.

흙을 만지는 생활은 아니었지만,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농민들을 만나는 시간들과 악양의 좋은 자연환경 속에서의 생활은 즐거웠습니다. 시골에서 농업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지만 이것이 귀농인지 그냥 직장생활인지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깔끔하게 정리하지는 못 했습니다. 단지 이렇게 지속할 수 있는 생활이라면 장기적으로 시골에서 삶을 터전을 만들어갈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은 커졌습니다.

설을 며칠 앞둔 날, 회사 경영상의 이유로 그리고 대표와 마음을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로 하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을 많이 쏟았던 만큼 답답한 마음이 크네요.

지금은 집안 컴퓨터 앞에 앉아 시골에서의 생활을 정리해 보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제 또 개발자로서 일을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다르게 먹고 살 일을 찾아보아야 할 지 좀 답답하긴 합니다. 환경, 생명, 농업을 이야기할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시골에 살면서 보아온 많은 성공적인 귀농의 모습들과, 어렵고 힘들게 유지하는 귀농의 모습들… 제가 거쳐 온 일들도 앞으로 향해 올바로 가고 있는 과정일 뿐이다, 라고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위로해 봅니다. 모두가 만들고 싶은 생활의 모습들이 있겠지요. 지치는 일이 있더라도 힘들지 말고 모두 잘 이루어 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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