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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우리말글이 겨울나무 같습니다. 햇빛이 나무들을 보듬어 지켜주듯 우리가 우리말글을 지켜주고 아껴줘야 하겠습니다.
마치 우리말글이 겨울나무 같습니다. 햇빛이 나무들을 보듬어 지켜주듯 우리가 우리말글을 지켜주고 아껴줘야 하겠습니다. ⓒ 김형태
이에 대해 어떤 이는 ‘이것은 엄연한 국어 파괴 현상’이라며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파이팅, 파이팅 하면 어디 싸움난 줄 안다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슨 호전적인 쌈닭들입니까? 시도 때도 없이 파이팅 외치게……” 하며 목소리를 높이더군요.

“이제 그것이 얼마나 살벌한 구호인지 생각해 봅시다. 얼마나 무의미한 구호인지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얼빠진 짓인지 되돌아봅시다. 이제 '파이팅'은 끝내기로 합시다. 21세기에는 상황이나 맥락에 맞는, 분명한 우리말 구호로 새 세상을 가꾸어 나갑시다.”

리의도 교수의 주장입니다. 물론 일부 학자들은 파이팅(fighting)이 전투나 격렬한 싸움을 할 때 쓰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영어에서 그러한 것이고, 우리 국어에서는 그런 의미보다는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내는 감탄사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해 ‘핸드폰, 선팅, 백미러, 포볼’처럼 한국식 영어로 정착했기에 사용해도 무방하지 않느냐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최용기 학예연구관은 다음과 같이 반박합니다.

“이 말은 영어권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입니다. 영어에서 이 말은 호전적인 뜻으로 ‘싸우자’ ‘맞장 뜨자’는 정도의 뜻만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위와 같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계속하자’ 뜻으로는 속어로 ‘키프 잇 업’(keep it up)을 쓰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파이팅’은 출처가 모호한 가짜 영어인 셈입니다. 이런 국적 불명의 가짜 외래어가 우리말을 더 갉아먹기 전에 우리말의 순수성을 살려 새 말을 만들어 가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참고로, 이 말은 일본외래어 ‘흐와이또’, ‘화이또’(영어의 'fight’)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쓰이고 있는 굳이 표현하자면, ‘2차 외래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어떤 유식한(?) 우리나라 사람이 여기에 ‘ing’를 붙여 동명사형으로 바꿔, 더 엉터리 영어를 만들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위도 모르고, 그동안 우리 국민은 그것이 맞는 표현인 줄 알고, 미국사람들도 두루 쓰는 세련되고 멋있는 표현인 줄 알고 주체성 없이 너나할 것 없이 따라 쓰다보니 이렇게 널리 퍼진 것입니다.

“'파이팅'은 영어 어법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미상 외국인에게 거부감을 주는 말이다.”(대한매일 2002. 3. 23), “우리 정서에 맞는 우리만의 구호를 찾아내는 일이 필요하다.”(한겨레 2002. 4. 20) 등 응원이나 상대방 격려의 뜻으로 쓰이는 '파이팅'은 원래의 뜻과도 다르고, 격려의 뜻에도 쓰기 곤란하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제기되자, 마침내 국립국어원이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원래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국어 순화 자료집>에는 ‘Fighting’의 순화어가 ‘힘내자’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은 지난 2004년 ‘모두가 함께 하는 우리말 다듬기’(http://www.malteo.net)를 통해 일반 국민의 참여로 ‘파이팅’을 ‘아자’로 다듬었습니다.

인동초처럼 한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국화, 이 꽃을 보면서 우리말글을 생각합니다. 우리말글도 국화와 많이 닮아서 힘겨운 가시밭길을 걸어왔으나 끝내는 그 꽃을 활짝 피우리라 확신합니다.
인동초처럼 한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국화, 이 꽃을 보면서 우리말글을 생각합니다. 우리말글도 국화와 많이 닮아서 힘겨운 가시밭길을 걸어왔으나 끝내는 그 꽃을 활짝 피우리라 확신합니다. ⓒ 김형태
그러나 순화어 ‘아자’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낱말에 대해 투표를 해서 결정하는 것은 나쁘지 않으나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이용하다보니 일부 계층의 의견만 수렴되었다는 지적입니다. 그래서 ‘아자’보다 더 좋은 ‘아리아리’, ‘지화자’ 등의 표현들이 탈락되었다는 것이지요.

‘아자’의 유래와 어원도 논란거리입니다. 감탄사 '아'와 '자'의 합성어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어원과 유래가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요즘 퍼지고 있는 ‘아싸’와 마찬가지로 ‘아자’도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일기도 합니다. 또한 어떤 이는 ‘아자’의 어원을 ‘아작내다’라는 북쪽 사투리에서 찾고 있는데, 그 표현이 너무 과격하지 않느냐는 지적입니다.

그러나 ‘아내’라는 표현 외에도 ‘집사람, 안사람, 부인, 마누라’ 등 여러 표현을 함께 쓰는 것처럼, ‘아자’라는 순화어와 함께 ‘아리아리’, ‘힘내자’, ‘영차’, ‘잘해라’, ‘지화자’, ‘얼씨구’,‘뛰어’, ‘가자’, ‘최고야’, ‘어기여차!’ 등의 멋진 우리말을 두루 쓰면 더욱 좋을 듯합니다.

특히 ‘아리아리’는 ‘아리랑’의 앞부분에서 따온 말로 ‘여러 사람이 길을 내고 만들어간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예술적이고 도덕적인 우리 민족다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말이 없어서 외국어를 빌려다 쓰는 것이라면 문제 삼기 어렵지만, 분명 우리의 좋은 말을 숱하게 두고도 국적불명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디로 보나 주체적이지 못한 태도입니다.

프랑스의 경우, 쓸 수 있는 불어가 있음에도 영어를 쓰면 벌금까지 물리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모국어’를 지켜내자는 줏대 있는 정책이지요. 반면 우리의 경우, 한자나 영어 대신 우리 고유의 말을 살려 쓰자고 하면, ‘촌스럽다’, ‘평범하다’는 반응들을 보입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들 무의식 속에 ‘우리 것은 천하고 남의 것은 고상하다’는 사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옛날에야 우리나라가 못 살고 가난했으니, 다시 말해 세계사의 뒷전에 머물러 있어야 했으니 외국 것이 좋아보였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제는 당당하게 세계사의 선봉에 서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직도 이런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세계인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한번 한다면 해내고야 마는 대한민국입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말글 바로 알고 바로 쓰기’에 모두들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그게 바로 나라사랑이고 겨레 사랑입니다.

전에 한 교육정보업체에서 설문조사를 하였더니, 수능시험을 앞 둔 후배들에게 선배들이 가장 해주고 싶은 말로 ‘넌, 할 수 있어’를 꼽았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파이팅’이라는 국적 불명의 용어 대신 멋진 우리말로 된 현수막으로 응원과 격려를 해 줄 수 있는 세상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응원 용어를 탄생시킨 것처럼, 이제는 경기장에서도 '파이팅'이라는 말 대신에 더 멋진  우리말이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응원 용어를 탄생시킨 것처럼, 이제는 경기장에서도 '파이팅'이라는 말 대신에 더 멋진 우리말이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김형태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도 '우리말글 바로 알고 바로 쓰기 운동'에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누가 소중히 여겨주겠습니까? " 

이 글은 '서울방송'(SBS)과 '뉴스엔조이'에도 기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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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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