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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네거리2>의 연출을 맡은 이예리씨.
<강남역 네거리2>의 연출을 맡은 이예리씨. ⓒ 박유민
<강남역 네거리 2>는 이예리씨가 이전에 대학로에서 연출해서 관객몰이를 했던 사이코드라마 <강남역 네거리>를 주부극단에 맞게 각색한 작품이다. 사이코드라마는 본래 정신과 치료의 일종으로 사회부적응자의 인격적 장애 진단과 치료를 목적으로 의사가 환자들에게 즉흥적으로 하던 심리극인데, 이것이 대본과 음향, 조명을 갖추고 관객과 호흡하는 연극의 한 장르로 발전한 것.

<강남역 네거리 2>는 한 정신과 의사가 사이비 교주 '영선', 변태 교수 '용국', 매 맞는 아내 '청연', 갱년기 아줌마 스토커 '여진' 등의 인물들을 만나 미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충격적인 과거를 들으며 같이 미쳐간다는 내용이다. 우울증이나 스토킹, 성도착, 자살 등 현대의 병리적 현상을 주부들의 실질적인 일상과 그들의 고민에 빗대어 코믹함을 더했다.

스토커 '여진'역을 맡은 육미라(44)씨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많이 와서 봤으면 좋겠어요"라며 "내 얘기라며 공감할 수도 있고 속으로만 감춰두었던 얘기도 연극을 통해 들을 수도 있을 거예요"라고 한다.

'청연'역을 맡은 변정신(48)씨도 "애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해놓고 보니 청춘은 다가고 갱년기 오는 게 정말 우리들 얘기 같다니까요"라며 맞장구를 친다. 사이비 교주 '영선'역의 이미령(39)씨는 "따로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대사가 내 속내 얘길 하는 것 같아요"라며 "다들 사이코 기질 감추고 있는 척, 잘난 척, 정상인 척하면서 살잖아요"라며 작품의 주제를 짚어준다.

홍마담과 정신과의사
홍마담과 정신과의사 ⓒ 박유민
그러나 주부극단이고 극단이름이 애를 둘 낳은 의미인 '애둘란'이라고 해서 배우 모두가 주부인 것은 아니다. 남자 배역이 필요해서 직접 캐스팅하기도 하고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이들도 있다. 또 배부른 아줌마들이 심심해서 하는 호사스러운 취미생활도 아니고, 문화센터에서 교양 쌓는 차원이나 동호회 활동과도 다르다. 이들은 모두 엄밀하게 말해서 '직업적인 배우'이길 원한다. 다만 그것으로 인해 금전적인 수익이 들어오지 않을 뿐.

그들에게 이 공연이 돈이 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아마추어이기 때문은 아니다. 결혼 전후로 '바밤바', '톰보이', '바이오캔디', '네프리스' 등의 CF 모델 활동을 왕성하게 해온 육미라씨나, 연극과 방송에서 10년차 경력을 쌓고 현재 MBC 일일 연속극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에 고정 출연하고 있는 박상오(27·변태교수 '용국' 역, MTM 42기)씨를 비롯, 현재 신기루 만화경(대표 오달수)이라는 극단의 단원인 조지환(27·극중 의사 역할, 조연출)씨와 같은 프로도 함께 작업하고 있다.

그저 그들은 무료 공연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좋은 작품을 관람함으로써 '예술을 통한 사회 환원'을 실현한다는 극단의 본래 취지를 살리고자 한다. 이번 공연을 올리기 위해 발로 뛰며 곳곳에서 후원을 받고 이예리씨의 사비를 보탰다. 서울 종합 예술학교에서의 창단공연이 끝나더라도 이후에 사회복지 시설이나 여성단체 등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만큼 배우로서의 그들의 꿈은 다부져 보였다. 왜 이 길을 택했느냐는 질문에 이병규(40·변태 교수 '용국'역)씨는 '40세가 된 어느 날 문득,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연기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대 출신 아버지에 공부 잘하는 누나를 둔 정하용(24·극중 정신과 의사 역, MTM N7기)씨는 '돌연변이' 소리까지 들었단다. 학교 호수 앞에서 혼자 춤추던 기억이며 자신 내면에 있던 사이코 기질이 발휘되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고. 술집 여자 '홍마담' 역을 맡은 최영미(26)씨는 대학 때 언더 그룹 활동도 하고 대기업에 다니다가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연기 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어릴 때부터 연기자가 꿈이었던 박상오씨는 어릴 적에 부산에 살다가 대학을 서울로 오던 첫날, 제일 먼저 방송국을 찾았다. 방송국 건물을 바라보며 '10년 후에는 내가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강한 다짐으로 이를 악물었다.

변태 교수 용국
변태 교수 용국 ⓒ 박유민
남다른 가족사도 있다. 남동생이 <분노의 왕국> <청춘극장>등에 출연하며 잘나가던 탤런트였는데 촬영 중 사고로 사망한지 올해로 14년째가 됐다는 변정신씨는 하루도 동생 생각을 단 하루도 지워본 적 없다며 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올해 만 나이 44세가 되는 육미라씨는 큰아들이 현재 중앙대 연극 영화과에 재학 중이다.

아버지가 MBC 공채 탤런트 5기 출신인 박상오씨는 꿈을 대신 이뤄보라는 아버지의 지원이 있었지만, 의외로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혔다. 친누나가 연예인 조혜련씨인 조지환씨는 늘 '너 알아서 커라'라고 말하는 누나에게 '누나'라는 호칭 보다는 '선배님'이나 '조혜련씨'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누나의 그늘 밑에서 자라기보다는 자신의 실력으로 성장하기 위해 작은 배역도 마다하지 않고 하고 있다.

사이비 교주와 변태교수
사이비 교주와 변태교수 ⓒ 박유민
연습 막바지에 접어든 요즘, 이들은 처음 사이코드라마를 접하며 느낀 생경함과 부담을 털고, 나름대로 캐릭터 분석을 깊게 하면서 자신의 배역과 사이코드라마만의 독특한 매력에 푹 빠져 지낸다. 처음에는 쭈뼛거리며 소리도 잘 안나오고 배역에 대한 이해도 부족해서 답답해하던 이들이 이제는 무대 위를 가로지르며 입고 있던 코트를 확 벗어젖히는 변태 연기도 하고, 방방 뛰며 '여보, 잘못했어요'를 외친다. 사이코드라마만이 가진 솔직함 덕에 사람들 사이에서 포장된 자신을 한 꺼풀 벗겨내고, 누구에게나 잠재되어있는 사이코 기질을 맘껏 발휘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금기의 영역을 넘나드는데서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총연출을 맡은 이예리씨에게 사이코드라마 전문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던 전편을 연출할 때와 다른 어려움은 없는지 물었다.

"사이코드라마는 몸을 많이 써야하고 극에 몰입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진 배우들 보다는 순수한 사람들이 더 낫다."

많은 이들이 자아와 꿈 사이에서 어중간한 줄타기를 하며 마음에는 불안의 씨를 안고 살아간다. 안정을 택하느라 꿈을 접은, 아니 어쩌면 잊고 사는 사람들 속에서, 꿈을 그려가고 있는 진취적인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안주하는 삶보다 질주하는 삶으로, 열정을 불태우는 그들의 땀에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공연 일자: 2006년 2월 17~19일
공연 장소: 서울 삼성동 서울 종합 예술 학교(SAC) 창조관
공연 문의: 02) 780-7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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