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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어깃발이 당집으로 향하고 있다.
풍어깃발이 당집으로 향하고 있다. ⓒ 안서순
밤을 새워가며 만신은 때로는 엄숙하게 경을 외다가 다시 처연한 목소리로 당주에게 빌고 연신 허리를 굽혀가며 용왕을 달랬다.

만선이 되고 풍랑이 잦아들고 뱃길이 평안해 가정이 화목해지는 모든 것은 당주인 큰칼을 비껴든 최영 장군과 다소곳하게 그려진 그의 부인에게 달린 일이다.

굿판에 둘러선 사람들은 만신의 목소리와 몸짓에 따라 한데 가슴을 폈다 오므렸다해가며 장군님께 꿈을 빌고 또 빌었다.

만선깃발을 꽂은 어선들
만선깃발을 꽂은 어선들 ⓒ 안서순
전날 오후 5시가 넘어서 시작된 굿(영신제 靈神祭)은 이튿날 새벽이 되어서야 판막음이 되었다.

음력 정월 초사흘날인 1월 31일 충남 서산시 부석면 창리 당집에서 뱃사람들의 풍어와 무사고를 기원하는 굿인 '창리 영신제'가 열렸다.

굿이 열리기 전 만신은 금줄이 쳐진 당집 문을 열고 쌀 한 줌을 이리 저리 뿌리고 나서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문밖으로 세 번 집어던졌다. 정(淨)한 곳에서 부정을 막기 위한 의식이라고 한다.

당집에 모셔진 임경업 장군과 부인상
당집에 모셔진 임경업 장군과 부인상 ⓒ 안서순
그러고나서 '장군 굿'을 시작으로 '대감굿' '각시굿' 등 모두 7마당의 본격적인 굿판이 이어졌다. 자리러지듯 휘몰아 치던 꽹과리 소리가 그치는가 싶더니 한땀 한땀 처연하고 애처로운 만신의 사설이 사람들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함께 울고 웃는 굿마당을 만들어 갔다.

'장군님, 부인님께 비옵니다. 올해도 배를 띄우는 족족 만선되게 하옵시고 불던 바람도 잠재워주셔서 평안한 뱃길되게 하옵시고….'

이 굿판을 주관하는 만신은 김미자(66·서산시 부석면 창리)씨로 올해로 20년째 계속해 오고 있다. 김씨는 인근에서는 '용한 무당'으로 소문이 나 큰 굿판에 단골로 불려 다니는 잘나가는 무당이다.

당집 앞에 놓인 굿상
당집 앞에 놓인 굿상 ⓒ 안서순
굿판이 시작도 되기 전에 '믿는 사람들'이 장군님께 잘 보이기 위해 성의껏 마련한 예물을 놓고 절을 한다. 그러고 나서도 무엇이 부족한지 두 손을 모아 열심히 빌고 빈다.

아직도 '창리'에는 바다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대하(大蝦)철이 되면 멀리 남지나해까지 나가 그물을 내리고 며칠 밤낮을 바다 위에서 살기도 한다. 뱃사람들은 '한치 배밑이 황천'이라고 말한다. 배를 타고 있는 한 기약할 수 없는 불확실한 '삶'을 산다는 것이다.

굿을 하고 잇는 만신
굿을 하고 잇는 만신 ⓒ 안서순
그래서 그들은 금기(禁忌)하는 일이 많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한다. 적어도 창리 어부들은 당집에 모신 '임장군 부부'를 뱃길을 지켜주고 풍어를 가져다주는 신(神)으로 믿고 있다.

이들에게 영신제는 결코 소홀하게 다룰 행사가 아니다. 예전에 비해 비교도 안될 만큼 초라해진 굿판이지만 그들에게 영신제는 아직 유효하다.

이 굿판은 다른 제물은 말할 것도 없고 황소 한 마리를 잡아 제물로 쓸 만큼 큰 굿판이었다. 그 때는 천수만 창리 포구에 고깃배가 그들먹하게 정박했고 마을 사람은 물론 근동에 사는 거개의 사람들이 모두 배 한 척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었다.

이젠 덧없는 세월이 바다를 막아(A, B지구 서산간척지) 사철 파시를 이루며 흥청거리던 포구는 옛말이 되었고 바다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많이 변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영신제가 이젠 절대적 필요성보다는 사라져가는 전통을 지키려는 '행사'로 전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창리 사람들은 '그 옛날의 영화를 재현'시켜 보려는 꿈을 가지고 영신제를 지켜나가고 있다.

당집앞에 모인 마을 사람들
당집앞에 모인 마을 사람들 ⓒ 안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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