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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상 차려내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시는 분은 잘 아실 겁니다.
이 한 상 차려내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시는 분은 잘 아실 겁니다. ⓒ 유영수
설날이었던 어제 하루는 비교적 차분한 가운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명절연휴를 친가에서 이틀 보내고 나머지 휴일은 처가가 있는 남원으로 내려갔다 오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곤 했었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명절이 워낙 짧았던 터라 장모님께서 연휴 지내고 서울로 올라오시기로 해서, 차례를 지낸 후에 모처럼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편도 10시간 안팎의 귀성길 고속도로 정체를 피할 수 있어 다행스럽기도 했지요.

차례를 지내고 아침식사를 한 후 세배를 드렸습니다. 새해 덕담과 함께 세뱃돈이 오고가며 아이들은 날아갈 듯이 좋아하고 모두의 입가엔 웃음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인사 다닐 곳이 많으신 작은집 식구들이 돌아가고 나자 집안이 조용해집니다.

며칠 전 어머니 생신에 모인 식구들이 작은 케이크를 앞에 두고 다들 행복해 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게 바로 행복 아닐까요?
며칠 전 어머니 생신에 모인 식구들이 작은 케이크를 앞에 두고 다들 행복해 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게 바로 행복 아닐까요? ⓒ 유영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순인 '촛불끄는 시간'입니다. 입 모양으로 미루어 보건대 조카도 한 몫 거든 듯합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순인 '촛불끄는 시간'입니다. 입 모양으로 미루어 보건대 조카도 한 몫 거든 듯합니다. ⓒ 유영수
모처럼의 한가한 명절 연휴임에도 반나절만 집에 있으면 답답해지는 저의 성격상, 시내에 나가 고궁이나 한옥마을에 들러 명절분위기를 느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피곤하다며 그냥 집에서 쉬자고 합니다.

새해 첫날부터 따로 다닐 수는 없는지라 하는 수 없이 잠시 낮잠을 청해봅니다. 1시간 넘게 잠을 자고 나니 피로는 풀린 듯하지만, 바깥바람을 안 쐬니 오히려 머리도 아프고 몸이 축 늘어지는 것이 답답해 죽을 지경입니다.

오랜만의 산행인 때문인지 동네 뒷산임에도 꽤 숨가뻤답니다.
오랜만의 산행인 때문인지 동네 뒷산임에도 꽤 숨가뻤답니다. ⓒ 유영수
궁여지책으로 동네에 있는 국사봉에 올라갔다 오기로 했습니다. 산 중턱에 있는 배드민턴장에 가 운동도 하고 맑은 공기를 쐬기 위해서지요. 어머니와 저, 그리고 아내는 간단한 운동복 차림으로 집을 나섭니다. 집 앞 도로는 정체된 차량들로 주차장이 돼버렸네요.

정상까지 빠른 걸음으로 오르내리면 30분밖에 안 걸리는 작은 뒷산이지만, 오랜만의 산행이라 그런지 꽤 힘이 듭니다. 급경사가 반복되고 급한 성격 때문에 빠르게 산을 타면서 어느새 땀이 등줄기를 타고내립니다. 겉옷을 벗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온몸이 땀으로 샤워를 한 듯하네요.

국사봉 정상에는 설날인데도 운동하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띕니다.
국사봉 정상에는 설날인데도 운동하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띕니다. ⓒ 유영수
그래도 기분은 날아갈 듯 좋기만 합니다. 명절치고는 꽤 많은 사람들이 산에서 운동을 하고 있더군요. 산 정상에도 가족들끼리 산보 나온 이들을 제법 볼 수 있었고요. 날씨가 너무 흐려 멀리 경치를 감상할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의 풍경을 담고 있는 저를 빼고 어머니와 아내는 무슨 얘기를 하는지 참 정답게도 나란히 앉아있네요.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제가 샘날 정도로 다정한 고부지간입니다.

저보다 더 우리 식구들을 챙기는 어머니는 '엄마는 왜 딸보다 며느리를 더 예뻐하느냐'는 책망을 가끔 듣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혼 7년차인 지금까지 고부간의 갈등 같은 말은 딴 세상 얘기 정도로 알고 지냈답니다.

크로아티아와의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서둘러 산 정상을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내려오는 길에 다시 만난 배드민턴장 앞에서 어머니가 우리를 돌아보며 물으십니다. "한 게임 하고 가지 않을래?"

제 답답한 마음은 산행을 하며 뻥 뚫렸지만, 배드민턴 라켓과 셔틀콕을 챙겨 오신 어머니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 못하신 상태입니다. 축구경기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서운하실 어머니를 생각해 조금만 몸을 풀고 가기로 했습니다.

멋진 포즈로 공을 날려보내는 어머니. 젊은이들 못지않은 힘과 열정을 지니고 계신 분이지요.
멋진 포즈로 공을 날려보내는 어머니. 젊은이들 못지않은 힘과 열정을 지니고 계신 분이지요. ⓒ 유영수
어머니는 거의 매일 이 산에 올라 등산과 함께 배드민턴을 즐기시는 생활체육 동호인이십니다. 여러 차례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생활체육대회에 나가 배드민턴으로 상도 타 오신 수준급의 아마추어선수시지요.

당연히 제 아내가 일방적으로 압도당하는 경기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전혀 예상 밖으로 흘러갑니다. 어머니의 강력한 서브와 스파이크을 아내가 쉽게 다 받아낼 뿐 아니라, 그 못지않은 파워로 어머니를 공격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쭈... 제법인데!'하며 어머니는 약간 긴장하신 듯했고, 아내는 '어머님 힘이 세서 죄송해요'라는 말과 함께 연신 세차게 어머니를 몰아 부칩니다. 몸 풀기를 끝내고 정식으로 게임을 했는데 어머님이 역부족이니 젊음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나봅니다.

전에 아내와 함께 배드민턴을 몇 번 쳐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잘하는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사진을 찍고 있던 제가 카메라 대신 라켓을 잡아들고 아내를 상대하기 시작합니다.

이상하네요. 설날 오후 좋은 공기를 실컷 마신 덕분인지 저까지 평소 볼 수 없었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아내를 시원하게 이겨버린 것이지요. 저도 제 실력에 놀랄 정도였습니다.

"어머님이랑 하느라 기운이 다 빠져서 그렇다"는 아내의 핑계에 저는 "그럼 내가 연달아 어머니랑 경기를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다시 어머니와 제가 네트를 사이에 두고 섰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어지는 게임 때문에 체력이 바닥난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먹이사슬이 형성된 것인지, 저는 어머니에게 참패를 당하고 만 것입니다. 허탈하게 쓴 웃음을 지으며 배드민턴장을 나서야 했지만, 재밌는 운동 덕분에 세 사람 모두 행복한 발걸음으로 산을 내려올 수 있었지요.

평소 '배드민턴 그까이거 뭐 운동도 아니지 뭐...' 이런 생각으로 우습게 알았는데 제법 운동이 되더군요.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적셔진 지 오래고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목을 타고 내려옵니다.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오후였지요.

가진 것이 많지 않고 지위나 명예를 누리진 않지만 건강하고 늘 밝으신 어머님과 부족한 가운데서도 시댁식구들 모두에게 섬세하게 신경 써주는 아내가 있어 올 한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과 웃음만 가득한 한 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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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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