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기원
강원도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자갈치란 말은 과자를 통해서 익혔습니다. 봉지를 뜯어 과자를 꺼내보면 물고기 모양이었지요.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이 났습니다. 과자를 지금처럼 쉽게 사서 먹던 시절이 아니어서 자주 먹지는 못했지요. 그래도 소풍이나 운동회 날이 되면 한 봉지씩 사서 먹었던 과자 중의 하나입니다.

"자갈치가 꽁치나 새치처럼 생선 이름인 줄 알았네."

함께 여행을 한 동료의 말에 와르르 웃었지만, 자갈치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갈치 시장이 있었던 곳은 예전에는 자갈밭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항 이후 일본인 상인들이 인근에 부산수산주식회사를 세우면서 이에 대항하기 위해 이곳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발달했다고 합니다.

자갈치 시장의 삶이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게 지난 대선 무렵 '자갈치 아지매'의 찬조 연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연설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도 대선 결과를 보면서 느꼈던 환희도 바쁜 일상에 묻어둔 채 바쁘게 지내왔습니다.

자갈치 시장에 들어서니 막 건져 올린 생선처럼 싱싱한 삶의 활기가 느껴졌습니다. 길 따라 늘어선 싱싱한 해산물, 꼼장어 굽는 냄새, 싱싱한 회 있으니 들렀다 가시라는 자갈치 아지매들의 사투리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시장에 오면 한 군데 머물러 쓴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것도 좋지만 이런 삶의 활기를 느낄 수 있어 더욱 좋습니다.

그 넘쳐나는 활기에 취해 한참을 돌아다니다 문득 한 곳이 눈에 띄었습니다. 할머니 한분이 좌판을 벌여놓고 삶은 고기를 썰고 계셨습니다.

"할머니, 이게 뭐예요."
"고래 괴기여."
"아, 고래!"

ⓒ 이기원
고래 고기란 말에 함께 간 동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따금 동해안에서 죽은 고래를 끌어올린 어부가 횡재를 했다는 뉴스를 본 적은 있지만 돌고래가 아닌 고래를 직접 본 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썰어놓은 고래 고기가 꽤나 먹음직스럽게 보였습니다.

"이거 얼마에요."
"한 접시에 만 원."
"꽤 비싸네."

고래를 마음대로 잡을 수 없으니 비쌀 거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자갈치 시장에 온 기념으로 두 접시 시켜놓고 소주 한 잔에 목을 축이고 가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좌판에 빙 둘러 앉았습니다.

소주 한 잔에 고래 고기 한 점씩 먹었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거라 잔뜩 기대를 했지만 기대만큼 독특한 맛이 나는 건 아니었습니다. 꼭 순대집에서 순대와 함께 나오는 삶은 간 썰어놓은 맛이 났습니다. 모양도 그와 비슷했습니다.

"어디서 오셨어?"
"강원도에서 왔습니다."

먼 데서 오셨다며 할머니는 덤으로 고래 고기 한 줌을 더 얹어 주셨습니다. 술 한 병이 금방 바닥이 났습니다. 고래 고기 한 점을 양념간장에 찍어 입에 넣는데 곁에 있던 동료가 환하게 웃더니 한 마디 했습니다.

"할머니,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