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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최후>
<독재자의 최후> ⓒ 리브로
1차 세계 대전 이후 권력을 잡은 독재자들 가운데 가장 성공한 인물은 누구일까? 누구보다 악독하다던 히틀러보다 더 악독한 그는 누구일까? 겉으로는 화려한 업적을 자랑하지만 안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광기 어린 학살과 만행을 저질렀던 그는 누구인가? 바로 요시프 스탈린이다.

스탈린은 히틀러와 나치 독일에 맞서 소비에트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었던 사람이다. 19세기 농업사회에 가까운 러시아를 일약 산업사회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가난과 굶주림 속에 처한 러시아를 먹고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 때문인지 그의 장례식장에는 수백 만 명의 소비에트 시민들이 몰려와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한 평가를 내리는 뒤에는 분명 어두운 그림자가 숨어 있다. 산업사회로 가는 길목 저 편에는 수백 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강제 노동수용소와 감옥에 들어가야 했다. 고문과 굶주림 때문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죽어나야 했다.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이면 이 땅에서 모두 사라져가야만 했다. 그 까닭에 스탈린은 부하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맞는 역사를 다시 쓰게 하거나 사진들까지도 숱하게 고치도록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셀리 클라인이 쓴 <독재자의 최후>(길산·2005)에 잘 나타나 있다.

"인간의 본성에 잠재되어 있는 정신병적인 측면 즉 이 책에 등장하는 독재자들이 자행했던 고문과 사람을 살해하면서 느끼는 쾌감이라는 문제에 이르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확연히 구분할 수 있다. 히틀러, 폴 포트, 이디 아민, 스탈린, '파파 독' 뒤발리에, 사담 후세인…. 이들은 모두 어떤 말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각자의 방식으로 저질렀다. 스탈린은 희생양으로 삼은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보는 것에 대해 '병적인 흥미'를 느꼈으며, 파파 독은 자신의 집 안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즐겨 보곤 했다."(서문)

그야말로 이 책은 이 땅을 거친 사람들 가운데 독재자로 살았던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끄집어 내고 있다. 여기에는 자신의 견제세력을 그 싹부터 제거한다는 명목 하에 어린이들까지도 숱하게 살해했던 '헤롯 대왕'도 있고, 낮에는 빵을 먹듯이 시체를 뜯어먹고 밤에는 온갖 여인들을 그 먹이 상대로 삼았던 테무친 '칭기스칸'도 있다. 물론 합병을 명목으로 세계 곳곳을 침략했으며 아우슈비츠 독가스 실에 유대인들을 넣어 15분 안에 모두 죽게 만들었던 '히틀러'도 있다.

그밖에 칠레를 공포정치로 내몰았던 독재자 '피노체트'도 있고, 밖으로는 독립외교를 펼친다며 자국민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하지만 안으로는 죽음의 운하를 만들어 수십 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강제수용소로 내 몰았던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도 있다. 또 짐바브웨의 모든 땅들을 개인소유로 만들고서 오직 자기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을 위해 땅을 나눠주었을 뿐 그를 반대하는 모든 자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숙청해버렸던 '무가베'도 있고, 정부가 금하는 행동을 하다가 적발된 사람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프놈펜의 투올 슬렝 수용소로 끌고 가 죽게 만들었던 캄보디아의 '폴 포트'도 있다.

"1973년 크메르루주는 캄보디아 영토의 60퍼센트 정도를 장악했고, 1974년 3월에는 옛 수도 우동을 점령했다. 앞으로 다가올 끔찍한 미래를 예고하듯, 크메르루주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집단으로 살해했고,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그들의 터전에서 시골로 내 쫓았다. 수 백 명의 교사와 지식인, 공무원들이 단지 대다수의 국민들보다 교육을 조금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사는 곳에서 쫓겨나거나 처형되었다."(285쪽)

그렇게 그들 독재자들은 숱한 고문과 살인을 마음대로 저질렀다. 자기 편에 서지 않는다는 구실을 만들고서 실로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을 죽음의 자리로 내몰았다. 그러나 그런 이유도 뜻도 모른 채 이 땅에 이슬처럼 사라진 사람들도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많다.

이 책을 읽어보면 그들 독재자들이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해 가기 위해 사용한 방법들이 나온다. 그것은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나라 살림을 회복시킨다는 명분으로 정권을 잡고 출발하지만 이 숨은 이면에는 엄청나게 많은 반대편자들을 죽인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나라를 위해 정권을 잡았다는 구실을 대지만 안으로는 그를 모함하고 헐뜯는 사람이 있으면 그 누구든 가차없이 죽여 없앤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감시하고 불러들여 고문하고 맘대로 죽일 수 있는 자신만의 비밀경찰 조직을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이들을 동원하여 최고층에서 최하위층 사람들까지도 수시로 감시하게 만들었고, 언제라도 불러들여 회유를 시키거나 아니면 죽이도록 지시했던 사실이다.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방송사와 언론을 쥐어틀고서 외부로 나가는 모든 통로를 막아 버린다는 것이다. 그것이 세계 누구를 막론하고 독재자들이 써먹었던 전형적인 방법이었다.

"캄보디아 정부가 신문사와 TV 방송국을 폐쇄하는 것과 함께 외국 대사관과 그 직원들을 모두 자국에서 내몰고 우편 업무를 중지했기 때문에 국내에서 벌어지는 잔학 행위가 외부 세계로 좀처럼 빠져나가지 못했던 것이다. 이따금씩 누군가가 우연히 캄보디아의 경계를 넘어갔다가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량 학살과 구타, 참혹한 생활상을 목격하고는 외부 세계에 전하긴 했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지어 유엔은 정상회의에 캄보디아를 참여시킬 방법을 모색하기도 했다."(293쪽)

그러나 그토록 막강한 독재권력을 휘두르던 그들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닥쳐 온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 악명 높다던 스탈린도, 히틀러도, 폴 포트도 결코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그들이 맞이한 죽음은 다들 달랐다. 헤롯은 구더기가 그의 살 파먹고 갉아먹어서 죽었고, 스탈린은 독살돼 죽었고, 히틀러는 자신의 방공호 속에서 권총으로 방아쇠를 당겨 자살했다.

그렇기에 어떤 방법으로 정권을 거머쥐었다 할지라도 독재자의 정권도 언젠가는 최후를 맞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사실을 통해 무엇을 생각해 볼 수 있겠는가?

그것은 누군가가 말한 바 있듯이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며 사는 길 밖에 없다. 이 땅에서 아름다운 퇴장을 맞이한 자만이 다시금 이 역사 속에 아름다운 등장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광기 어린 학살과 만행을 저질렀던 그들 독재자들의 삶과 최후를 들여다 보면 분명히 알수 있는 사실이다. 이 역사 속에 그들은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자꾸자꾸 등장하기 때문이다.

독재자의 최후

셸리 클라인 지음, 이순영 옮김, 길산(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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