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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눈이 많이 온 다음날 이른 아침 아버지가 인근에 있는 우리 집에 찾아오셨다. 항상 일방적으로 명령을 해 어릴 때부터 불편했던 아버지였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집에 쳐들어온 아버지는 휴일이라 아들과 놀고 있던 나에게 “빨리 산에 갈 준비하고 나오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주섬주섬 따뜻하게 차려입고 나갔더니 차안에 계시던 아버지는 “왜 이렇게 늦게 나오냐”며 퉁명스레 대하신다. 누가 나오고 싶었나?

일본에서 오래 사신 아버지는 일본어를 잘하시기에 일본어 통역 겸 사냥 가이드를 하고 계신다. 그래서 겨울만 되면 틈틈이 사냥개들을 훈련시킬 겸해서 산을 자주 찾으신다. 몇 년 전만 해도 한 달에 열흘 이상 가이드를 하셨지만 요즘은 이삼 일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냥하는 개들을 쉬게 해선 안 된다며 이틀에 한 번씩 산으로 훈련하러 나간다. 사냥하는 게 싫은 나로서는 따라나서는 길이 여간 곤욕이 아니다.

▲ 실제 사격이 아닌 사진용 자세
ⓒ 송승헌

▲ 호루라기 소리에 잽싸게 달려오는 충견
ⓒ 송승헌
겨우 마음을 추스른 뒤 카메라를 들고 산으로 따라나섰다. 오랜만에 아버지를 카메라에 담았다. 어릴 때부터 아이는 거칠게 키워야 한다면서 냉정하게 대하셨던 아버지. 푸근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아본 적도 거의 없다. 대신 어머니로부터 몰래 용돈을 받아썼다. 그러다 보니 절약이 어릴 적부터 몸에 배어 요즘은 아내에게 짠돌이라고 놀림을 받곤 한다.

▲ 눈길을 헤치며
ⓒ 송승헌

▲ 돌담을 단숨에 뛰어넘는 사냥견
ⓒ 송승헌
아버지는 올해로 64세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내가 아들을 낳았을 때 “아기는 막 키워야 한다”면서 포대기에 싸인 3개월 된 아기를 공중으로 던져 받곤 했던 무서운 분이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내 아들은 할아버지를 잘 따른다. 걸어 다니기 시작하는 아들은 요즘 할아버지한테 권투를 배워서 엄마며 아빠를 스파링 파트너로 삼고 달려들어 마음이 더 아프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무척 몸이 야위고 약골이었다. 어머니를 닮았다. 아버지는 어린 나를 단련시키려고 초등학교 입학 때 복싱글러브를 사오셨지만 나는 도망 다니기 바빴다. 성격상 닮은 데가 거의 없는 아버지와 난, 고양이와 쥐와 같은 관계였다.

이 날도 사냥에 데려가면서까지 아들을 교육시키려는 아버지의 바람을 나는 채워주지 못했다. 사실 사냥보다는 개 훈련이 목적이었다. 아버지는 이날 오전 내내 사냥개들에게 물 한 모금 주지 않은 채 이 곳 저 곳 다니며 훈련을 시켰다. 난 너무 안타까웠지만 아무 말 못했다. 충견들이 도랑물로 갈증을 풀곤 하는 게 너무 안타까울 뿐이었다.

더 심했던 것은 그 추운 겨울, 아버지가 저수지 한가운데서 개들에게 공을 던져 가져오게 하는 운반훈련을 시켰던 일이다. 나는 개들이 불쌍해서 말렸다가 고양이 앞에 쥐 신세가 되어야 했다.

▲ 제주의 전통 무덤양식
ⓒ 송승헌

▲ 저수지훈련
ⓒ 송승헌
아버지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반대로 나는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인생은 정답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난 아버지처럼 살지 못할 것 같다. 아버지와 난 참으로 기구한 운명인가 보다.

덧붙이는 글 | 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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