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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수>
<묘수> ⓒ 예문출판사
흔히 사회생활 잘 한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을 두고 우스갯소리로 '세상사는 요령을 안다'고들 말한다. 과연 세상사는 요령이란 게 대체 무엇이 길래? 알고 보면 별 것 아니다. 적당히 때와 시기를 보아가며 움직이고, 때로는 주위 사람들에 맞춰가며 타협할 줄 알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잘 구분해서 움직이면 된다.

그러나 말로 하긴 쉬워도 이런 간단한 미션조차 실생활에서 그대로 수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여간 많은 게 아니다. 우리 일상은 언제나 수많은 선택과 변수에 놓여 있다. 때로는 자존심 때문에, 혹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사이의 불일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갈등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하긴 인생이 단순한 규칙대로만 움직일 수 있다면, 지금 시중에 넘쳐나는 수많은 처세술 관련 교본들이 굳이 왜 필요할까? 성공 법칙 혹은 처세 요령을 논하는 수많은 책 내용은 알고 보면 대동소이하다. 그 본질은 냉정하게 말해서 우리가 '몰라서 못했던'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알고서도 하지 않았던'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미묘한 차이를 결정짓는 요인은 무엇일까? 역사 자료에 뿌리를 두고 인간학을 꾸준히 연구해온 작가 원하오는 저서 <묘수>에서 처세의 우열을 가늠하는 결정적인 2%가 바로 '유연한 사고'라고 주장한다.

<묘수>는 중국을 대표하는 역사 위인들을 둘러싼 일화를 바탕으로 처세의 미학을 논한다. 사실 제목과 달리 기상천외한 '전략'이나 '묘수'는 없다. '넓은 마음으로 벗을 얻으라' '시세에 따라 대책을 세우라' '서두르면 이룰 수 없으니 인내가 우선이다'와 같은 장의 내용들은, 제목만 보면 '나도 알아'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하다.

책은 일상에서 직면하게 되는 다양한 돌발 상황 속에서, 그에 대처하는 인물들의 순간적인 선택이 그들의 향후 인생에 결정적인 변수가 되는 모습을 묘사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들이 임기응변으로 현 상황만 피하기보다는 '대의를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한다'는 나름의 원칙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원대한 꿈을 위해 굴욕을 참고 백정의 다리 밑을 지나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한신(중국 초한시대 유방의 참모)이 그랬다. 그는 큰 목표(천하 통일)를 위해서 작은 것(자존심, 경제적 손해, 개인 욕망 등)에 결코 연연하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어떤 상황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명예롭지 못할 바에는 죽음도 불사하는 것이 고전적인 영웅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고지식한 원칙이 결코 삶의 승리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명분이 앞선다 할지라도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감정에 치우쳐 달려드는 혈기보다는 한 발 물러날 줄 아는 여유가 미래를 만든다.

중국 역사를 통틀어 모범적인 창업 군주의 전형으로 평가받는 인물이 한 고조 유방이다. 그는 항우 같은 절대 무력이나 명문가의 후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적수공권(맨손과 맨주먹,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음)으로 사지에서 기업을 개척하고,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거듭났다. 수많은 환란 속에서 때로는 상황에 맞게 자신을 굽힐 줄 알고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며 타인의 주장을 받아들일 줄 아는 개방적인 자세를 보인 게 이유였다.

오기와 자존심으로 현실을 외면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비겁하다. 저자는 성공의 조건으로 '나무처럼 휘어지지 않는‘ 무모하고 경직된 태도보다 ’갈대처럼 유연하고 부드러운 사고‘를 강조한다.

여기서 바람직한 처세는 바로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의 과정일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유방이나 한신 같은 처세란 결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일시적으로 타인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 아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인내의 소산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세상사는 요령을 몰라 정말 힘들다면, 굴욕적이고 암울한 상황에서 원대한 꿈만을 바라보고 활로를 개척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었던가를 다소 한번 돌이켜보는 게 어떨까.

묘수 - 5천년 중국 역사에서 배우는 영웅들의 선택과 결정

원하오 지음, 송철규 옮김, 예문(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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