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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어디로 가나?> 겉그림
<한국사회 어디로 가나?> 겉그림 ⓒ 굿인포메이션
우리사회에서 권위라는 게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대통령이 하는 말도 그렇고 집안 어른이나 학교 선생님들이 하는 말에도 권위가 없는 듯하다. 자식들은 집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는 말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어디 그 뿐이랴. 기업지배구조에서 나타났던 옛 권위들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옛날에야 기업총수가 가족체제로 모든 경영권을 쥐고 뒤흔들 수 있었지만 지금에는 소액주주들과 시민단체가 법적으로 감시하며 통제하고 있으니 그 권위가 소멸되고 있는 듯하다. 직장 내에서도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가 언제 뒤바뀔지 모른다. 윗사람이 일방적으로 하는 강압적인 권위주의적 명령도 그 영향력을 잃고 있는 추세이다.

종교계의 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도 다르지 않다. 교회와 관련된 일만을 성직(聖職)이라 여겨왔던 옛 목회자들은 그야말로 죽을 각오로 교회를 키워 왔다. 때론 빚더미에 앉으면서까지 모험을 일삼으며 교회를 성장시켜 왔다. 하지만 그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종교적인 무조건적 권위주의가 한 몫 톡톡히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격려와 감동이 없는 무조건적인 강압적 권위는 아무리 성역(聖域)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그 힘을 잃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서 나타나는 권위주의의 퇴보, 이른바 탈권위주의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참된 권위는 과연 어떤 것인지를 짚어주는 책이 나왔다. 바로 조대엽·박길성외 다수의 학자들이 쓴 <한국사회 어디로 가나?>(굿인포메이션·2005)가 그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 등 지구적 수준에서 전개되는 거대전환의 사회변동 과정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급속하고도 전면적인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구래의 권위주의적 질서는 빠르게 해체되고 있으나 새로운 권위에 대한 합의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위로는 대통령에서부터 밑으로는 초등학교의 개별 학급에 이르기까지 억압적 권위주의에 유착된 기성의 권위는 해체되고 있으나 새로운 권위의 패러다임은 제시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전환기를 맞은 한국사회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권위의 패러다임은 무엇이며 어떻게 구축되어야 하는가?"(서문)

이 책은 권위주의의 해체, 탈권위주의 시대가 오기 시작한 그 시점을 바로 민주화 투쟁에서 찾고 있다. 과거 군사정권에서 행해왔던 일방적인 권력에 의한 권위가 그 운동을 기점으로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고 보는 것이다. 군사정권 시절 총구에서 나온 말은 권위 그 자체였고, 국가 기관에서 그 틀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사회 전반에 걸쳐 그 억압적 권위가 만연했던 것이다.

이후 문민정부시절을 지나 국민의 정부 시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일련의 모습들 속에서 권력에 의한 권위는 서서히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되짚어 주고 있는데, 그것을 세 가지로 묶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지식의 서열화가 곧 사회적 신분의 서열화로 이어졌던 대학진학과 졸업에 대해 이젠 골고루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누구나 원하면 나이가 많든 적든, 심지어 직장에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두들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지식기반 사회가 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엘리트 의식을 지향하는 학교와 그것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성숙해진 우리사회의 시민들은 그런 의식들이 거품이 빠져나가듯 많이 빠져나간 상태로 보고 있고 또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 지식의 평등화가 지식권력에 의한 권위주의를 그만큼 수그러들게 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시민운동이 활성화되면서부터이다. 시민운동이 자리하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정치권력에 의한 권위주의는 누구 하나 비판할 수 없는 성스러운 영역 그 자체였다. 그러나 시민운동이 활발해지면서부터 점차 권위주의에 매스를 가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실시한 시민단체들의 활동으로 인해 정치사회는 무능과 부조리를 드러내게 되었고, 시민단체들이 추진해 온 행정감시, 입법청원, 그리고 의정감시 등이 과거 권위주의 정치질서 속에서 행해왔던 못된 관행과 구습을 깨는데 엄청나게 큰 몫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밀실 속에서 정치와 경제, 그리고 언론이 한 몸을 이뤄 '밀어붙이기식 권력'을 유지했고 또 그 권력 속에서 나름대로의 권위로 통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형편이 못 된다. 대안 언론과 비판 언론들, 그리고 인터넷상에서 자유롭게 돌고 도는 수많은 누리꾼들이 실시간 전달하고 또 견제하고 비판하고 있는 까닭에 감히 밀실 속에서 통제해왔던 그 옛 권위는 존재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안타까운 것은 민주화되기 이전, 그 옛날 권력형 권위주의 시대 때 그 수뇌부로부터 겪었던 밀어붙이기식 권위를 그 때의 아랫사람들인 지금의 수뇌부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밀어붙이기'는 민주화 투쟁기에는 유효한 지도자의 자질일지는 모르나, 민주화 이후에 필요한 자질이 아니었다. 민주주의는 어쩌면 답답하고 빈혈증적이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의 동의를 얻어내고, 협상과 타협을 통해서 의회와 합의를 도출해 내었을 때 민주적 결정은 강력한 권위를 갖는다는 사실을 민주화 이후의 지도자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134쪽)

앞서 말했지만 우리 사회는 점차 어른이 없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어른들이 하는 말에 권위가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나 맹자나 다른 성인들은 두말 할 것도 없고 당장 우리나라의 대통령에서부터 사회 지도층, 그리고 학교 선생님들이나 가정에서 하는 부모님들의 말에도 영향력이 없는 듯 보인다.

이러한 때에 어떻게 하면 참다운 어른으로서, 어떻게 하면 떨어질 대로 떨어진 그들의 권위를 바르고 올곧게 세울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옛날 민주화시대 이전으로 돌아가 총부리에서 나오는 권력형같은 그런 권위를 되찾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때요, 이미 새로운 변화 속에서 추구해야 할 참된 권위는 다른 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그만큼 한 가지만을 원하지 않는 다원화된 사회로 발전했고, 시민사회와 젊은층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많아졌고, 누리꾼들도 더 다양한 의견들을 내 놓고 또 그들이 나름대로의 여론을 주도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새로운 시대에 알맞은 새로운 권위를 바르게 그리고 올곧게 곧추 세울 수 있을 것인지는 이 책에서 대답해 주고 있는 말로 끝을 맺는 게 도리일 듯싶다. 이는 앞으로도 권력의 최대 핵심 자리에 서게 될 대통령이든지 정치인이든지, 기업의 총수이든지 사업을 이끄는 경영인이든지, 학교의 선생님이든지 가정의 부모님이든지, 심지어 종교계 지도자들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다음 세대에 맞는 참된 권위를 세워나가길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만들었던 위계적 권력은 급속한 와해 과정에 있으며, 사회의 주요 연령층으로 성장한 젊은 세대는 그것을 교체하는 새로운 권력, 즉 설득적 권력을 창출하고자 한다. '위계적 권력'이란 전통적 권력 자원에 내재된 억압, 조작, 영향력의 행사를 지칭하며, '설득적 권력'은 '자발적 복종' 또는 '감동을 통한 복종'을 이끌어내는 유인, 격려, 설복의 속성을 가진 권력을 의미한다. 위계적 권력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영향력을 상실했거나 새로운 세대에게는 극복해야 할 어떤 걸림돌로 여겨지게끔 되었다. 신세대는 설득적 권력을 원한다. 자신들의 내면세계, 문화적 취향, 생활양식과 자연스럽게 접합하면서 어떤 소중한 지침을 내려주는 일종의 가디안적 권위가 그것이다. 그것은 억압이 아니라 격려의 힘이며, 감동을 통한 유인이다.(288쪽)

한국 사회 어디로 가나? - 한국사회연구소 연구총서 2

조대엽.박길성 외 지음, 굿인포메이션(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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