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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108배도 힘든데 1080배라고?"

그것이 남편의 대답이었다. 지난 10월, 우리부부는 불교단체 붓다클럽에서 수행하는 월례법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불경 한번 제대로 읽지 못하는 우리부부에게 채찍 같은 수련법회였다.

수련법회에서 핫이슈는 1080배였다. 불도를 수행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였지만 붓다클럽 불자들은 내심 걱정을 하는 눈치였다. 우리부부 역시 고민을 했다. 허리가 아파 즐겨 하던 운동까지 거르는 남편은 허리 아픈 것을 핑계 삼았다.

"108배나 하고 내려오지 뭐! 근데 당신은 1080배 할 수 있어?
"그러게요. 1080배로 참회할 수 있다면 해 보지요."
당당하게 큰 소리 쳐 놓았지만 나 또한 내심 걱정이 되었다.

ⓒ 김강임
10월의 주말, 한라산 자락 구구곡에 자리 잡은 천왕사에는 저녁 7시가 되자 어둠이 찾아왔다. 산사의 밤은 해가 지면 금방 캄캄해진다. 더욱이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천왕사의 밤은 눈물이 날 정도로 고요했다.

ⓒ 김강임
하지만 이날만큼은 천왕사 대웅전을 환히 밝힌 전깃불이 백팔번뇌 참회문과 함께 불을 지폈다. 예불을 끝내고 시작된 1080배. 그러나 놀랍게도 30여 명의 붓다클럽 불자들은 한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1080배를 모두 해냈다. 저녁 7시 법회부터 시작된 1080배는 자정이 되어서야 끝났다. 하지만 1080배 수행으로 불자의 마음에서 느낄 수 있었던 깨달음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묻어둔 숙제였으리라.

ⓒ 김강임
그리고 계절이 바뀌면서 천왕사는 다시 눈 속에 덮였다. 한라산 자락에 숨어있는 산사는 기쁜 일이 있을 때는 뒤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찾게 해 주는 곳이다. 그리고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수행의 길로 인도해 주었다. 가끔은 '마음의 안식처'와 '피안의 둥지'가 되기도 했다.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천왕사.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천왕사는 꼬불꼬불 이어지는 산 중턱을 밟고 가는 것이 매력적이다. 이때 자동차 안에 천수경을 틀어 놓으면 내 마음은 어느새 신선이 되는 듯한 기분이다. 산사 가는 날이면 '옛 님'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목욕을 하고 꽃단장을 한다.

ⓒ 김강임
산사의 고드름 무얼 먹고 자랐을까? 천왕사 대웅전에 얼음 꽃이 피었다. 아니 겨울열매가 달렸다고나 할까. 사람의 키보다도 더 큰 고드름. 고드름은 겨우내 눈 덮인 산사에서 무얼 먹고 자랐을까? 아마 중생들이 씻어낸 탐욕을 먹고 자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저렇게 거꾸로 자라는 것은 아닐는지?

ⓒ 김강임
천왕사 앞마당에는 겨우내 쌓였던 눈도 사람의 키만큼 쌓여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찾아간 산사인데 앞마당의 풍경에 반해 버린다. 그리고는 1080배를 하며 생각했던 참회의 회고록을 써본다. 산자락에 솟아있는 남근석,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기암괴석, 그리고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얼음 녹는 소리, 겨울산사에선 자연의 녹슨 소리마저 정화되어 해맑음의 소리로 들려온다.

ⓒ 김강임
삼성각으로 발길을 옮겨 보았다. 아마 그 계단은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108개가 아닐는지. 지난 10월 108개의 염주를 돌리면서 머리를 조아렸던 생각에 감회가 새롭다.

ⓒ 김강임
삼성각 주춧돌 앞에서 동자승이 주화와 쌀을 들고 있는 모습에 발길을 멈춘다. "아, 참! 나는 내가 가져온 보시는 무엇인가?"
주머니 속을 더듬거리다가 대웅전에서 따온 고드름을 내 마음속에 담는다. 그리고 삼성각에서 풀어 녹는다. 고드름은 1분도 못되어 사르르 녹아 버린다.

ⓒ 김강임
중생들이 켜 놓은 소원의 등불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저마다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마음. 재물 없이 베푸는 7가지 보시가 있다고 했거늘. 내 마음속에 담아둔 천왕사 대웅전의 고드름을 따다가 7가지 보시로 공덕을 쌓아 본다.

ⓒ 김강임
화안시, 언시, 심시, 안시, 신시, 좌시, 찰시나 방사시를 실천하는 마음의 보시를... 그리고 올 한해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서기를 기도 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천왕사 가는길- 제주시- 노형노타리- 한라수목원- 1100 도로 -충혼묘지 주차장-천왕사로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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