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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찍으려고 하니 많이 민망했습니다. 저건 기본이고, 훨씬 더 주렁주렁 이것저것 매달고 다닐 때도 있습니다.
막상 찍으려고 하니 많이 민망했습니다. 저건 기본이고, 훨씬 더 주렁주렁 이것저것 매달고 다닐 때도 있습니다. ⓒ 양중모
그러면, 또 다시 쇼핑을 시작해야 하는데, 옷들을 팔에 걸치고 다니려면 꽤나 귀찮습니다. 그래서 앞서 말한 옷걸이 되는 방법을 응용해 걸어 다닐 때도 제 몸을 옷걸이처럼 만들곤 합니다. 그녀가 덥다며 벗어놓은 코트를 팔에 걸쳐서 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머리에 푹 뒤집어쓰고 다니는 것입니다.

"오빠, 꼭 그러고 다녀야 해? 안 창피해?"

가끔 그녀가 물어봅니다. 이미 무뎌진 신경 세포는 '창피'라는 단어가 어느 나라 말인지도 굳이 기억 저장소에서 꺼내들려 하지 않습니다.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면, 그녀는 다시 쇼핑을 그대로 진행합니다. 그러고 보니, 아무래도 제가 들고 있는 짐이 더 많았기에 그녀보다 한 걸음 늦게 따라다니게 되고, 그러니 직원들이나 사람들이 곁눈질로 이상하게 쳐다보는 건 '그녀와 제'가 아닌 저 혼자 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고 돌아다니는 동안, '이상한 놈 다 보겠네'라는 눈빛과 '쿡'이라는 비웃음을 감수한 건 저 혼자만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 여자친구는 그런 것에 연연할 만큼 소심하지는 않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옆에서 남자친구가 그러고 다니는데 신경이 안 쓰이는지 궁금했습니다.

은근슬쩍 이런 모습을 사진 찍어달라고 했더니, 창피해하기는커녕 빠른 속도로 혼자서 에스컬레이터를 빠르게 내려가 사진을 찍어줍니다. 그녀가 사진을 찍는 동안, 에스컬레이터 옆에 있던 백화점 직원의 왠지 모를 싸늘한 눈빛을 받아야 했던 것은 물론 저 혼자만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여자친구와 참고 쇼핑을 해주었다기보다, 그런 모습으로 다니는 저랑 같이 다니는(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데리고 다니는) 여자친구에게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여행용 가방이 무겁다며, 이마에 지고 다니기도 했고, 여름이 되면 버스에서 덥다며, 무수한 털이 보이는 바지를 확확 걷어올리기도 했으니(아저씨는 바지를 걷고, 젊은이는 웃통을 벗는다고 하죠) 얼마나 창피했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해보면, 제가 그녀를 위해 참아주는 게 아니라, 그녀가 절 위해 더 많이 배려해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쇼핑을 하는 동안 제가 참기 힘든 만큼, 이상한 꼴로 다니는 남자친구 모습을 남들이 쳐다봐도 무시할 수 있는 인내력이 더 대단한 건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아, 그러고보니 그 돼지와 토끼가 의인화되어 나오는 만화에서 돼지가 토끼의 단점을 보며, 마음이 넓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나왔네요. 그런데 더 웃긴 건 토끼가 바라본 돼지의 단점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이죠. 남에게 베풀고 있다고 생각해보기 전에 남이 자신에게 베풀고 있는 건 없는 지 생각해볼만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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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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