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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일괄 구입한 카메라 바디와 부속기기 일체. 따로 출석을 불러줘야 할 정도로 가지 수가 많다.
이번에 일괄 구입한 카메라 바디와 부속기기 일체. 따로 출석을 불러줘야 할 정도로 가지 수가 많다. ⓒ 유영수
결국 애초 기변할 때 잡았던 예산의 두 배를 훨씬 초과하는 금액을 들여 그 카메라를 사기로 했답니다. 한 마디로 정신 나간 행동을 하고 만 것이지요. 제 봉급 한 달치보다 훨씬 많은 돈으로 취미생활에 불과한 사진을 찍기 위한 비용으로는 너무 과한 대가를 치른 셈입니다.

당연히 저한테는 둘도 없이 소중한 취미인 사진이기에 어떤 비용과 대가도 아깝지 않지만, 가정주부인 아내 입장에서야 어디 그렇습니까. 그래서 얼마를 주고 샀는지 그 구체적인 금액은 1급 기밀사항으로 관리하고 있답니다. 아마 아내가 그 금액을 아는 날에는 까무러칠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아내도 정확한 비용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카메라를 살 수 있었는지 조금 궁금하실테지요.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은 모조리 정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긁어모으고, 당연히 그걸로는 턱도 없이 모자라 신용카드로 12개월 할부를 이용했습니다.

현금을 어떻게 모았는지 말씀드리면 아마 처량하다는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동안 열심히 모은 원고료에 운좋게 거머쥔 좌담회 알바는 물론 집에 고이 모셔뒀던 백화점상품권까지 '깡'을 해서 최대한 현금을 모았습니다. 카드 할부수수료가 무척이나 비싸기 때문에 한 푼이라도 현금을 더 내야 했기에, 지난 12월에는 <오마이뉴스>에서 받은 원고료가 17만원이나 될 정도로 정말 열심히 노력했답니다.

말이 쉬워 한 달에 기사 15건이지 이틀에 한 번꼴로 기사를 쓴 셈인데요, 어떤 날은 자기 전에 한 꼭지 쓰고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출근 전 한 꼭지를 더 쓸 정도로 눈물겹게 원고료를 모았습니다. 한 달 동안 집에 오자마자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계속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으니 아내의 원성도 대단했었던 건 물론이었고요.

그래도 현금이 턱없이 모자라 지난 전시회 때 출품했던 작품 하나를 아버지께 거의 강매 수준으로 넘겨드리고 찬조금을 조금 받기도 했습니다. 작품이라 하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의 사진이기에 새로 살 카메라로 나중에 좋은 작품을 만들어 교환해 드린다는 단서조항도 달고 말이죠.

이놈만 보고 있으면 배고픈 줄도 모르겠습니다.
이놈만 보고 있으면 배고픈 줄도 모르겠습니다. ⓒ 유영수
아무튼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지난 주 화요일 드디어 카메라를 대면하게 됐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가격비교를 수없이 해본 후 아는 사촌동생의 소개를 받아, 남대문에서 그 가격보다 조금 더 저렴한 비용으로 장만을 하게 된 것이죠.

커다란 쇼핑백 3개에 가득 물건을 넣고 낑낑대며 집에 온 그날, 전 10가지도 넘는 그 상품들을 아내가 보면 행여 눈치라도 챌까봐 쇼핑백 하나는 옷장 속에 숨겨놓고 다른 하나는 작은 방에 넣어둔 채 카메라 바디와 렌즈 하나만 달랑 보여주는 치밀한 작전을 펼쳤습니다.

그 후에도 아내가 '솔직히 말해봐. 도대체 얼마나 비싸길래 말을 못하는 거야?' 이렇게 추궁을 해도 '할부 반이라도 내줄 거면 얘기하고...'라며 슬그머니 말꼬리를 돌리고 있지요. 언제까지 비밀이 유지될지는 솔직히 장담을 못하겠네요. 아내가 맘만 먹으면 인터넷으로 검색만 해봐도 금방 대략적인 예산이 나오니 말이죠. 아직도 고가의 망원렌즈는 한번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어림짐작으로 봐도 비싸 보이니 보여줄 엄두가 도대체 나질 않습니다.

물론 아내에게서 전혀 도움을 받지 않고 제가 용돈과 원고료 모은 돈으로 현금을 충당하고, 매월 갚아나갈 할부금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해결하는 데 뭐 숨길 일이 있냐고 하시면 그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돈을 모을 수 있으면 카메라를 사지 말고 생활비에 더 보태면 얼마나 좋냐'고 항변할 아내에게도 저는 할 말이 없지 않겠습니까.

좋은 카메라를 갖게 되어 기분은 날아갈 듯하고 이놈만 보고 있노라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고픈 줄 모를 정도로 뿌듯한 반면, 그동안 저와 동고동락한 보급형카메라에 대한 애틋함도 만만치 않답니다. 그 가격대에 비해 최고의 화질과 SLR(렌즈교환식) 카메라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수동기능으로 저에게 좋은 사진들을 많이 남겨줬으니 말이죠.

지난 2년여 동안 저와 동고동락했고 앞으로도 쭈~욱 그럴 제 보물 1호랍니다
지난 2년여 동안 저와 동고동락했고 앞으로도 쭈~욱 그럴 제 보물 1호랍니다 ⓒ 유영수
그렇다고 이 카메라가 저와 이별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새 카메라를 사는 데 보태기 위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중고로 넘길 수도 있었고, 제 주위에서도 '그거 안 쓸 거면 나한테 주지 그래'라는 반농담의 제안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언지하로 거절했답니다.

제 보물1호로 삼고 애지중지해온 데 따른 서운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평상시 가지고 다니며 생활 속의 장면들을 담아내기엔 요놈이 딱이기 때문입니다. 새로 산 카메라는 바디만 해도 부피며 무게가 장난이 아니기에 작정하고 데리고 나갈 때를 제외하곤 일상생활에서 늘 휴대하기엔 좀 힘들거든요.

보물 1호 카메라를 들고 얼마나 많이 돌아다녔는지 케이스가 해질대로 다 해졌네요. 이번에 카메라 사면서 이 케이스도 새 것으로 바꿔줬습니다.
보물 1호 카메라를 들고 얼마나 많이 돌아다녔는지 케이스가 해질대로 다 해졌네요. 이번에 카메라 사면서 이 케이스도 새 것으로 바꿔줬습니다. ⓒ 유영수
열 가지도 훨씬 넘는 저 고가의 장비들이 전혀 필요 없이 저는 이 보급형카메라 한 대로 모든 것을 해결했으니, 그동안 참 호사를 누렸다고 생각합니다. 성능이야 당연히 조금 떨어지지만 삼각대와 스트로보만 해도 각각 30만원을 호가하는 지금 카메라에 비하면 진짜 몸값은 톡톡히 한 셈 아닙니까.

오늘 아침만 해도 출근하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베란다 밖으로 펼쳐지는 붉은 일출장면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데엔, 이 보급형카메라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고 봅니다. 이런 소중한 보물을 언감생심 누굴 주겠습니까.

오늘 아침 집을 나서면서 이 보급형카메라로 담은 일출진행 장면입니다. 고놈 참 쓸만하죠?
오늘 아침 집을 나서면서 이 보급형카메라로 담은 일출진행 장면입니다. 고놈 참 쓸만하죠? ⓒ 유영수
제 경제적 능력이나 형편에 걸맞지 않는 고가의 카메라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결심한 바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취미생활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도 물론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것에 그친다면 너무 심한 사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그래서 훌륭한 카메라에 걸맞는 실력을 겸비한 후 저에게 주어진 사진이라는 달란트를 이용해, 남을 위해 봉사하는 데 그 열정과 능력을 맘껏 쏟아붓기로 했답니다. 구체적인 방법이 어찌될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의 수단으로 카메라를 활용하기로 한 겁니다.

보통 사진하는 사람들은 불우한 노인들에게 영정사진으로 쓸 사진을 찍어드리는 정도의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저는 정말 형편이 어려워 돌사진을 찍을 수 없는 가정에 제 노력봉사를 통해 해맑은 아기의 웃음을 담아내 부모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리라 생각해 봤습니다. 그 외에도 시간을 갖고 찾아본다면 제 취미를 활용해 다른 이들에게 베풀 수 있는 방안은 많이 있다고 봅니다.

천사같은 마음씨를 지니지 못해 장애인들을 찾아가 그들의 몸을 씻겨주며 손발이 되어주는 봉사는 못할 것 같고, 내 쓸 것까지 아껴뒀다 불우이웃들에게 물질적으로 선행을 베푸는 통큰 사람도 되지 못하는 제가, 사진이라는 좋은 취미를 통해 봉사라는 또 다른 세계에 뜻깊은 첫발을 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진을 통해 봉사를 할 수 있다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기분좋은 일이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이 좋은 카메라로 더 멋지고 아름다운 사진을 많이 찍어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훨씬 설레인답니다.

생활 속의 풍경사진을 주로 기사화해왔고 요즘에는 '꼬투리의 맛깔스런 세상'이란 제하에 맛있는 음식점을 소개하는 연재기사를 쓰고 있는 저에게, 이렇게 훌륭한 카메라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아름다운 풍경사진과 먹음직스런 음식사진으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기대 많이 하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부담이 많이 되는 것도 사실이랍니다. 여태까지는 비교적 저렴한 카메라로 나름대로 괜찮은 사진을 찍는다는 주변의 호의적인 평가를 많이 받았었는데, 앞으로는 '그렇게 좋은 카메라로 그 정도밖에 못 찍는 거야?'라는 질책이 쏟아질지도 모르니 말이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하고 부지런히 촬영다니렵니다. 얼떨결에 시작됐지만 치밀하게 준비될 제2의 사진인생,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번 주 일요일 대전에서 갖는 한 동호회 후배의 첫 아기 돌잔치 장소를 카메라 기변 후 첫 출사지로 정했습니다. 따로 사진사를 부르지 않고 제가 찍은 사진만으로 CD를 만든다기에, 전문적으로 사진을 다루는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제가 찍은 사진을 포토샵으로 수정한 후 웨딩앨범 수준의 좋은 앨범으로 만들어 선물하기로 했답니다. 

이왕 앨범까지 만들기로 했는데 대충 찍을 수 없는데다 기변 후 카메라 다루는 것이 익숙치 않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지난 주말에는 동네 웨딩홀에 무작정 찾아가 전혀 모르는 사람의 돌잔치 세 군데를 돌아다니며 1시간 반 동안 연습을 해보기도 했네요. 이 정도 정성이면 좋은 결과가 나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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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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