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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을 꿨다. 일년에 꼭 한두 번씩은 꾸는 꿈. 공동묘지에서 칼을 입에 문 처녀 귀신이 나오는 꿈도 아니고, 누군가 날 죽이려 하는 꿈도 아니다. 그 꿈은 다름 아닌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이다.

제대한 지 10년 가까이 됐건만 이 놈의 군대 악몽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꿈이 더욱 싫은 것은 이 악몽을 꿀 때 꿈속에서도 나는 이미 군대를 다녀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군대를 다시 가는 것이 아니다. 산전수전 다 겪고 제대해서 군부대 쪽으로 소변도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 또렷한 기억을 가진 상태에서 누군가 내가 다시 군대를 가야 한다고 통보하는 것이다. 십중팔구 꿈속에서 나는 이렇게 항변한다.

"저 군대 벌써 다녀왔어요."

그러면 항상 날 끌고 가는 이 인물은 말한다.

"행정착오로 어쩔 수 없이 군대에 다시 가야 한다."

이틀 전에도 그 악몽을 꾸다가 일어났다. 그 꿈을 꾸고 나면 그 날은 항상 찜찜하다. 그렇다. 대한민국 군대는 이렇게 꿈속에서까지 날 괴롭히나 보다. 제대하고 나서는 8년 가까이 예비군 훈련으로 괴롭히더니.

그러고 보니 나의 많은 생활에 군대의 영향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참고로 난 군대를 정말 싫어했다.)

매일 이메일을 체크할 때마다 입력하는 비밀번호는 내 군번 조합이다. 통장 비밀번호는 부대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 번호의 조합이며 신용카드 비밀번호는 군 복무시 소지했던 나의 개인 총기 번호 조합이다.

군대를 그렇게 싫어했고 항상 "왜" 라는 질문을 상사에게 던져서 늘 고문관 비슷하게 찍혔던 내가 왜 매일 군대의 흔적을 지니고 사는가?

이유는 간단했다.

지워버리려고 아무리 애써도 군번은 절대 잊어먹지 않고, 부대번호, 총기 번호 등은 설령 누가 나의 지갑을 통째로 훔쳐 가더라도 내 신분증에서 절대 찾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군 복무 시절을 싫어하지만 군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이 아려오는 것도 이상한 증상 중 하나다.

작년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GP 총기 난사 사건을 보면서 철책에서 근무했던 기억이 아련히 떠올랐다. 아들을 잃고, 동료를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들의 눈물을 보며 어느 덧 텔레비전 앞에서 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묘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그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최근 부쩍 추워진 날씨 탓에 영상으로 거의 올라가지 않는 일기예보를 보노라면 강원도 전방에서 근무하면서 겨울에는 아예 영하라는 말을 쓰지 않던 때를 떠올리곤 했다. (늘 영하이므로 영하 몇 도라고 그러지 않는다.)

아침마다 출근하면서 콧물이 약간 삐직삐직 어는 상태를 느끼면 "어, 이건 영하 11도쯤 될 때 나타나는 현상인데" 하면서 온도계를 확인하면 정말 거짓말 같이 영하 11도를 가리킨다. 전방 근무를 겨울에 하면서 온도계를 보지 않아도 온 몸이 온도계가 되는 현상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푹푹 찌는 더운 여름에는 왜 항상 유격훈련 받던 기억이 나는지. 등산이라도 갈라치면 입구에서 정상을 보면서 "저기는 몇 고지쯤 될까?" 라는 의문을 던질 때마다 이놈의 징그러운 군대의 기억은 나를 지배한다.

아, 나는 언제쯤 진짜 '민간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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