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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1년 전 '오렌지 혁명'으로 집권한 뒤 친 서방노선을 걸어온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유셴코 정부에 대해 경제 보복에 나섰다.
러시아의 국영 가스 회사인 가즈프롬은 1일을 기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공급을 끊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가스 공급 가격을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다툼이 원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친 서방노선을 걷고 있는 유셴코 정권에 대해 러시아가 '가스'를 정치적 압박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러시아는 그동안 1000㎥당 50달러의 가격으로 가스를 공급해왔다. 이전에 소련 연방 시절의 '우호 가격'으로 준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시장 가격을 적용하겠다며 1000㎥당 230달러로 4배 이상 인상된 가격을 요구했다.
지난해 말부터 50 달러 → 230 달러 인상 요구
4800만 국민들이 한 해 소비하는 가스의 3분의1을 러시아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시장 가격을 점진적으로 적용하자는 입장이다. 유셴코 대통령은 지난 12월 30일 1000㎥당 80달러선을 제안했다.
12월 3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올 2분기부터 1000㎥당 230달러 공급에 우크라이나가 합의한다면, 올 1분기까지는 1000㎥당 50달러인 이전 가격으로 공급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이를 거부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논란이 벌어지면서 감정 싸움 양상도 보이고 있다. 이른바 '도둑질' 논란이다. 러시아가 유럽 전체 가스 사용량의 25% 가량을 공급하는데 상당수의 가스 배관이 우크라이나를 통과하고 있다.
1일 밤 러시아 가즈프롬의 세르게이 쿠푸리아노프 대변인은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에 공급되는 가스를 전달하는 관에서 누군가 일부를 몰래 빼내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우크라이나가 몰래 빼낸다는 말이다.
이에대해 우크라이나의 유리 예카누로프 총리는 "우리는 러시아 가스를 단 1㎥도 사용하지 않는다"며 강력하게 반박했다.
우크라이나도 대응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우선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러시아 가스관으로부터 15% 정도의 가스를 '토지 임차비용' 명목으로 받아낼 계획이다. 그러나 러시아 쪽은 "이는 절도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 러시아 흑해 함대본부가 있는 세바스토풀항의 임대료도 인상할 계획이다.
양측의 싸움은 중부 유럽에도 불똥이 튀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통과해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에도 정상적으로 가스를 넣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헝가리의 경우 자국에 도달하는 가스 양이 25% 감소함에 따라 대량 소비 업체들은 가스 대신 석유를 사용하는 등 조치를 취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폴란드도 러시아로부터의 가스 공급이 14% 가량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외피 쓴 정치적 조치
러시아의 이번 조치는 겉으로는 경제적이지만 실제로는 정치적이다.
유셴코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2일 여당의 선거부정으로 촉발된 시민들의 항의시위를 이끌며 화려하게 집권했다. 집권 뒤 유센코 정부는 유럽연합(EU)과 나토 가입을 추구하는 등 친 서방정책을 펴왔다.
러시아로서는 옛 소련 연방 해체 뒤에도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온 나라이자 가장 중요한 전략적 위치에 있는 우크라이나의 이런 행보에 큰 충격을 받았다.
우크라이라나는 올해 3월 총선을 치른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해 오렌지 혁명 과정에서 밀려난 친 러시아계인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이끄는 세력과 유셴코 현 대통령 세력 사이에 일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12% 성장했던 우크라이나의 경제 성장율이 2%대로 추락하고 부정부패 문제가 거의 해결되지 않으면서 유셴코 대통령의 지지율은 50%대에서 현재 10%대 초반으로 크게 떨어진 상태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 조치는 올 총선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이뤄진 것이다. 러시아는 아직도 자신의 영향력 하에 있는 벨로루시와 아르메니아 등에 러시아 국내가격(서유럽 수출가격의 20~30%)으로 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사태가 악화되자 국제 사회가 나섰다. 양국의 원만한 해결을 촉구하고 있는 독일·이탈리아·프랑스·오스트리아의 에너지 장관들은 4일 긴급 모임을 열 계획이다.
특히 미국의 반응은 강경하다. 숀 맥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런 갑작스러운 가스 공급 중단은 이 지역에서 에너지 안보에 불안을 가져온다"며 에너지를 정치적 압력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불만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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