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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원숭이 카메라'란 말이 있다. 만약 원숭이에게 과자와 카메라를 던져준다면 과자는 냉큼 받아 포장을 잘도 벗겨 까먹겠지만 카메라는 먹는 게 아니니 원숭이가 주무르기만 하다 내동댕이치고 말 것이다.

여하간 원숭이의 나무 올라타는 재주는 따를 자 없지만, 재주 좋은 원숭이도 디카(디지털카메라) 사용법은 알 리가 없다.

<오마이뉴스>에 가끔 글을 올리다 보면 때에 따라선 꼭 사진을 곁들여야 할 기사가 있다. 내 사정을 들은 부산에 사는 막내아들이 지난 봄에 디카를 구입해 택배로 부쳐왔다.

이젠 나도 기사에 사진을 넣어 글을 쓰게 됐다고 좋아하고 포장을 뜯어보니 우선 카메라의 겉보기가 내 맘에 들지 않았다. 너무 덩치가 크고 언뜻 보니 너무 복잡해 보였다. 안에 든 '카메라 사용법' 책자를 꺼내 보니 설명서의 글자가 작은 데다 내용을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내가 사는 시골에는 디카를 가진 사람도 없고 카메라에 대해 알만한 사람도 없어 사용법을 알아 볼 도리가 없었다.

'에잇! 카메라를 연구해 만든 사람도 있는데 설명 책자를 보며 연구하면 되겠지….'

나는 그날부터 설명책자와 카메라를 번갈아 보며 궁리를 하고 아무리 주물러도 복잡해서 도무지 사용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여러 날 밤잠을 설치며 고생만 하다, 결국은 포기하고 장롱 속에 처박아 버렸다.

한국전쟁 때 우리 이웃 할머니가 플래시(손전등)를 끌 줄 몰라 하룻밤을 개수통에 넣고 물을 부어두었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등잔불만 꺼오던 할머니가 손전등 끄는 법을 몰라 얼마나 애를 먹었으면 플래시를 물에 담가버렸을까? 디카 사용법을 모르는 내가 그 꼴이다. 오늘 날 젊은이들이 흔히 쓰는 디카 사용법을 모르다니 사정이 딱하다.

▲ 안면도 장삼포 해수욕장의 저녁 노을
ⓒ 편완범
나는 지난해 <오마이뉴스>에 글을 몇 편 쓰고, 그 중에 한 편('내 직업은 예식장 전업 주례')이 한길사에서 출판한 <아 유 해피?>란 책자의 50편 글 속에 뽑히는 영광까지 얻었다.

그러나 사진이 곁들이지 않은 오마이뉴스의 내 기사들은 '꾸미고기' 안 들어 간 국수처럼 시각적으로 입맛이 떨어진다. 볼거리인 사진이 없는 내 글들은 활자만 나열하니 독자도 읽기 피곤할 게다. 내 자신도 다른 사람의 사진이 들어간 글을 읽다가 내 글을 읽어 보면 답답하고 지루하다.

그러다 밋밋한 기사에 사진을 곁들여 살아 있는 기사를 쓸 요량으로 디카를 마련했는데 답답하기만 했다.

내가 가진 디카는 우선 덩치가 너무 커서 휴대에 불편해 가방 채 들고 다니기도, 차에 싣고 다니기도 불편하다. 내가 원하는 건 담배 갑 크기의 간편한 것이었다.

온 몸체에 촘촘히 붙은 각종 스위치의 용도를 알 길 없어 답답하다. 부속품도 많아 헤적거리다 설명서를 뒤지며 아무리 주물러도 머리만 아프고, 혈압만 오를 뿐 도대체 사용법을 독학할 길이 막막하다.

홧김에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애야, 쓰기 편한 걸 사 보내야지. 애비 약 올릴 일 있니? 이건 도대체 원숭이 카메라야! 아무래도 디카를 바꿔야겠다."

아들은 내 답답한 속도 모르고 쓰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는 것이다. 당장 들고 다니며 '팍팍' 찍어 보라는 얘기다. 하지만 수차 시도를 했으나 사용법을 제대로 몰라 포기해 버렸다.

그때 옛날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고 양주동 박사의 '면학(勉學)의 서(書)'란 수필이 생각났다. 영어를 독학하던 양 박사가 '삼인칭(三人稱)단수'란 단어를 알 길이 없어, 이 일로 고생한 대목이 생각나 여기에 인용한다.

(전략)
내가 12, 3세 때이니, 거금(距今) 50년 전의 일이다. 영어(英語)를 독학(獨學)하는데, 그 즐거움이야말로 한문만 일과(日課)로 삼던 나에게는 칼라일의 이른바 '새로운 하늘과 땅(New Heaven and Earth)'이었다. 그런데 그 독학서(獨學) 문법 설명의 '삼인칭 단수(三人稱單數)'란 말의 뜻을 나는 몰라, '독서 백편 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란 고언(古諺)만 믿고 밤낮 며칠을 그 항목(項目)만 자꾸 염독(念讀)하였으나, 종시 '의자현(義自見)'이 안 되어, 마침내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 눈길 30리를 걸어 읍내(邑內)에 들어가 보통 학교(普通學校) 교장을 찾아 물어 보았으나, 그분 역시 모르겠노라 한다. 다행히 젊은 신임 교원(新任敎員)에게 그 말뜻을 설명(說明) 받아 알았을 때의 그 기쁨이란! 나는 그 날, 왕복(往復) 60리의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 하도 기뻐서 저녁도 안 먹고 밤새도록 책상에 마주 앉아, 적어 가지고 온 그 말뜻의 메모를 독서하였다. 가로되,
"내가 일인칭(一人稱), 너는 이인칭(二人稱), 나와 너 외엔 우수마발(牛杏馬勃)이 다 삼인칭야(三人稱也)라."
(이하 생략)


어느 날 서울에 사는 초등학교 5년생 외손자가 우리 집에 왔다.

"야! 외할아버지 디카 정말 좋은 거 사셨다. 우리 집 거 보다 훨씬 고급이다." 환성을 지른 외손자는 디카를 들고 마구 찍어 댔다. 나는 외손자의 솜씨를 칭찬하고 집 주변을 돌며 사진 찍기 실습을 했다. 신기하게도 외손자는 설명 책자도 보지 않고 잘도 찍어 댔다.

▲ 안면도 휴양림 근처의 설경
ⓒ 편완범
67살 내가 12살짜리 손자에게 배우며, IT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짚신 세대'의 고뇌를 절감했다. 정말 나는 유통 기간이 지난 폐기물이라는 자괴감이 가슴을 쳤다.

그날 손자에게 기본적인 사용법을 익힌 이후 나는 디카를 들고 현장에 나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찍다가 모르면 옆에 있는 젊은이에게 부끄럼 없이 물어가며 익히고 있다.

디카에 찍은 사진을 기사에 넣을 줄 몰라 읍내 광고회사를 하는 젊은 친구에게 배우자니 그 고생 또한 만만치 않았다. 차로 30분 거리인 읍내를 그 일로 수십 차례 오가야 했다. 하지만 솔직히 아직도 디카 사용법을 절반도 익히지 못했다,

그러나 내년엔 기어이 디카 사용법을 제대로 익혀 원숭이 카메라를 면하리라.

덧붙이는 글 | ※ 참고
거금(距今)=현재부터 과거 어느 때까지
독서 백편 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책을 백 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통해진다(義=뜻 의,見=나타날 현)
고언(古諺)=옛날부터 전해오는 속담
염독(念讀)=주의하여 생각하며 읽음
우수마발(牛杏馬勃)=소의 오줌과 말똥, 즉 불필요한 물건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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