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추운데 학교 댕기느라 고생했지?"
"방학했어요."
"그래. 온 김에 메칠 놀다 가."
몇 마디 나눈 뒤 어머니는 손수 고아 만든 엿을 내어 놓았습니다.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맹추위 속에서도 자식들 먹이기 위해 추운 밖에서 몇 시간을 떨며 장작불 피워 엿을 고은 것입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겨울이면 엿을 고아다 시장에 파셨습니다. 조청이 굳어 엿이 되기까지 어머니 곁에 앉아 입맛 다시며 지켜보던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릅니다.
국수 밀던 안반에 콩가루를 뿌리고 조청을 국자에 듬뿍 떠서 납작한 반대기를 만듭니다. 그 조청이 딱딱하게 굳으면 엿이 완성되는 것이지요. 맨 조청만으로 만든 엿도 있지만 깨를 뿌려 만든 깨엿도 있고, 콩이며 땅콩을 섞어 만든 콩엿과 땅콩엿도 있습니다.
"요새 얼마나 추웠는데 엿을 고아요?"
"춥긴 춥더라."
"그러다 병 걸리면 어쩌시려고……."
"올해가 마지막이다. 힘이 부쳐 이젠 못 하겠다."
어머니는 손바닥에 엿 반대기를 올려놓고 방망이로 깹니다. 엿이 잘 굳으면 딱 소리와 함께 잘 깨지지만 제대로 굳지 않으면 잘 깨지지 않습니다. 이번 엿은 제대로 굳지 않았는지 잘 깨지지 않습니다.
장작불로 엿을 고을 때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아무리 추운데 두어도 제대로 굳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 엿을 고아온 어머니도 이번엔 너무 추워 시간 조절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먹어봐라. 맛은 괜찮더라."
어머니는 엿 한 조각을 건네주셨습니다. 입에 넣고 우물거리니 달콤한 엿의 향기가 입안 가득 퍼졌습니다.
달콤한 엿 맛에 취해 우물거리다보니 문득 어린 시절 생각이 났습니다. 그해 겨울도 어머니는 엿을 만드셨습니다. 동생과 둘이서 어머니 주변을 빙빙 돌며 이제나 저제나 조청을 먹어볼까 군침을 삼켰습니다. 오래 기다리다 밖에 나가 오줌을 누고 들어왔습니다. 그 사이에 동생은 조청 한 숟가락 얻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자랑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동생 먼저 먹은 게 약이 올라 심술을 부렸습니다. 너도 먹으라고 숟가락을 내밀었지만 안 먹겠다고 떼를 쓰다 형이란 녀석이 별 걸 가지고 다 심술부린다며 야단까지 맞았습니다. 심술부리다가 엿은 한 숟가락도 먹지 못한 채 야단만 맞고 사랑방으로 쫓겨났습니다.
사랑방에서 약이 올라 씩씩대다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 어머니는 땅콩을 넣어 만든 엿 한 덩이를 손에 들고 잠든 나를 깨웠습니다. 달콤하고 고소한 땅콩엿 한 덩어리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안방으로 가보니 먹음직스런 엿 반대기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할미가 만든 엿 맛있지?"
"네."
준수도 광수도 달게 먹었습니다. 아내도 곁에 앉아 연신 엿 조각을 집어 들었습니다.
"달게 먹어주니 고맙다."
엿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바라본 어머니의 모습이 부쩍 늙어 보입니다. 이제는 힘이 들어 엿을 못 만들겠다고 하실 정도로 늙으셨습니다. 어머니 곁에 앉아 옛날 얘기도 들으며 도란도란 얘기하다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번에도 마음에서 그쳤습니다.
힘들게 아들 키워도 제 할 일에만 얽매어 살고, 어쩌다 한 번 찾아와도 다정하게 어머니 마음 헤아릴 줄 모릅니다. 그런 무뚝뚝한 아들 대신 아내가 딸이 되어 어머니 곁에 앉아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느낀 섭섭한 마음도 아내에겐 다 털어놓을 정도로 어머니는 아내와 마음이 통합니다.
"딸처럼 편해서 에미가 참 좋다."
어머니와 아내는 마주앉아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