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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기원
"추운데 학교 댕기느라 고생했지?"
"방학했어요."
"그래. 온 김에 메칠 놀다 가."

몇 마디 나눈 뒤 어머니는 손수 고아 만든 엿을 내어 놓았습니다.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맹추위 속에서도 자식들 먹이기 위해 추운 밖에서 몇 시간을 떨며 장작불 피워 엿을 고은 것입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겨울이면 엿을 고아다 시장에 파셨습니다. 조청이 굳어 엿이 되기까지 어머니 곁에 앉아 입맛 다시며 지켜보던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릅니다.

ⓒ 이기원
국수 밀던 안반에 콩가루를 뿌리고 조청을 국자에 듬뿍 떠서 납작한 반대기를 만듭니다. 그 조청이 딱딱하게 굳으면 엿이 완성되는 것이지요. 맨 조청만으로 만든 엿도 있지만 깨를 뿌려 만든 깨엿도 있고, 콩이며 땅콩을 섞어 만든 콩엿과 땅콩엿도 있습니다.

"요새 얼마나 추웠는데 엿을 고아요?"
"춥긴 춥더라."
"그러다 병 걸리면 어쩌시려고……."
"올해가 마지막이다. 힘이 부쳐 이젠 못 하겠다."

어머니는 손바닥에 엿 반대기를 올려놓고 방망이로 깹니다. 엿이 잘 굳으면 딱 소리와 함께 잘 깨지지만 제대로 굳지 않으면 잘 깨지지 않습니다. 이번 엿은 제대로 굳지 않았는지 잘 깨지지 않습니다.

장작불로 엿을 고을 때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아무리 추운데 두어도 제대로 굳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 엿을 고아온 어머니도 이번엔 너무 추워 시간 조절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먹어봐라. 맛은 괜찮더라."

어머니는 엿 한 조각을 건네주셨습니다. 입에 넣고 우물거리니 달콤한 엿의 향기가 입안 가득 퍼졌습니다.

달콤한 엿 맛에 취해 우물거리다보니 문득 어린 시절 생각이 났습니다. 그해 겨울도 어머니는 엿을 만드셨습니다. 동생과 둘이서 어머니 주변을 빙빙 돌며 이제나 저제나 조청을 먹어볼까 군침을 삼켰습니다. 오래 기다리다 밖에 나가 오줌을 누고 들어왔습니다. 그 사이에 동생은 조청 한 숟가락 얻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자랑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동생 먼저 먹은 게 약이 올라 심술을 부렸습니다. 너도 먹으라고 숟가락을 내밀었지만 안 먹겠다고 떼를 쓰다 형이란 녀석이 별 걸 가지고 다 심술부린다며 야단까지 맞았습니다. 심술부리다가 엿은 한 숟가락도 먹지 못한 채 야단만 맞고 사랑방으로 쫓겨났습니다.

사랑방에서 약이 올라 씩씩대다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 어머니는 땅콩을 넣어 만든 엿 한 덩이를 손에 들고 잠든 나를 깨웠습니다. 달콤하고 고소한 땅콩엿 한 덩어리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안방으로 가보니 먹음직스런 엿 반대기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 이기원

"할미가 만든 엿 맛있지?"
"네."

준수도 광수도 달게 먹었습니다. 아내도 곁에 앉아 연신 엿 조각을 집어 들었습니다.

"달게 먹어주니 고맙다."

엿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바라본 어머니의 모습이 부쩍 늙어 보입니다. 이제는 힘이 들어 엿을 못 만들겠다고 하실 정도로 늙으셨습니다. 어머니 곁에 앉아 옛날 얘기도 들으며 도란도란 얘기하다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번에도 마음에서 그쳤습니다.

힘들게 아들 키워도 제 할 일에만 얽매어 살고, 어쩌다 한 번 찾아와도 다정하게 어머니 마음 헤아릴 줄 모릅니다. 그런 무뚝뚝한 아들 대신 아내가 딸이 되어 어머니 곁에 앉아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느낀 섭섭한 마음도 아내에겐 다 털어놓을 정도로 어머니는 아내와 마음이 통합니다.

"딸처럼 편해서 에미가 참 좋다."

어머니와 아내는 마주앉아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원 기자 홈페이지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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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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