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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주진 기자]모성보호 관련 법·제도 정착에 앞장서야 할 입법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국회 여성공무원의 대다수가 모성보호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22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인 김애실 한나라당 의원이 발주한 '국회 여성공무원의 모성보호와 가족친화적 제도 사용에 관한 실태조사' 연구용역 발표에 따르면 국회 기혼 여성공무원 응답자 187명 가운데 163명인 86.9%가 "일과 가족을 양립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고, 40명인 21.4%가 '출산 시기와 자녀수를 조절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원인으로 장시간 근무(43.9%)가 첫 번째로 꼽혔고, 경제적 비용(29.5%), 보육의 질 개선(17.9%) 등이 뒤를 이었다.

현재 국회에서 근무하는 경력직(일반직·기능직), 특수경력직(계약직·별정직)을 포함한 여성공무원은 1112명으로 전체 국회 공무원의 33.5%에 해당하며, 이 가운데 사무처 직원이 512명, 의원보좌진이 420명으로 가장 많다. 기능직은 8급 이하, 일반직과 별정직은 8∼9급과 6∼7급에, 계약직은 10급 이하와 4∼5급에 주로 분포한다. 일반직은 기혼자가 많은 반면, 별정직은 미혼자가 많고, 일반직과 기능직은 사무처에, 별정직과 계약직은 의원회관에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의 응답자 총 340명 가운데 기혼자는 187명(54.9%), 미혼자는 153명(45.1%)이고, 근무처로는 의원회관 146명(42.9%), 사무처 142명(41.8%), 도서관 48명(14.1%) 순이다.

국회 내 직종간 근무조건이 다양함에 따라 모성보호 실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산전후휴가의 경우 기능직과 일반직은 각각 54.9%, 54.1%가 사용한 반면, 계약직과 별정직은 15.9%, 2.6%만이 사용해 대조를 보였다. 특히 별정직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의원회관 여성보좌진의 경우 휴가 사용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휴가 사용 일수에서도 별정직은 1/3 가량이 법정 휴가 기간보다 짧게 사용했다. 한 관계자는 "별정직이라는 고용 조건에서는 기혼자의 경우 고용이 계속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에 모성보호나 육아휴직 사용은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산전후휴가 개선을 위해서는 응답자 대다수가 "상사의 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답해 조직 내 문화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의원실이라는 각각의 독립적인 조직문화를 갖고 있는 의원회관 여성보좌진들의 지적이 가장 많았다.

이렇듯 심각한 모성보호 실태에도 불구하고 국회 여성공무원들의 모성보호 관련법에 대한 인지 수준은 매우 낮았다. 대다수 국회여성공무원들은 "법정 산전후휴가 90일에 대해서만 잘 알고 있다(71.6%)"고 답했고, 그 외 다른 항목에 대해서는 10∼20% 정도 수준에 그쳤다.

연구조사를 진행한 신경아 상지대 교수는 국회 여성공무원의 모성보호와 가족친화적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대체인력 확보 등 법적 권리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인프라 구축 ▲국회 내 조직문화의 개선방안으로 상급자와 남성공무원의 인식개선 교육 실시 ▲법정근무시간의 준수와 탄력근무제 등 근무형태 다양화, 보육시설 확대와 질적 개선으로 모성보호와 가족친화적 제도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방안을 제시했다.

김영란 숙명여대 교수는 "이번 조사를 통해 국회에서도 성역할에 대한 뿌리깊은 고정관념이 있음을 발견했다"며 "공무원법에 명시된 모성보호조항이 처벌 등이 포함된 의무조항이 아니라 권고사항으로 별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모성보호가 아닌 모성권리를 강조하는 청구권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실행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또, "육아휴직이 고용불안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육아휴직에 있어서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하도록 해야 하며 국회 내 보육시설 역시 현실에 맞는 탄력적 운영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최석림 국회 사무처 인사담당 서기관은 "육아휴직 후 복직할 수 있도록 법에는 명시해놓았지만 이에 대한 인사권은 전적으로 각 의원실이 가지고 있어 제재할 명분도 없다"면서 "사실 각 의원실의 여성보좌진들이 육아휴직 후 복직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사실상 고용불안을 시인했다.

정진주 한국여성개발연구원 연구위원도 "모성보호는 별정직이나 계약직과 같은 비정규직에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고용불안 해소와 건강권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고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임신, 출산이 근평과 인사고과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조사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법,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애실 의원은 "국회가 법·제도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그 실천에도 앞장서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국회에 가족친화적인 문화가 정착되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파급력을 가져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여성보좌진 '이중고'에 운다
산전후·육아휴직 '딴나라 얘기... 임신·출산땐 복직 보장 안돼

지난해 결혼한 A의원 비서 박모씨는 아예 아이 갖는 것을 내후년으로 미뤘다. 임신하는 순간부터 '가시방석'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언제부터인가 의원회관에서는 '모 의원실 여비서가 아이를 갖자마자 바로 쫓겨났다'라는 '~카더라' 괴담도 돌고 있다.

이처럼 임신·출산을 앞둔 여성보좌진들은 "매일같이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우리는 '파리 목숨'이나 다를 바 없다"라는 자조적인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또한 여성보좌진들의 대부분은 잦은 야근과 휴일 근무,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주5일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일부 의원 사무실에서는 토요일 근무는 필수이고, 국감 때나 회기 중에는 일요일, 공휴일도 없다.

기혼인 한 여성보좌진은 "회기 중에는 대부분 법정 근무시간을 넘어설 때가 잦고, 비회기 중에도 잔무를 빨리 끝내라며 야근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며 "일 때문에 아이를 잘 돌볼 수도 없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호소했다.

7명의 보좌진으로 구성된 의원실에서는 개개인의 고유 역할 분담이 명확하기 때문에 한 구성원의 부재는 또 다른 구성원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 게다가 모든 업무가 의원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업무 공백은 의원의 의정활동에도 이래저래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한 여성보좌관은 "의원이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하더라도 자기 직원이 육아휴직을 써서 업무 공백이 생기는 것은 대단히 싫어한다"고 털어놓았다.

이 같은 노동조건에서 모성보호나 산전후휴가, 육아휴직은 꿈도 꿀 수 없을 뿐더러 설사 휴가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업무 특성상 '복직'을 보장받기도 어렵다는 게 이들의 현실이다.

모유수유시설이나 여성휴게실 이용도 여성보좌진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국회 의원회관 내 모유수유실은 여성휴게실에 마련되어 있지만 좁고 밀폐된 박스형으로 되어 있는 데다 시설도 열악해 대다수 여성보좌진들이 이용을 꺼리고 있다.

김희정 의원실의 이민정 비서관은 "수유실도 불편하지만 더 힘들게 하는 건 모유 수유에 대한 의원실 내 인식이 부족한 것"이라며 "수유를 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것조차도 옆 동료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현재의 조직 내 문화를 시급히 바꿔야 한다"고 꼬집었다. / 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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