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bc
사실 방영 초반, 극본을 맡은 정하연 작가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신돈>의 구성은 산만했다. 하필이면 시작부터 SBS <프라하의 연인>이라는 막강한 경쟁작과 정면 승부를 펼쳐야했던 불운도 있었지만, 대진운을 탓하기 전에, KBS가 긴급편성한 외화 <징기스칸>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 자릿수 시청률로 완성도를 의심받으며 외면당해야 했다.
주로 현대적인 이미지가 강한 배우들의 주연 라인업이, 사극과 거리가 있었다는 점에서 다소 어색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스타 파워라는 측면에서도 <프라하의 연인>에 비해 화제가 부족했다.
더구나 초반부, 세 명의 주인공 각각의 캐릭터를 설명하는데만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중심 플롯을 갖추지 못한 채 산만하게 이야기가 늘어졌던 것도 흥미를 반감시킨 요소였다. 여기에 무협과 픽션, 해외 로케이션의 이국적 풍광이 공존하는 퓨전 사극적인 요소가, 권력투쟁과 사회 개혁, 실존 인물의 연대기라는 정통 사극의 분위기와 융화되지 못하며,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신돈>은 한 자릿수 시청률로 부진하던 시기에도,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한 '하하하' 시리즈나, '쥬얼리정', '동방신돈' 등으로 이어지는 패러디 열풍을 일으키며,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인기몰이의 잠재력은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
최근들어 <신돈>은 공민왕(정보석) 즉위 후 주요 무대를 고려로 옮겨오면서 한층 집중력이 높아진 이야기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주인공에 걸맞는 비중을 보여주지 못했던 신돈(손창민)이 차츰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오면서, 당대의 사회적 이슈였던 반원투쟁과 정치개혁 노선을 다룬 대결 구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 드라마의 중심에서 남자 못지않는 강인함을 보여주는 여성캐릭터들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특히 기황후 역의 김혜리와 노국공주 역의 서지혜는, 궁중암투의 배경이 되는 팜므파탈의 이미지에서, 당차고 강인한 당대의 여걸 혹은 헌신적인 비련의 여주인공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이미지를 보여주며 다소 무거운 드라마의 윤활유 역할을 해주고 있다.
▲당차고 씩씩한 여걸에서 헌신적인 비련의 여주인공을 오가는 노국공주(서지혜)의 캐릭터는 <신돈>의 히든 카드다. ⓒ mbc
당초 강력한 경쟁작이었던 <프라하의 연인>이 종영하며, 후속작인 <백만장자와 결혼하기>(이하 백만장자)의 인기가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도 유리한 요소. 초반 젊은 세대에 인지도 높은 고수-김현주의 스타시스템에, '리얼리티 쇼'라는 이색적인 소재로 주목을 받았던 <백만장자>는, 무대를 국내로 옮기며 초반의 활력을 잃고 뻔한 트렌디 드라마로 되돌아왔다는 평가를 받으며 주춤한 상태.
그러나 <신돈>이 시청률의 일시적인 우위를 넘어서 '역전승'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신돈의 정치 참여가 본격화되면서, 앞으로 검증되지 않은 신돈의 개혁가 이미지 설정에 대한 역사적 논란도 감수해야 하고, 여전히 퓨전사극과 정통 시대극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걸쳐있는 드라마의 정체성도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하반기 이후 시대극의 인기가 전반적으로 주춤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볼거리를 기대하고 있는 시청자의 희망을 <신돈>이 충족시켜줄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