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성작가의 소설은 베스트셀러 순위를 장악하고 있다. 여성작가만의 독특한 감수성이 배어 있는 소설이 출판계의 흐름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통해 출판계의 주요 소비층인 여성독자들의 독서취향도 읽어낼 수 있다.
다만, 안타까운 대목은 국내소설이 국외소설 번역본에 비해 약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전체소설 1위부터 7위를 차지한 소설은 모두 외국소설이다. 국내 여성작가의 소설도 <다빈치코드> <모모> <연금술사> 등의 번역본의 위세에 눌린 것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출판계 안팎으로 들려오고 있다.
비소설 분야에서도 여성 코드를 읽을 수 있다. 2위를 기록한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와 3위를 기록한 한비야씨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 그 예. 여성테마와 여성에세이가 출판계에서 속된 말로 '잘 팔리는' 분야라는 것이 올해도 어김없이 증명된 것이다.
<아이 안에 숨어 있는 두뇌의 힘을 키워라> <평생 성적 초등4학년에 결정된다> 등의 책도 베스트셀러로 꼽혔다. 엄마들의 교육열과 입소문이 교육 및 육아 관련 출판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증거다.
올해는 또 다른 의미의 육아를 강조하는 책이 나와 많은 독자의 눈길을 끌었다. 독서를 통해 육아의 지혜를 발견하는 <아이 읽기, 책 읽기>, 딸 키우는 아빠들의 생생육아 지침서 <아버지가 나서면 딸의 인생이 바뀐다>는 성적 위주의 교육·육아 관련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더욱 눈길이 가는 책이다.
여성의 경제적 역할을 강조하는 실용서들도 한 해 동안 많은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부자엄마, 부자아내> <여보! 재테크를 부탁해> 등의 책은 여성의 사회·경제적 진출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을 잡아낸 실용경제서로 여성독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아울러 올해는 여성의 문제를 통해 평등을 이야기하는 문제작들이 출판계의 눈길을 끌었다. 사악함의 대명사였던 요부의 이미지를 새롭게 해석한 <요부, 그 이미지의 역사>, 엄마에 대한 환상과 모성신화를 부추기는 사회를 비판한 <엄마는 미친 짓이다>,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인간학이라고 말하는 <경계없는 페미니즘> 등의 책은 양성평등 감수성을 담아낸 인문서로 출판계의 여성바람을 이끌었다.
최희영 기자 chy@iwomantimes.com
◆공연계
가족공연물 풍년…복합관 개관도 잇따라
2005년은 가족을 테마로 한, 가족단위의 관객을 겨냥한 공연이 많이 나온 해였다. 가족공연이 방학기간 등을 활용한 한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 보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획 공연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겨울방학을 맞아 가족공연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전문배우와 장애우, 구세군악대와 함께 무대를 만드는 뮤지컬 <크리스마스캐롤>, 가족단위 관객들에게 따뜻한 추억을 선사하는 <마당을 나온 암탉> 등이 그 예.
가족애를 강조하는 공연은 방학시즌용 이벤트가 아니다. 올해 내내 가족을 소재로 한 공연이 지속적으로 열렸다. 그 중 가장 주목을 받은 공연은 연극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였다. 새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가족애를 강조했기 때문.
올해 5월과 7월 공연된 이 연극은 억척스런 아내와 투병중인 아들, 무능력한 듯하지만 가족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지닌 아빠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다. 굽은 등으로 납작하게 엎드려 세대와 가족을 잇는 <낮은 아비>의 모습은 권위가 아닌 사랑으로 가족구성원과 교류하는 새로운 아빠상을 제시했다.
여성의 문제를 통해 우리네 가족을 돌아볼 수 있는 공연도 눈길을 끌었다. 완경을 맞은 여자들의 유쾌한 수다를 통해 엄마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던 뮤지컬 <메노포즈>, 다른 직업과 나이지만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여성들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연극 <토킹위드>는 여성의 행복이 곧 가족의 행복이라는 메시지를 관객들의 가슴에 새겼다.
가족단위의 관객이 무리 없이 무난하게 감상할 수 있는 소재의 공연도 인기를 끌었다. 모자간의 훈훈한 마음을 전하는 휴먼뮤지컬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베스트셀러 소설의 난해함을 알기 쉽게 풀어낸 <연금술사>, 가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여성의 역할을 보여주는 <가족왈츠>, 왕따를 당한 소년이 용기와 희망을 찾게 되는 내용의 <넌 특별하단다> 등이 세대를 뛰어넘는 공연으로 주목받았다.
지난 6월, 어린이 중심의 복합문화예술공간 사다리아트센터가 개관한 것도 가족단위 관객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어린이의 눈높이와 활동성을 고려한 무대 설계로 어린이 관객에게 쾌적한 관람 환경을 제공한 이 센터는 교육연극 <완희와 털북숭이 괴물>, 놀이연극 <니꼬리보까리좌> 등을 공연해 문화예술로 가족애를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최근에는 아이를 봐주는 소극장 '씨어터디아더'가 개관해 가족의 공연감상 기회를 더욱 넓혀주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곳은 가족카페와 놀이방 등을 마련해놓은 문화예술복합공간으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가족의 권리를 채워줬다. 내년에도 공연을 통해 가족의 행복을 되새길 수 있는 참신한 시도가 계속 이어질지 주목된다.
최희영 기자 chy@iwoma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