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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장르의 대표적인 고질병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흥행 공식의 반복이다. 대중의 트렌드가 반응하는 극중의 어떤 특정한 캐릭터나 설정이 인기를 끌면, 그것이 하나의 공식화가 되어서 후속 드라마에도 영향을 미쳐서 비슷비슷한 드라마들이 범람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한때 <겨울연가>, <파리의 연인>처럼 어떤 특정한 트렌드를 대표하는 드라마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그 뒤를 따라 우후죽순처럼 비슷한 설정이나 캐릭터를 차용한 '유사품' 드라마들이 범람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작품 자체는 달랐지만, 어딘지 모르게 한 번 본 듯해 드라마를 구성하고 있는 설정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돌아보면 그야말로 '닮은꼴'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재벌과 서민의 신분적 격차, 출생의 비밀, 남녀 두쌍의 엇갈리는 4각관계. 시한부 인생, 신데렐라 스토리, 불륜, 이국의 풍광을 내세우는 해외 로케이션 등은 최근 몇 년간 트렌디 드라마의 절대적인 '흥행 공식'처럼 대두되어 왔다.

그럼 올 한 해 최고의 인기 트렌드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톡톡 튀는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변종 신데렐라' 혹은 '평강공주' 스토리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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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걸 춘향>이나 <내 이름은 김삼순>처럼 자기 주장이 분명하고 능동적인 여성캐릭터가 트렌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자 하반기에도 이와 유사하게 여성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들이 많이 늘어났다.

대개 서민적이고 역경을 이겨내는 억척스러운 캐릭터로 설정된 이들 여성주인공들은, 종래 남자의 간택을 기다리기만 하는 청순가련형의 여주인공들과는 달리, 사랑에 있어서도 오히려 우유부단한 남성을 리드할 정도로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 여성팬들의 지지를 얻은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스토리들은 궁극적으로 기존의 평면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슈렉' 스타일을 살짝 덧입혔을 뿐인 변종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여기에 최근 종영한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의 차봉심(김원희)이나 <영재의 전성시대>의 주영재는 설정 면에서 삼순이의 뒤를 잇는 유사 캐릭터들이면서 어떤 새로운 스타일이나 정체성을 보여주는 면이 없다는 점에서 '짝퉁' 삼순이 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0대 노처녀에 서민적 이미지가 강한 막무가내 스타일, 연하(혹은 연상)의 부유층 남성과 밀고당기는 연애담을 펼친다는 설정 등은 의심할 나위없는 판박이다. 삼순이가 초반에 당당하고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트렌디 드라마 성향이 강해지면서, 지나치게 과격하고 희화화된 캐릭터 자체로만 변형되어버린 한계마저 후속작들 역시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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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연인>의 스타일을 계승하고 있는 <루루공주>나 <프라하의 연인>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주인공 김정은의 신분적 지위만 재벌가의 공주로 변형시켰을 뿐인 <루루공주>는 조악한 완성도로 언급할 가치조차 없고, <프라하의 연인>은 아예 연인 시리즈의 속편임을 공식 선언하고, 같은 작가와 제작진에 의하여 완성된 드라마인 만큼, 스타일이 유사하다는 것은 시작부터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파리의 연인>에서 강력한 매력으로 작용했던 신분 차이를 극복한 사랑이나, 주인공 캐릭터들의 입체적인 매력은, <프라하의 연인>에서 다시 발휘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에도 지나치게 단순구도화된 선악구조나, 핵심적인 등장인물의 갑작스런 사고(이동건-김민준)로 반전을 맞이하는 작위적인 설정, 멋진 대사에만 치중한 설득력없는 전개 등은 처음엔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미덕으로 치부되고 넘어갔지만, 안이하게 반복되었을때는 피로만을 안겨주었다.

드라마는 통속성의 미학을 드러내주는 대중문화 장르다. 시청자들은 사실 새로움을 갈구하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정말로 파격적이거나 실험적인 이야기에는 곧잘 거부반응을 보이곤 한다. 익숙한 캐릭터, 익숙한 공식들이 반복될 때마다 그것을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시 그런 작품들이 인기를 끄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비싸고 맛있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일년내내 같은 식단만 받아야한다면 그것은 기쁨이 아니라 고통이다. 익숙한 공식에 잠시 동안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창의성의 부재에 한 번 식상하게 되면, 되돌릴 수 없는 외면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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