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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X파일이 말 그대로 X파일이 됐다. 영구미제사건이 됐다는 얘기다.

세세한 얘기는 일단 접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무혐의 처리하기로 한 방침만 따지자.

검찰이 이건희 회장을 무혐의 처리하기로 한 이유는 두 가지다. 공소시효 만료, 그리고 사실확인 불능이다.

97년 대선 때 여야 대선 후보들에게 정치자금을 건네고 검사들에게 떡값을 건넨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나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한다. 기아자동차 인수를 위해 뇌물을 건넨 혐의는 고발인들 쪽에서도 의혹만 제기할 뿐 이를 입증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할 정도로 사실 확인이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기소 유예도 아니고 무혐의 처리하기로 했단다.

참 편하다. 미국에 가 있는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달랑 서면 조사 한 번 하고는 냉큼 결론 내린 검찰의 태연자약한 태도가 놀랍다.

자금 출처가 계열사 기밀비라면 공소시효 만료 아니다

이건희 회장은 정치자금과 떡값, 기아차 뇌물 제공을 지시한 인물로 지목돼 왔다. 이런 의혹에 당연히 따라붙는 2차 의혹이 돈의 출처였다. 검찰이 이 점만 집중적으로 캤어도 수사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다. 김인주 삼성구조조정본부 사장은 당초 이건희 회장이 제공한 정치자금이 삼성 계열사의 기밀비였다고 진술했다. 그러다가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기 얼마 전 갑자기 말을 바꿨다. 이건희 회장 개인 돈이라고.

앞과 뒤의 진술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개인 돈이라면 어쩔 수 없이 '공소시효 만료'나 '사실확인 불능'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삼성 계열사 기밀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회사 돈을 쓴 것이고, 그 액수가 50억 원을 넘기 때문에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의 횡령 및 배임 행위에 해당한다. 공소시효는 10년이다.

그런데 검찰은 어땠는가. 기밀비를 조성한 의혹을 받은 삼성 계열사를 압수수색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없다. 정치자금이나 뇌물을 수수한 사람을 불러 조사하거나 삼성측과 대질 심문을 했다는 소식 또한 접한 바 없다.

검찰은 밝혀야 한다. 안기부와 국정원의 도청 실태 뿐 아니라 자신들의 수사 실태도 밝혀야 한다. 갖은 수를 다 써서 수사를 해봤는데도 사실 확인이 안 된 것인지, 아니면 사실 확인을 할 의지가 애초부터 부족했던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기억이 안 난다"고 연신 읊조리는 삼성 사람들의 입만 쳐다본 게 아니라 다른 경로를 통해 증거를 수집한 적이 있는지를 밝혀야 한다.

달랑 서면조사 한번에 냉큼 무혐의 결론... 국회 또 기대난망

▲ 지난 9월 삼성 본관 앞에서 열린 '삼성 뇌물 X-파일 전면 공개 및 이건희·홍석현 회장 수사 촉구를 위한 촛불문화제'.
ⓒ 오마이뉴스 권우성
검찰은 오늘(14일)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안기부 미림팀이 만든 274개 도청 테이프 내용 일부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통신비밀보호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도청 대상자 분포 및 주요 대화내용 요지 등을 공개한다고 한다.

애초에 독수독과론을 주장하며 도청 내용 공개 불가 입장을 고집하던 검찰이 어떤 묘수를 찾아내 통신비밀보호법을 피해가려는지 자못 궁금하지만 일단 접자. 몇 시간만 있으면 알게 될 테니까….

다만 한 가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건 도청 테이프 내용 일부 공개가 일종의 물타기용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다. 몸통은 간 데 없고 깃털만 나부끼는 수사결과를 희석시키기 위해 내놓는 장식품이라면 그건 곤란하다. 정치적 판단과 대국민 흥정의 산물이라는 비난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공은 온전히 국회로 넘어갈 것 같다. 하지만 국회 또한 기대난망이다. 혹한의 거리로 나간 한나라당에게 지금 X파일이 눈에 들어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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