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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시장에 오른 유리 라타스(Juri Ratas). 올해 27살이다. 11월 16일 취임식 장면.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시장에 오른 유리 라타스(Juri Ratas). 올해 27살이다. 11월 16일 취임식 장면. ⓒ 유리 라타스 제공
에스토니아를 움직이는 20·30대 정치인들

1974년 생으로 31살인 현직 외무부장관인 우르마스 파에트(Urmas Paet)는 현재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간 관계개선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으며, 같은 나이인 타비 베스키매기(Taavi Veskimägi), 켄-마르티 바헤르(Ken-Marti Vaher) 역시 얼마 전까지 각각 재정부장관, 법무부장관직을 맡다가 의회로 진출했다.

그러나 이번 10월 총선 이후 30대 정치인들은 젊은 축에도 끼지 못하게 되었다. 11월 16일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시장에 오른 유리 라타스(Juri Ratas)는 올해 27살, 그리고 에스토니아 제4의 도시 패르누 시장인 마르트 비시탐(Mart Viisitamm)은 그보다 나이가 더 어린 25살이다.

에스토니아에서 시장은 시민들이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회에서 선출한다. 그러나 유리 라타스는 이번 11월 시장으로 당선되기 전 약 3년간 탈린 시 부시장을 역임했으며, 그 전에는 탈린 시의회 경제참사로 근무해온 베테랑 정치인이다. 그는 '자전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데 이는 그의 성 'Ratas'가 에스토니아 어로 바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에스토니아 청년농구팀 단장이기도 하다.

에스토니아 제4의 도시 패르누 시장인 마르트 비시탐(Mart Viisitamm). 25살이다. 위 사진은 비시탐 시장의 홈페이지에 올려진 것으로, 시장 당선 후 시민들에게 보내는 감사인사를 담고 있다.
에스토니아 제4의 도시 패르누 시장인 마르트 비시탐(Mart Viisitamm). 25살이다. 위 사진은 비시탐 시장의 홈페이지에 올려진 것으로, 시장 당선 후 시민들에게 보내는 감사인사를 담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여름 수도라고 알려진 최대의 휴양도시 패르누의 신임시장 마르트 비시탐 역시 부시장 직을 2년간 맡아온 정치인이다. 하지만 그는 지나치게 어린 자신의 나이를 콤플렉스로 여겼는지 선거운동 포스터에 40대로 보이도록 연출했다. 또 당선 이후 미디어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몸은 25세지만 나이는 70살처럼 느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한두 명의 젊은 정치인이 주목받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듯 젊은이들이 정치권에 포진해있는 나라는 에스토니아가 유일하다. 에스토니아에서 이렇게 젊은이들의 정치, 경제 진출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젊은 정치인들의 등장이 가능했던 이유

에스토니아 내 나토활동의 정보를 총괄하는 에스토니아 나토연합 사무장인 외르겐 시일(Jörgen Siil)의 말을 들어보자. 그 역시 1980년생이다.

"90년대 에스토니아가 독립하면서 개최된 최초의 민주선거에서 당시 소련에 항거하여 활동한 다수의 젊은 일꾼들의 당선이 되었다. 기성세력들은 다분히 친소련적이어서 새로운 정치질서에 맞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때 정치에 입문한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정당을 창설하면서 정당에서도 많은 물갈이가 진행됐다."

그러나 탈린 사범대학교에서 문화사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로네 오츠(Loone Ots) 교수의 말은 좀 다르다.

탈린 구 시가지 모습.
탈린 구 시가지 모습.
"에스토니아의 젊은 정치인들의 등장은 최근에서야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이미 19세기 말 민족주의 운동이 시작되던 때 민족의 정치적 영웅이었던 트니슨(Tõnisson)이 에스토니아 최초신문인 <포스티메에스(Postimees)>를 창간할 때 나이도 불과 20대였다. 또 현재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100크론 지폐(8500원)에 초상화가 그려져 있을 만큼 온 민족의 사랑을 받는 여류민족시인 리디아 코이둘라(Lydia Koidula)가 정치활동을 시작했던 때도 20대였다. 그리고 1차 대전 이후 에스토니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콘스탄틴 팻츠(Konstantin Päts)의 당시 나이도 40세였다."

결과적으로는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젊은이들의 정치활동에 대한 반감이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또 시장을 시의회에서 선출하는 것이니만큼 기성세대 정치인들 역시 20대 젊은 정치인들의 능력을 믿고 있다는 말이 된다.

로네 오츠 교수는 "소련 시대의 사회주의 정부 역시 에스토니아 내 젊은 정치인들이 활동하는 분위기를 많이 조장해주었다"고 말한다. 1945년 에스토니아가 소련 공화국의 일부로 편입되었을 때 소련의 정치적 환경은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사회주의 이념을 주입하는 식의 노인우선주의였으나, 흐루시초프의 해빙기가 시작된 1960년대부터 젊은이들이 주요자리에서 활동할 수 있게 배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것.

20대 시장들에게 거는 기대

젊은 정치인들의 정치 진출 역사가 오래됐다고 해도 이번처럼 20대 중반의 정치인들이 수도를 비롯한 대도시 최고 직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에스토니아 내에 우려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에스토니아는 젊은이들의 정치진출에 대한 반감이 없다. 탈린 구시가지의 시민들.
에스토니아는 젊은이들의 정치진출에 대한 반감이 없다. 탈린 구시가지의 시민들.
젊기 때문에 개혁을 서슴지 않으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개방적이지만, 정치 연륜이 짧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쉽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실제 패르누의 25세 시장은 독일에서 온 손님을 맞이하면서 나치식의 거수경례를 붙여 적잖은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라트비아나 리투아니아 등 비슷한 상황에 놓은 국가들이 여전히 심각한 관료주의와 정치적 나태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또 젊은이들이 나라를 속속 떠나는 두뇌고갈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드러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에스토니아의 상황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에스토니아인들이 취임한 지 채 한달도 지나지 않은 20대 시장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젊은 사고와 숙련된 기성세대 화합이 발전 가져와"
[인터뷰] 27살의 신임 탈린시장 유리 라타스(Juri Ratas)

▲ 탈린의 차 없는 날 선포식에서 벨로택시에 시승한 유리 라타스 탈린 시장.
ⓒ유리 라타스 제공
- 27세로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시의 시장이 됐다. 어리다는 이유로 사회적인 반대여론은 없었나.
"그와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땐 젊음이란 금방 소실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정치경험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청에서 일을 시작한 게 2002년 초반부터였다. 시장의 경제참사로 일을 하다가 그 후엔 부시장이 됐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현 탈린 시에서 가장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이 나라는 것이다."

- 에스토니아 젊은이들의 정치참여가 활발한데 그런 분위기는 어떻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에스토니아는 전반적으로 젊은 국가다. 발전 속도가 아주 빠른데 여러 경험과 새로운 사고의 융합을 주저하지 않는 분위기가 큰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젊은이들과 숙련된 기성세대와의 화합이 시 정부를 움직여가고 있다."

- 정치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 젊은이들의 정치관심도는 어느 정도인가. 젊은이들의 정치참여가 에스토니아 정치에 장점이 된다고 보는가.
"내가 정치에 몸담게 된 것은 무언가 일을 하고 결과를 터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이들의 정치관심도는 케스케라콘드(에스토니아의 최대정당)가 운영하는 청년모임에 2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에 정치에 대한 공부도 빠르고 다양하게 할 수 있고, 정치를 일찍 시작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경험도 더 많아진다."

- 시장 임기를 마친 뒤에는 대통령이나 유럽의회 진출까지 생각하고 있나.
"앞으로 지켜보아주길 바란다."

- 한국의 수도 서울을 비롯한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관계에 대한 특별한 계획은 없나.
"아쉽게도 현재까지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활동은 없었다. 현재 탈린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서유럽 특히 유럽연합 국가들이다. 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의 발전 속도나 잠재력 차원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조만간 탈린 시와의 협력도 예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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