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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먹다> 책 표지
<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먹다> 책 표지 ⓒ 역사넷
'참 건강한 손이구나!'

늦은 저녁 전주터미널 앞에서 처음 전희식 기자와 악수를 나누고 받은 첫 인상이었다.

서울과 인천에서 오랫동안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던 그가 전북 완주로 내려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벌써 10여 년. 전희식 기자는 그곳에서 자신이 몸으로 살아내며 겪었던 일들을 <오마이뉴스> 기사를 통해 나누었고 그 글들은 지난 2003년 <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먹다>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그간 기사를 통해 귀농이 단지 농촌에 가서 전원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일임을 강조하는 그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았다.

귀농은 땅과 자연에 가까이 가는 생활

귀농을 주제로 하는 많은 글들이 있지만 전희식 기자는 단순히 시골 생활의 낭만적인 면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단순히 농촌에서 사는 일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교육, 사회, 대체의학까지 아우르며 새로운 형태의 삶을 제시한다. 책에서도 밝혔듯 그에게 귀농은 땅과 자연에 가까이 가는 생활이며 그것이 자신에게 갖는 의미는 구원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그가 다루는 주제들에서는 일견 수도자의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손을 찍고 싶다고 말하자 '그럼 부처님 손을 해볼까요?'라며 활짝 웃는 전희식씨.
손을 찍고 싶다고 말하자 '그럼 부처님 손을 해볼까요?'라며 활짝 웃는 전희식씨. ⓒ 심은식
바람직한 시골생활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이 시골로 가서 살면서 주거환경이나 생활 습관은 도시 그대로 가져가려고 하는 걸 많이 봅니다. 대표적으로 수세식 변기 같은 게 그래요. 시골에 가면 시골에 맞는 화장실을 써야지요."

거실안쪽으로 들인 아궁이 - 방의 난방 뿐 아니라 벽난로 구실을 해서 거실도 훈훈하다.
거실안쪽으로 들인 아궁이 - 방의 난방 뿐 아니라 벽난로 구실을 해서 거실도 훈훈하다. ⓒ 심은식
그의 집 화장실은 볼일을 보고 쌀겨와 깻묵을 섞은 것을 뿌려 덮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다시 땅으로 온전히 돌아간다.

그렇다고 그가 온전히 구식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장작을 때는 구들의 경우 빈병들을 채워 넣어 보온효과와 열효율을 높였고 거실 안쪽으로 아궁이를 두어 난로 역할을 겸하게 하기도 했다. 곶감을 만드느라 벗긴 껍질도 그냥 버리지 않고 햇볕에 내어 말려 쓸모있는 것으로 만든다. 알뜰하고 지혜로운 삶이다.

처음 그가 귀농을 해서 이런 시도들을 했을 때 마을 어른들은 어떻게 비료나 약도 안주고 농사를 짓느냐며 걱정을 했다. 그러나 올해 마을의 배추 농사 중 가장 실한 것은 그의 밭이다. 이렇다 보니 여기저기서 그의 글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들이 불쑥 찾아오면 불편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지요. 그런데 요즘은 그 분들도 귀한 시간을 내어서 오는 것인데 나 역시 그에 대해 얼마간 시간을 내는 것이 옳겠구나 싶어요."

부창부수라 했던가, 부인 조현숙씨의 말이다.

전희식, 조현숙씨 부부 - 작은 일 하나하나도 서로 상의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전희식, 조현숙씨 부부 - 작은 일 하나하나도 서로 상의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심은식
책을 내고 한동안 절필을 하기도

그에게 글 쓰는 과정의 어려움을 물었을 때 그는 글 쓰는 일이 자신을 구속한다는 점을 들었다. 독자를 의식하고 문장을 다듬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책을 낸 후 한동안 절필을 하기도 했다.

"책이 나오기 전 <오마이뉴스>를 통해 기사를 쓰는 동안에도 다른 곳에서 원고청탁이나 출판 제의가 많았습니다. 내가 관심을 가진 주제들에 다른 매체들과 독자들이 긍정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도 기쁜 일이었고요. 그런데 어쩐지 스스로 글에 묶이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글로 써놓고 지키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마음이 편치 못했고요."

이제는 그런 마음을 경계하고 고백하면서 다시 자신을 추스르는 기회로 여긴다고 한다. 느긋하고 한가로운 농촌 생활을 하는 듯 보이지만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을 닦아나가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다음날 새벽 산속에서 아들 새들이와 함께 알몸으로 30분간 냉수욕을 하고 오기도 했다. 스스로를 온전하게 하며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그의 이런 시도들은 때로는 비과학적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최소한 그의 건강상태는 30대 초반의 기자보다 훨씬 좋아보였다.

전희식 기자의 손 - 박노해씨는 그를 가리켜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내는 사람’이라고 했다.
전희식 기자의 손 - 박노해씨는 그를 가리켜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내는 사람’이라고 했다. ⓒ 심은식
만 하루가 채 안되지만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하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그와 처음 만나 악수를 나눌 때 받은 그 손의 두텁고 건강한 느낌을 잃지 않았다. 시인 박노해씨가 왜 그를 가리켜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내는 사람'이라고 했는지 짐작케 했다.

전희식 기자는 누구?

1958년에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고 서울과 인천에서 10여 년 넘게 사회 변혁 운동에 몸담았다가 10년 전 전북 완주로 귀농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 짧은 입산 수도 생활을 거쳐 '야마기시 공동체', '동사섭', '아봐타' 수련을 통해 명상적 사회운동을 추구하게 되었으며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의 사이버단장과 전주 귀농학교 총동문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시민행동21의 운영위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인터넷사업을 통해 생태적 인터넷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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