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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사립학교법 개정안 표결처리를 놓고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격렬한 몸싸움을 하는 가운데, 이방호 한나라당 의원등이 김원기 의장에게 서류를 던지고 있다.
9일 오후 사립학교법 개정안 표결처리를 놓고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격렬한 몸싸움을 하는 가운데, 이방호 한나라당 의원등이 김원기 의장에게 서류를 던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9일 정기국회 마지막날, 사학법 개정안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라는 비상수단을 통해 처리되었다. 한나라당은 끝까지 몸으로 맞서며 극렬 저지했지만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이 표결에 참여해 재석 의원 154명 중 140명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사학의 투명성 확보를 내세운 사학법 개정안은 16대 때부터 발의되었으나 '소수' 집권당(민주당)의 한계로 17대로 넘겨졌다. 여당이 과반 의석을 점한 17대 와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작년 정기국회 마지막날까지 사학법 개정안은 국가보안법 폐지안과 함께 '4대 개혁법안'에 묶여 대야 협상 테이블에 올랐으나 처리되지 못했다.

올들어 김원기 의장이 종용한 처리 시한도 여러 차례 넘겼다. 한나라당은 사학법 개정안과 함께 '자립형 사립고'의 동시 처리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보법 등 '개혁법안' 처리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열린우리당은 사학법이라도 연내 처리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높았던 터. 민주노동당과 애초 합의한 '원안'에서 한발 후퇴해 김원기 국회의장의 '중재안'이라도 수용해 처리 속도를 냈다.

쟁점은 개방형 이사제 도입. 개방형 이사제란, 사립학교 이사진 구성과 관련 이사회가 갖던 임명권의 일부를 학교운영위원회나 대학평의회에 넘겨 이들이 2배수로 추천하는 외부 인사를 이사회가 선임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그 숫자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이사진 9명 기준에 1/3을 개방형 이사로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민주당의 현행 7명 기준에 1/4안을 전격 수용했다. 민주노동당은 표결에는 참여했으나 '기권'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민주당도 '3개월 처리 유예'라는 입장을 양보해 표결에 참여했다. 이에 따라 2명의 개방형 이사가 사학 운영의 감시자 노릇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외에도 학교법인의 감사 1인을 학교운영위(대학평의회)에서 추천하는 인사로 임명해 사학의 회계감사 기능을 강화했다. 또한 ▲위법 행위를 한 사학의 임원에 대한 승인취소권 강화 ▲이사장 친인척의 이사회 비율 축소(현행 1/3→1/4) ▲이사장 친족의 학교장 임명도 금지했다.

"저기에 국가보안법도 끼워 넣었으면..."

한나라당은 사학법 개정안 국회 통과에 항의하며 본회의장 철야농성을 하기로 결정했다. 안상수 의원이 본회의장 철야농성 의총에서 의원직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사학법 개정안 국회 통과에 항의하며 본회의장 철야농성을 하기로 결정했다. 안상수 의원이 본회의장 철야농성 의총에서 의원직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결국 법안은 통과되었지만 그 과정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한나라당의 의원들의 본회의장 점거에 앞서 '방어용' 점거를 단행한 열린우리당은 의장석을 차지하며 한나라당 의원들의 입장을 막았다. 본회의장 입구에는 200여 명의 양당 보좌관, 당직자, 의원들이 뒤엉켜 몸싸움을 벌였고 입구 한쪽의 유리창이 깨지는 바람에 가벼운 부상자도 나왔다.

'저지선'을 뚫으려는 측과 막으려는 측은 "으싸, 으싸"라는 구호를 외치며 힘을 겨뤘고 "비리사학 옹호하는 한나라당"이라는 비난에는 "너 어느 학교 나왔어"라는 삿대질이 이어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기자들 사이에선 "코미디구만 코미디"라는 냉소도 흘러나왔다.

몸싸움에 가세하지 않고 멀찌감치 서 있던 한나라당의 한 소장파 의원은 "국가보안법 협상 때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사학이 세긴 세다"라고 혀를 찼다.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은 "저기에(사학법) 국가보안법도 끼워 넣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운 표정이었다.

이날 상황에서는 평소 뒷짐지던 중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열린우리당의 배기선 사무총장은 깨진 유리창에 손가락이 베인 한 후배 의원에게 일회용 반창고를 붙여주었고, 문희상 전 의장은 맨 앞에서 대문을 지켰다.

한나라당은 국회의장실 복도를 점거하며 의장의 본회의장 진입을 막으려 했지만 의장은 허를 찔렀다. 오후 2시 40분경 국회의장은 의장실이 아닌 '제3의 장소'에 있다가 국회 경위들의 호위를 받으며 본회의장 진입에 성공했고, 그 뒤 사학법 처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김 의장은 안건 순서를 당겨 사학법을 우선 상정했고 정봉주 의원으로 하여금 제안설명을 하도록 했으나 정 의원의 말이 두 문장도 진행되기 전에 한나라당 의원들에 의해 저지당했다. 김 의장은 "부끄럽지 않아요"라고 호통을 쳤으나 자제될 상황이 아니었다. 법안설명은 의원들 책상 앞에 설치된 컴퓨터 단말기로 대체되었으며 투표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의장석을 지켜야 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제대로 투표가 가능하지 않은 상황.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교대로 투표를 했다. 재석의원 수의 과반수가 찬성할 때까지 표결 종료를 기다려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종이뭉치와 들고 있던 피켓을 던지며 격렬히 저항했고 "무효, 무효"를 외쳤다.

투표가 완료되자 김원기 의장은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의사진행을 할 수 없다"며 산회를 선포했다. 정기국회 마지막날, 국회는 겨우 한 건의 입법 실적을 보였다.

한편 이날 투표 상황에 대해 이낙연 민주당 원내대표는 "개인적으로 이런 상태의 표결을 경험한 적 없고, 본적도 없어서 대단히 혼란스러웠다"며 착찹해 했다. 한나라당은 투표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의 대리투표가 있었다며 원천 무효를 주장했고, 열린우리당은 되려 한나라당 의원들이 자당 의원들의 자리에 와서 반대 버튼을 눌렀다고 맞섰다.

우리 "해냈다" 환호 - 한나라 "장외투쟁" 침통

9일 오후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국회의장이 표결처리선언하자, 투표를 위해 빠져나가던 유기홍 열린우리당 의원을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등이 옷을 붙잡으며 저지하고 있다.
9일 오후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국회의장이 표결처리선언하자, 투표를 위해 빠져나가던 유기홍 열린우리당 의원을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등이 옷을 붙잡으며 저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대치해 왔던 시간에 비해 정작 법안 처리에 걸린 시간은 20여분. 여야 지도부의 처지는 엇갈렸다. 열린우리당은 오래 묵은 체증을 풀어낸 듯 흥분해 있고, 반면 한나라당은 허탈과 분노로 침통한 분위기다.

정세균 의장이 의원총회에서 목이 메인 듯 "감사하다"고 인사하자 의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되는 일없이 한나라당에 끌려왔다고 생각하는 열린우리당은 모처럼 거둔 '성과'에 상기된 분위기다. 정 의장은 12일부터 시작되는 임시국회에서 예산안, 민생법안 처리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차제에 이탈된 개혁 지지층의 '복귀'도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모든 의사일정을 거부하고 장외투쟁을 선언한 터라 앞으로가 더 문제다. 남은 임시국회 기간 처리해야 할 8·31 부동산 대책 후속법안과 예산안 등 한나라당의 협조없이는 처리하지 못할 법안들이 산적하다.

한나라당의 강재섭 원내대표는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의 뜻을 밝혔다. 작년 연말 국가보안법 등을 처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으로 물러난 천정배 전 원내대표 꼴이다.

박근혜 대표는 "필요에 따라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현재 국회의장 불신임안 제출을 검토하고 있으며 대리투표 의혹에 대한 사진판독도 요청한 상태다. 하지만 당초 결의한 철야농성은 취소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핵심 지지층이랄 수 있는 사학재단의 저항에 어떤 식으로든 화답해야 할 처지. 이들과 함께 대정부 투쟁과 '위헌소송' 등을 전개하며 정부여당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이 여세를 몰아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하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을 보다 분명히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사학법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 지지층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연말 정국은 안갯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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