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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김삼순>
<내 이름은 김삼순> ⓒ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김선아)

올 상반기 전국을 뒤덮었던 삼순이 신드롬의 원조.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다. 내세울만한 배경도 없는 노처녀 주제에 성질은 반골에다가 말투는 거칠다. 그야말로 완벽한 안티 히로인의 전형이지만, 바로 이처럼 주눅들지 않는 건방진 매력으로 잘난 왕자를 사로잡는다. 신데렐라 스토리의 변종? 그것도 옳다. 하지만 적어도 삼순이는 역대 어떤 신데렐라보다 솔직당당한 매력을 발산한다.

<장밋빛 인생>의 맹순이(최진실)

하반기 브라운관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우리 시대의 전형적인 아줌마 맹순이, 억척스러운 또순이의 모습 이면에는 엄마 혹은 아내라는 이름 뒤로 언제나 밀려나야만 했던 우리 시대 아줌마들의 잊혀진 슬픔이 있다. 남편 반성문의 뒤늦은 속죄와 순애보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편과 가족에 대한 헌신만을 강요당했던 여성들의 삶을 위로하는 짧은 환타지였다.

<굳세어라 금순아>의 금순이(한혜진)

젊은 나이에 홀몸이 되고 애까지 딸린 청상과부의 이야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면, 그저 기구한 인생을 한탄하는 청승맞은 수절기로 끝맺었겠지만, 우리 시대의 '신세대 과부' 금순은 갸날프긴 해도 결코 나약하지는 않다. 과부 혹은 재혼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에 완곡하게 저항해 나가며, 금순은 마침내 일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행복의 조건을 모두 쟁취해낸다.

평범한 사랑은 가라. 사랑은 내 방식대로

<연애의 목적>의 최홍(강혜정)

사랑에 배신당하고 스토커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써야 했던 비운의 여인. 그녀의 순정은 언제나 남성중심적인 사회의 편견 속에 왜곡당하고 버려진다. 그러나 사람을 통해 받은 상처는 사람을 통해 잊어야한다고 했던가. '들이대기의 제왕' 유림(박해일)을 보약(?)삼아 과거에의 속박에서 비로소 해방된 그녀는 다시 새로운 사랑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연다.

<사랑니>의 인영(김정은)

여자나이 30살, 너무 어리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다. 안정된 직장에 번듯한 애인, 현실을 자각할만한 연륜까지 갖춘. 그러나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열병같은 첫사랑에 다시 빠져든다. 헤어진 첫사랑을 닮았다는 17세의 어린 제자와 함께. 그것은 순수한 사랑일까?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죄가 될 수 없다고 믿는 인영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현재의 감정에 충실한 것 뿐이다.

<여자 정혜>의 정혜(김지수)
<러브토크>의 써니(배종옥)


슬픔도 기쁨도 박제되어 버린 표정, 매일 반복되는 나른한 일상속에 자신을 가두고 사는 여자. 이윤기 감독은 과거의 상처로 인해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두 여인, 정혜와 써니를 통해 고독한 현대인의 소통 장애와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남자를 만난 정혜와 고국에 돌아온 써니, 두 여인은 마침내 과거와 화해할 수 있었을까?

<너는 내 운명>
<너는 내 운명> ⓒ CJ엔터테인먼트
<너는 내 운명>의 은하(전도연)

세상의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녀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런 그녀에게 막무가내로 영원한 사랑을 고백하며 다가오는 순진한 농촌 총각이 있다. 자신의 비극이 남자에게 전염될까봐 두려운 그녀는 남자를 떠나려 하지만, 인연은 질긴 끈처럼 두 사람을 다시 엮어놓는다. 세상의 오만과 편견으로 갈라놓을 수 없었던 두 사람은 서로가 자신의 운명임을 확신한다.

<웰컴 투 동막골>의 여일(강혜정)

영화속 광인들은 언제나 정상인을 위협하는 악역이 아니면, 아픈 과거를 간직한 희생양이었다. 그러나 동막골의 여일은 그 어떤 기준에도 부합되지 않는, 역대 가장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미친 년'을 창조해낸다. 때묻은 속세의 흔적을 초월하여 동막골의 순수를 상징하는 엉뚱발랄한 캐릭터는, 앳된 인민군 소년의 마음에도 잔잔한 첫사랑의 파문을 일으킨다.

한국형 팜므파탈,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친절한 금자씨> ⓒ 모호필름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이영애)
<오로라 공주>의 정순정(엄정화)
<6월의 일기>의 서윤희(김윤진)


모성애와 죄의식의 결합, 올해 한국형 팜므파탈의 특성을 나타내는 키워드라 할 것이다. 자신을 배신한 백 선생에 대한 복수심과 죽어간 아이들에 대한 속죄의식 사이를 오가는 금자, '죄를 저지른 자'뿐만 아니라, '죄를 방기한 자'에게도 똑같은 책임을 묻는 순정, 고통받는 아이의 동영상을 보며 절규하는 윤희의 모습은, 법과 제도의 영역을 대신하여 모성애의 이름으로 비정한 사회를 응징하는 피의 진혼곡이다.

공주는 괴로워

<루루공주>의 고희수(김정은)

공주와 백치의 차이는 무엇일까? 재벌들의 사랑타령을 순수하게 보이려면, 일단 공주를 최대한 세상물정에서 떨어뜨려 멍청하게 보여야한다는 과감무쌍한 설정. 백치미의 극을 달렸던 여성 캐릭터는, 화려한 PPL(간접광고)과 함께 <루루공주>를 올해 최악의 드라마로 올려놓은 일등공신이었다. 이처럼 시대착오적인 캐릭터가 아직도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은 곧 시청자에 대한 모독이다.

<프라하의 연인>의 윤재희(전도연)

사랑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대통령의 딸은, 프라하에서 만난 말단 형사에게 필이 꽂히자마자 망설임없이 먼저 대시하는 적극성을 보여준다. 극단적인 신분의 차이에도, 남자의 과거에도 연연하지 않는 낙천적인 매력은, 무뚝뚝한 터프가이의 마음마저 돌려놓는다. 근데 늘 사랑 타령만 하고 있으니, 외교관이 그렇게 한가한 직업이었던가?

소중한 것은 스스로 지킨다. 강하기에 아름다운 여인들

<무영검>의 연소하·매영옥(윤소이·이기용)
<신돈>의 노국공주(서지혜)


내 남자는 내가 지킨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망설임없이 칼부림을 해댈 때는 냉철하고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자신의 사랑에 있어서는 더없이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이면을 드러낸다. 알고 보면 지고지순한 외강내유의 순정파. 다만, 이 여자들 앞에서 한눈 팔다 걸리는 날엔 곧장 염라대왕과 면담할 각오를 해야한다.

<해신>의 자미부인(채시라)

자미부인은 남자의 등뒤에 숨어서 치마폭으로 권력을 조종하는 기존 시대극의 여성 캐릭터와는 차이가 있다. 당당한 일파의 수령이자 시대의 거상으로서 남자들과 자웅을 겨루는 모습은, 악역이 주는 교활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여걸의 풍모 또한 잃지 않는다. 냉철한 판단과 과감한 선택으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자미부인의 캐릭터는, 윤리적인 영웅형의 장보고와 시종일관 팽팽한 대립각을 통해 긴장감을 자아냈다.

어머니, 우리 시대의 영원한 어머니

ⓒ imbc
<말아톤>의 경숙(김미숙)

엄마는 아이의 사소한 행동이나 눈빛만 봐도 그 마음을 알 수 있다. 평범하지 못한 아이가 남들의 오해와 편견 속에서 고립된 삶을 살길 원하지 않았던 엄마는, 마라톤을 통해 아이와 세상을 교감시키려 한다. 그것이 행여 엄마만의 욕심이라 할지라도, 아이가 강하게 자라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의 손을 놓는 순간, 초원은 자신만의 의지로 세상앞에서 선다.

<가문의 위기>의 홍덕자(김수미)

우리 시대의 영원한 '일용 엄니'. <마파도>의 욕쟁이 할머니에서 <안녕 프란체스카>의 조로한 뱀파이어를 거쳐 <가문의 위기>의 백호파 대모에 이르기까지 '중견 파워' 김수미를 제외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캐릭터는 없다. 그녀가 그려내는 어머니상은, 희생과 헌신으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현모양처가 아니다. 걸죽한 입담속에 때로는 철없는 아이처럼, 때로는 편안한 친구처럼 같이 수다를 떨 수 있는, 억척스러우면서도 친근한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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