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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유족과 관련 피해자들이 국정원 진실위의 고문·조작 사실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가진 7일 희생자들이 묻혀있는 현대공원에서 참배를 하고 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유족과 관련 피해자들이 국정원 진실위의 고문·조작 사실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가진 7일 희생자들이 묻혀있는 현대공원에서 참배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강창덕(79·사진 오른쪽)씨가 사형집행으로 숨진 인혁당 연루 인사의 묘지 위에 술을 부으며 오열했다.
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강창덕(79·사진 오른쪽)씨가 사형집행으로 숨진 인혁당 연루 인사의 묘지 위에 술을 부으며 오열했다.
"여보…, 여보…. 이제는 마음 편히 쉬세요."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고 살아왔던 아내는 30년만에 기쁨의 눈물을 쏟아냈다. 하지만 남편의 무덤을 어루만지는 아내의 손은 이미 골 깊은 주름만 남았다.

7일 오후 3시 가칭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의 유족과 생존한 피해자들이 일부 희생자들의 묘지가 들어선, 경북 칠곡군에 위치한 현대공원을 찾았다.

같은 날 오후 1시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국정원 진실위·위원장 오충일 목사)가 지난 74년 인혁당·민청학련 재건위 사건이 정권차원의 고문·조작 사건을 인정한 것을 보고하고 참배하기 위한 자리였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유족들은 묘비를 어루만지면서 설움이 복받치는 듯 오열했다. 당시 사형이 집행돼 숨진 고 송상진(당시 47세)씨의 부인 김진생(77)씨는 "이제야 진실이 밝혀졌다"면서 "남편이 이제야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게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죄없는 사람이 끌려간뒤 죽을 때까지 만나지도 소식도 전해듣지 못했다"면서 "남편이 사형집행으로 숨지고 난 후에도 남은 가족들은 '빨갱이'의 아내와 자식으로 고통스런 세월을 보내야했다"고 토로했다.

고 하재완(사형집행 당시 42세)씨의 부인 이영교(71)씨도 "뒤늦게나마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 것은 너무나 반가운 일"이라고 환영하면서도 "그동안 아이들 앞에서도 제대로 울어본 적이 없었다"면서 회한의 심경을 나타냈다.

당시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지난 82년 출소했던 강창덕(79)씨도 "사필귀정처럼 억울했던 사건의 진상이 드디어 만천하에 드러났다"면서 "서대문 형장에서 이슬로 사라졌던 고인들과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했던 많은 동지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환영했다.

유족과 당시 사건 관련자들은 국정원 진실위의 조사 결과 발표에 대해서는 환영하면서도 이번 조사결과 발표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건 개입 여부에 대해 뚜렷히 밝히지 못한 점을 아쉬운 부분으로 꼽았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던 임구호(58) 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은 "구체적으로 박정희와 청와대의 개입 근거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면서 "당시 중앙정보부는 정권의 하수인에 불과했고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가 직접 지휘하고 개입한 사건이라면서 앞으로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족들은 국정원 진실위의 조사 결과 고문·조작이 사실로 드러났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법원의 조속한 재심이 이뤄지고 정부차원의 배상과 사과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

이날 오후 2시 묘지 참배에 앞서 유족을 비롯해 인혁당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대구경북추진위원회 관계자들은 대구여성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법원의 재심을 요구했다.

대구경북추진위는 발표한 성명에서 "국정원 진실위가 인혁당 사건이 청와대와 국정원이 고문·조작한 것으로 자기 고백하면서 이제 재심을 통한 법적해결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면서 "재심사유가 충족됐기 때문에 법원이 신속하게 재심을 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구경북추진위는 또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면서 "정부에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인혁당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7일 오후 2시 대구여성회에서 인혁당 사건 유족과 관련 단체 관계자들이 조속한 재심 개시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7일 오후 2시 대구여성회에서 인혁당 사건 유족과 관련 단체 관계자들이 조속한 재심 개시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빨갱이 가족 시선 따가워...부인까지 데려가 고문"
[인터뷰] 인혁당 사건으로 희생된 고 송상진씨 부인 김진생씨

▲ 고 송상진씨의 부인 김진생씨가 남편의 무덤을 어루만지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는 "이제는 편히 쉬시라"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오마이뉴스 이승욱

지난 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고문·조작됐다는 사실이 그 주체였던 국정원의 자기 고백으로 드러났다. 인혁당 사건 희생자들의 사형이 집행된지 30년만의 일이다.

하지만 국정원의 자기 고백은 유족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다. 사건 당시부터 유족들은 정권의 협박과 괴롭힘 속에서도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김진생(77)씨. 그도 이러한 유족들 중 한명이다. 고 송상진(당시 47세)씨의 부인인 김씨는 힘든 살림을 일구면서 남매를 키워냈다.

그러나 김씨는 힘든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남편의 죽음을 밝히는데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남편의 죽음과 인혁당 사건의 고문·조작을 밝히기 위해 노구의 몸을 이끌고 먼 서울 등지의 집회에 참석하면서 피눈물을 흘렸다.

다음은 김씨와의 인터뷰 요지.

- 국정원 진실위 결과가 나왔다. 감회는?
"그동안 얼마나 서럽고 괴로웠는지 모른다. 뒤는게나마 고문·조작 사실이 밝혀져 다행스럽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입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는데…."
"박정희가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이 분명하다. 시신을 훔쳐가는 짓을 도대체 누가 할 수 있었겠나. 왜 박정희가 개입한 흔적이 없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 그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을 것인데, 어떤 점이 힘들었나?
"아이들 앞에서도 제대로 울 수 없었다. 그 사건이 터진 후에 우리 집에는 웃음이 사라졌다. 항상 형사들의 감시하고 아들이 다니는 교회 목사에게까지 감시를 요구했다고 한다. 항상 빨갱이의 아내, 자식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형사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부인들이 미쳤다는 헛소문까지 퍼뜨렸다."

- 중정에서 유족들까지 고문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지난 79년 남민전 사건이 터졌을 때 구속된 사람들한테 내복을 전해줬다고 부인들이 중정으로 끌려가서 얼마나 맞았는지 모른다. 몽둥이를 무릎 뒤에 끼우고는 밟았다. 그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다."

-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남편 시신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장례라도 제대로 치르려고 했지만 시신까지 크레인 동원해서 빼앗아갔다. 면회도 하지 못하게 해 죽기 전 남편의 얼굴도, 이야기도 한마디 듣지 못한게 너무나 억울하다."

- 바람이 있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무슨 책임이 있을까마는 지금이라도 직접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법원에서도 빨리 재심해야 한다. 그래야 이 문제가 깨끗히 해결되는 것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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