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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률 국세청 조사국장.
한상률 국세청 조사국장. ⓒ 국세청
"전산시스템으로 정기 (세무)조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 걸러지지는 않는다. 자영업자들의 경우 0.3% 정도가 조사를 받는 것으로 나온다. (모든 자영업자가 세무조사를 받으려면) 햇수로 300년에 한 번 조사를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세청 기자실. 한상률 국세청 조사국장은 '고소득 전문직 등 자영업자에 대한 세무조사 대상 선정은 어떻게 이뤄지나'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전산시스템을 통해 조사 대상자를 뽑지만, 전체 고소득 자영업자를 놓고 볼 때 세무조사를 받는 고소득자는 극히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한 국장은 이어 "행정력이 여의치 않아, 소득 탈루혐의가 있는 모든 사람을 조사하는 것은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최근 정부의 8·31 부동산 입법이 늦춰지면서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부동산값이 오르자 국세청이 다시 '세무조사'라는 칼을 빼 들었다. 특히 일부 지역 아파트의 경우 8·31 대책 발표 이전 수준으로 가격이 돌아서자, 국세청은 지난 주말 부랴부랴 당초 예정에도 없던 세무조사 기자회견을 서둘러 잡았다.

부동산 입법 늦어지자, 다시 '세무조사' 꺼내

한상률 조사국장도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부동산 시장이 지난 몇 개월 동안 안정세를 유지했지만, 최근 강남의 재건축 및 각종 개발계획 등과 관련해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국지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투기심리를 차단하고 시중 부동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다시 유입되어 투기적 가수요를 일으키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면서 세무조사의 배경을 설명했다.

국세청이 이날 밝힌 세무조사 대상자는 모두 362명. 세금탈루 혐의가 있는 강남 재건축아파트 취득자와 소득신고에 비해 부동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전문직 종사자, 개발계획 예정지에 대한 토지투기 혐의자 등이다. 세무조사는 5일부터 40여일 동안 진행된다.

투기혐의자 세무조사 얼마나 효과 있을까

특히 이번 국세청의 세무조사 대상 가운데에는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국세청은 "세금은 적게 내면서 서울 강남 도곡동 타워팰리스나 삼성동 아이파크 등 비싼 아파트를 많이 가지고 있는 전문직 종사자 112명이 조사대상에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국세청에 따르면 이들 112명 가운데 의사가 58명으로 가장 많고, 한의사 20명, 변호사 20명, 변리사 등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들이다. 투기지역별로는 행정복합도시 예정지 23명, 대전 서남부권 13명, 경주 방폐장 유치지역 20명, 기타 기업도시 예정지 19명 등도 포함됐다.

이밖에 부동산 값이 크게 뛰어오른 지역에서 3채 이상의 주택을 가지고 있는 100명과 부동산 중개업자 등 투기조장 세력 5명도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게될 전망이다.

하지만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여전하다. 올해 들어 부동산 투기 조짐이 일어날 때마다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국세청의 투기혐의자 세무조사는 별로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들어 국세청이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고 세무조사를 발표한 것이 몇 번이냐"면서 "조사를 받는 사람들도 극히 일부분일 뿐 더러, 실제로 투기심리를 차단하는데 효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한상률 조사국장은 "경험에 비춰볼 때 (투기심리를 차단하는 데는)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세무조사가 투기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점에는 공감했다.

매번 '부동산 투기 심리를 잡겠다'며 내놓은 국세청의 세무조사 '약발'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두고볼 일이다.

30억대 아파트·땅 가진 변호사, 월수입은 100만 원
국세청이 공개한 투기혐의자의 사례들

국세청은 5일 부동산 투기혐의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발표하면서, 일부 투기혐의자의 탈루 사례를 공개했다.

사례 1 : 연 6000만 원소득 의사, 70억 원대 재산 어떻게?

서울 강남에서 병원을 운영중인 김아무개(54)씨. 그는 4년간 연평균 6000만원의 소득을 신고했다. 하지만 김씨가 살고 있는 강남의 아파트는 시가로 23억 원 짜리다. 게다가 2001년 이후 모두 4채(48억 원 상당)의 강남권 아파트와 주상복합아파트를 김씨 자신과 아내인 이아무개(48)씨 이름으로 사들였다. 물론 김씨 아내는 별도의 소득이 없다.

국세청은 김씨가 병원 운영에서 발생한 16억3500만 원의 사업소득을 탈루해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의 아내 이씨도 아파트 이외, 골프장 회원권 3개와 고급 헬스클럽 회원권 등을 가지고 있다.

이씨는 또 올 들어 시가 15억 원 상당의 강남 소재 주상복합아파트를 사들이는 데 들어간 돈을 남편으로 부터 물려 받은 것으로 보여, 증여세 탈루 혐의를 받고 있다.

사례 2 : 한의원 운영하면서 수십억 원대 부동산 취득

한의사 이아무개(55)씨는 강남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씨는 최근 5년간 1억6200만 원의 소득 신고를 해왔다. 그러면서 이씨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특별한 소득이 없는 아내 이름으로 시가 16억 원 상당의 고급빌라 및 상가 3채를 사들였다. 또 자녀 2명의 이름으로 시가 18억 원 상당의 강남 소재 재건축 아파트 3채도 취득했다.

보약을 주로 판매하고 있는 이씨 한의원의 경우, 보약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매출이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국세청은 파악하고 있다. 국세청은 이씨가 지난 5년간 15억 원 상당의 수입금액을 탈루해 아내와 자녀에게 증여함으로써 소득세 및 증여세를 탈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례 3 : 수십억 원대 재산가진 변호사, 월수입은 1000만 원 미만?

변호사 박아무개(60)씨. 그는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강남의 시가 21억 원짜리 아파트를 포함해 강남권 아파트 2채와 3만여 평의 농지 등 모두 29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 박씨는 최근 3년간 월평균 100만 원 미만의 소득만 신고했고, 변호사 사무실 운영에서 발생한 5억8000만 원의 사업소득을 탈루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박씨의 아내인 김아무개(58) 씨도 올 들어 충남에 있는 농지 180여 평을 사들이고, 시가 8억 원짜리 강남 아파트를 구입했다. 국세청은 변호사인 남편으로부터 6억5000만 원의 부동산 취득자금을 증여받았으면서도 증여세를 내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 김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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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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