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자라고 처녀라고 봐주는 거 절대 없지요!" 임동오 차량관리팀장(오른쪽)과 민경씨 뒤에 보이는 커다란 건물이 중수선이다.
"여자라고 처녀라고 봐주는 거 절대 없지요!" 임동오 차량관리팀장(오른쪽)과 민경씨 뒤에 보이는 커다란 건물이 중수선이다. ⓒ 한성희
"기차를 손으로 밀어본 적도 있어요."

기차를 손으로 밀어? 기계나 장비를 자용하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사람의 힘으로만 기차를 민단다.

"차량을 정비하려면 한 량 한 량 떼어내야 해요. 원래 이 일은 '후송부'에서 해야 하는데 그때 워낙 바빴거든요. 그래서 끊어낸 기차를 뒤에서 밀었지요. 보통은 몇 명이 같이 밀지만 내리막길에서는 저 혼자 밀어도 움직여요.(웃음)"

커다란 쇳덩어리를 다루는 일이라 남자처럼 한 터프(?)할 것 같다는 기자의 예상은 그녀를 만나는 순간 산산이 깨졌다. 기인열전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앉아서 전하는 사람은 '천하장사 이만기'도 아닌 가냘픈 체구의 앳된 여성이었다.

진청색 철도청 점퍼와 노란 안전모를 쓰고 기자와 마주 앉은 송민경(27·경기 안산시)씨. 윤기가 흐르는 치렁치렁한 긴 머리에 아직 소녀티가 남아있는 외모와 달리 송씨는 차량정비 경력 6년차인 숙달된 정비사다.

긴 머리 가냘픈 몸매...이 아가씨 정비사 맞나

송민경씨.
송민경씨. ⓒ 한성희
송씨는 어려서부터 기계다루는 걸 좋아했다. 컴퓨터며 라디오를 다 뜯어내고 다시 조립하는 게 그에겐 아기자기한 놀이보다 더 재미있는 놀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이런 기차나 기계에 대한 관심이 그를 철도대학으로 이끌었다.

철도대학에서 차량기계를 공부한 것부터 따지면 올해로 9년째. 졸업 이후 첫 직장으로 한국철도공사를 택한 이후 지금까지 6년 동안 그녀의 삶은 기차와 함께 쓰여졌다. 이젠 멍키스패너나 드라이버를 들고 있어야 자연스러울 정도라고.

"보통사람이라면 쇳덩어리 다루는 일이 싫어서 다른 데로 옮길 생각을 많이 했을 텐데, 민경씨는 그런 생각 안 해봤어요?"
"저에겐 기차가 평생 인연이에요. 기차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2000년, 철도공사에 공채로 입사한 송민경씨는 현재 오이도 역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한국철도공사 시흥차량사무소의 116명 직원 중 유일한 여성이다. 기관실 배전관을 점검하고, 배터리 등을 시간별로 검수하는 일이 현재 그가 하는 일이다. 남자 직원과 마찬가지로 바쁠 때면 물론 야근과 잔업을 한다.

"처음엔 젊은 여자가 스패너나 드라이버를 들고 정비를 한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도 많아서 어색하고 그랬는데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 곳에서 하루에 검수 받는 300량의 전동차 중 10량이 민경씨의 몫이다. 오이도에서 당고개까지 서울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수도권 시민을 실어나르는 4호선 전철의 안전을 그녀가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안전운행과 승객의 쾌적한 열차환경을 위해 열차는 날마다 정비하고 점검한다.
안전운행과 승객의 쾌적한 열차환경을 위해 열차는 날마다 정비하고 점검한다. ⓒ 한성희
여라자고 얕보지 마세요, 저도 정비 6년차예요

전동차의 검수는 중수선(전동차 부품을 점검하는 라인)과 경수선(배전, 배터리 등 운행차량 점검 라인)으로 나뉜다. 운동장처럼 넓은 정비소에 20량의 전동열차가 검수를 받기위해 두 줄로 서 있다. 여기저기 쌓인 전동열차 부품들이 눈에 들어오고 기름 냄새가 코끝을 감돈다.

거대한 전동차량들이 여기저기 검수 받는 광경은 여성다움이나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이 공간에서 여성성을 찾기란 힘들다. 하지만 쇳내가 풍기는 그 공간 속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전동차의 심장부인 기관실 배전관 뚜껑을 열고 손전등을 비추며 점검하는 모습은 베테랑의 그것이다.

운전실(기관실) 배전관을 꼼끔하게 점검하는 것도 민경씨 일 중 하나.
운전실(기관실) 배전관을 꼼끔하게 점검하는 것도 민경씨 일 중 하나. ⓒ 한성희
딸만 3명인 집에서 막내로 태어난 민경씨가 남성들의 고유직업으로 여겨지는 이 길을 택했을 때 부모님이 반대하지는 않았을까? 그 반대였다. 어려서부터 기계를 좋아하던 그녀에게 오히려 철도대학을 권유한 건 부모님이었다고.

그래도 처음 입사했을 때는 고생을 했던 모양이다. 철도공사에 입사하고 처음 근무한 곳은 수색에 있는 서울차량관리소였다. 무궁화호, 새마을호 등 객차와 화물열차의 차량정비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남자라고 힘들지 않았을까. 무슨 일이든지 몸에 배면 된다지만 익숙해지기까지는 여러 고비가 찾아왔다. 민경씨는 "이제 전동차 검수일이 완전히 몸에 익었다"며 여유 있게 웃음지어 보인다.

민경씨가 이곳 시흥차량관리사무소로 옮긴 것은 2년 전. 민경씨가 자원해서 옮긴 것이라는 데 이유가 특이하다. 객차와 화물차만 정비하다보니 전동차도 한번 만져보고 싶었다나.

"전동열차와 객·화차는 구조가 다르잖아요. 전동열차는 어떨까 궁금했지요. 그래서 시흥차량관리소로 자원했습니다. 사무직보다는 현장이 더 체질에 맞는 것 같아요"

사무직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현장이 더 좋았단다. 전기로 움직이는 전동열차가 객·화차보다 더 위험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만족한다.

"자동차도 1000km 뛰면 부품을 바꿔줘야 하듯이 열차도 마찬가지예요. 부품을 바꿔주고 불량을 수선하고 항상 돌봐야 해요."

그녀는 남성만의 세계에 뛰어들어 당당히 제 몫을 다하는 '아름다운 여자'였다.

정비라인에서 1량씩 떼어져 정비와 점검을 기다리는 열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딱딱한 독일 군단을 연상케 했다.
정비라인에서 1량씩 떼어져 정비와 점검을 기다리는 열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딱딱한 독일 군단을 연상케 했다. ⓒ 한성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