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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에서 굴맥이재 가는길 옆 숲속, 비가 그치고 따뜻한 햇살이 나무사이로 비추고 있다.
선암사에서 굴맥이재 가는길 옆 숲속, 비가 그치고 따뜻한 햇살이 나무사이로 비추고 있다. ⓒ 서재후
11월의 마지막 주말, 어정쩡한 시간에 출발하면 막힐 것이라 생각했다. 출발 전날의 숙취를 제거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시간대에 딱 맞춰 출발했다. 그 결과 개인적으로 하루 최장 주행시간 기록을 세웠다.

저녁 늦게 도착한 숙소에 짐을 부리고, 불빛 하나 없는 선암사 경내 길을 올랐다. 짙은 어둠 속에서 흘러나오는 산사의 불빛은 진리를 찾아 탐구하는 선승의 눈빛이리라. 스님들의 독경소리와 목탁소리 그리고 사뿐사뿐 오가는 발자국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허락지 않는 경외심이 경내에 흐른다. 조용히 산사를 내려와 오랜 주행시간으로 지친 몸을 쓰러지듯 침대 위로 던졌다.

선암사의 깊은밤, 스님의 목탁소리와 경전 읽는소리,사뿐사뿐 오가는 발자욱소리 외엔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선암사의 깊은밤, 스님의 목탁소리와 경전 읽는소리,사뿐사뿐 오가는 발자욱소리 외엔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 서재후
간밤에 내린 비는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안개를 짓고, 낙엽이 두텁게 쌓인 보드라운 땅에 흙냄새를 뿌려 놓았나보다. 어깨를 활짝 펴고, 입과 코의 평수를 최대한 늘려 오장육부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깊이 숨을 마셨다. 약간의 어질함이 느껴졌지만 어느 값비싼 외제 명품향수보다 천만배쯤 좋다. 조금 열어놓은 창틈 사이로 스물스물 안개가 흙냄새와 함께 밀려든다.

선암사 경내의 낮은 담 아래 조그마한 연못 주위로 예쁜꽃들이 피어있다.
선암사 경내의 낮은 담 아래 조그마한 연못 주위로 예쁜꽃들이 피어있다. ⓒ 서재후
전남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 동쪽에 위치한 선암사는 백제성왕 7년인(529)년에 선암사 비로암지에 아도화상(阿度和尙)께서 창건하였고 사찰명을 해천사(海川寺)라 하고 산명을 청량산(淸凉山)이라 하였다. 그 뒤 도선국사께서 현 가람 위치에 절을 중창하고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웠다고 한다. 지금도 선암사에는 1철불 2보탑 3부도가 전해진다. 이후 선암사는 대각국사 의천이 선암사의 대각암에 주석하면서 선암사를 중창하였으며 또한 천태종을 널리 전파하는 호남의 중심사찰이었다.

이름 모를 행자들의 천년고행의 자취를 간직 한 채 끝도 없는 해탈을 기다리며 조용히 묵좌하고 있다.
이름 모를 행자들의 천년고행의 자취를 간직 한 채 끝도 없는 해탈을 기다리며 조용히 묵좌하고 있다. ⓒ 서재후
선암사는 부도가 많다. 입구와 가장 가까운 부도는 최근까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후대로 갈수로 높이가 크고 고압적이다. 주변의 부도들과도 조화롭지 않다. 선암사의 서 부도전은 주변을 잘 살피지 않으면 대략 모르고 지나쳐버리기 쉽다. 선암사 입구 삼인당에서 송광사(굴목이재)로 가는 등산로 100여m 우측 비탈에 소박한 부도 11기가 모셔져 있다. 천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빠져 있다.

현지의 서 부도전 설명글에 의하면 이곳 노천 선원의 왼편 담장 밖에는 가로 150·세로 110·높이 110㎝ 가량의 자연석 같은 부도가 하나 있고 전면에는 희미하지만 '성무수좌사리탑(性无首座舍利塔)' 라고 음각이 되어 있다고 한다.

비구니 스님의 부도란다. 옛날에는 비구니 스님은 부도를 세우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부도들과 같이 담장 안으로 모시지 못하고 있는 듯 없는 듯 담장처럼 모셔놓은 것일까? 씁쓸한 생각이 든다. 그럼 누가 모셔놓은 것 일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대사가 아닌 수좌라는 말은 차별이 만들어낸 어쩔 수 없는 결과일 것이다. 꼭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선암사에서 굴맥이재 가는 길이다. 어느덧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쓸쓸한 초겨울 분위기가 난다.
선암사에서 굴맥이재 가는 길이다. 어느덧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쓸쓸한 초겨울 분위기가 난다. ⓒ 서재후
선암사 뒤쪽으로는 조계산을 넘어 송광사로 가는 산길이 있다. 이 길이 굴목재다. 마을 어르신들은 굴맥이재라고 부르는데, 일제 시대에 일본 예언가가 이곳 지하로 '굴'이 뚫릴 '목'이라 하여 '굴목재'라 이름을 지었으며 이후 주암댐과 상사호 간의 통수로가 이곳 굴목재 지하로 뚫림으로 전설이 현실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무관하다고 한다.

산길에 세워진 안내문을 보니 옛부터 이곳 지방 사람들은 굴목재 양쪽 사이의 골짜기인 장박'골'을 장박'굴'이라고 발음한다고 한다. 이처럼 '굴'이란 말이 '골'에 근거를 하고 있으니 위의 전설은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골짜기를 가로막고 있는 '목'의 뜻도 가져와 발음의 편리상 '맥이'로 변한 것이다. 그러므로 굴맥이재로 표기해야 맞다고 한다.

굴목이재로 가는길 연인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굴목이재로 가는길 연인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 서재후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가는 굴맥이재 길은 등산로로 많이 알려져 있다. 코스도 여러 가지 있다. 아침밥도 건너뛰고 선암사-작은굴목재-보리밥집-큰굴목재 코스로 산행을 시작했다. 만만히 보면 큰코 다친다. 오랜 운전과 무거운 카메라 장비 탓인지 출발 때 의지는 찾아 볼 수 없다.

작은 굴목재까지 대부분 산행길이 대부분 돌계단식으로 되어있어 녹녹치 않다. 가볍게 오르는 등산객들을 보면, 딱 장비를 던져버리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힘들게 올라온 작은 굴목재, 이제 10분만 가면 된단다. 아침을 굶은 터라 10분이라는 말을 들으니 긴장이 풀렸는지 허기가 지면서 어질어질해진다.

저 물을 마시면 머리가 맑아 질것 같다.
저 물을 마시면 머리가 맑아 질것 같다. ⓒ 서재후
작은 굴목재에서부터는 밥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예전엔 이곳 보리밥집이 많았다지만 지금은 한 곳뿐. 이미 보리밥집은 먼저 도착한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밥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반찬은 거의 대부분이 풀 중심이지만 고추장에 비벼먹는 보리밥은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꿀맛이다. 천년고찰 선암사를 구경하는 것 못지않다. 층층나무, 너도밤나무, 삼나무, 이팝나무, 서어나무, 팽나무, 굴참나무, 조팝나무 등 이름도 예쁜 나무들이 선암사의 천년 역사를 지키며 조계산 자락에 앉아있다.

스님들의 겨울 나기
스님들의 겨울 나기 ⓒ 서재후
선암사의 이른 아침 햇살을 받으며 반짝이는 조릿대 사이 오솔길은 얼어붙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간밤의 촉촉이 내린 비는 천년고찰의 기풍을 한편의 주옥같은 풍광을 만들어낸다. 올 가을 후회하지 않는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 이다.

언제쯤 스님이 나오실까요?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만이라도 알려주세요...
언제쯤 스님이 나오실까요?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만이라도 알려주세요... ⓒ 서재후

누구하나 찾아오지 않을 그런곳의 뜻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발견할수 있다.
누구하나 찾아오지 않을 그런곳의 뜻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발견할수 있다. ⓒ 서재후


부도란

▲ 선암사 두번째 부도전

부두(浮頭) 또는 포도(蒲圖) ·불도(佛圖) 등 여러 가지로 표기되는 불타(佛陀) 또는 솔도파(警堵婆), 즉 탑파(塔婆)의 전음(轉音)이다.

어원으로 본다면 불타가 곧 부도이므로 외형적으로 나타낸 불상이나 불탑이 즉 부도인데, 더 나아가 승려의 것들까지도 부도(浮圖)라 일컬은 예가 있으니 부도란 실로 넓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부도라 하면 일련의 묘탑(墓塔)을 지적하므로 실제는 매우 국한된 용어로 사용된다.

그러나 묘탑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사리를 봉안한 탑이므로 종래에는 모든 묘탑을 탑으로만 통칭하여 왔을 뿐 내용이나 외양을 엄밀히 구별하여 지칭한 용어는 없었다.

한국에서는 묘탑, 즉 부도라는 용어로 승려의 사리묘탑을 가리키는 실례가 신라하대부터 보인다. 즉 대안사(大安寺) 적인선사조륜청정탑비(寂忍禪師照輪淸淨塔碑) 비문 중에 “기석부도지지(起石浮屠之地)”라 하였으므로 이 묘탑이 곧 ‘석부도(石浮屠)’임을 알 수 있다.

이 ‘석부도’는 그 형태가 불탑으로 통칭되는 방형중층(方形重層)의 일반형 석탑과는 달리, 기단부 위에 단층의 탑신을 놓고 옥개(屋蓋)와 상륜부(相輪部)를 차례로 쌓았으며 평면도 8각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불탑 개념으로서의 부도와 승려의 묘탑으로서의 부도는 우선 외양이 다르다.

따라서 부도라 함은 이와 같이 외양적인 면에서 구별되는 승려들의 묘탑만을 일컫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즉, 불탑이라는 일반 석탑은 대개 사찰을 이룩하는 데 중심이 되어 후세에 이르는 양식의 발전과 계통이 있으며, 혹시 특수탑파라 하여도 일반형에서 변형되어 그 원류는 불탑의 형식이므로 역시 계보가 뚜렷하다. 아울러 부도에서도 전형의 정립과 발달을 볼 수 있고 그 계보를 살필 수 있다.

그러므로 부도를 묘탑이라는 개념에서 불탑과 함께 다루어 고찰하기에는 여러 점에서 어려운 일이며, 특히 각 부도에는 대개 탑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것은 곧 개개인 승려들의 행적은 물론이고 다른 승려와의 관계와 사적(寺蹟), 나아가 당시의 사회 및 문화의 일단까지도 알리는 귀중한 사료(史料)가 되기 때문이다.(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거리가 먼 것 빼고는 복잡하지 않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를 탄다. 대전방면으로 진행하다 천안- 논산간 민자 고속도로 빠져 호남고속도로를 탄다. 계속 진행하여 승주IC에서 빠져나오면 선암사 이정표가 나온다.

제 블로그에 오시면 더 많은 사진들을 볼수 있습니다

<여행자동맹 송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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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잊고 살았던 꿈을 조금이나마 실현해보기 위해서라면 어떨지요...지금은 프리렌서로 EAI,JAVA,웹프로그램,시스템관리자로서 일을 하고 있지만 어렸을때 하고싶었던일은 기자였습니다. 자신있게 구라를 풀수 있는 분야는 지금 몸담고 있는 IT분야이겠지요.^^;; 하지만 글은 잘 쓰지못합니다. 열심히 활동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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