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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내가 직점 담근 김치.
ⓒ 김은주
털이 들어간 외투도 마련하고, 자동차 트렁크에는 스노우 체인을 준비하는 등 겨울이 오기 전에 미리 겨울 준비를 하게 되면 추운 겨울이 와도 덜 당황하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특히 주부에게 중요한 겨울 준비는 김장이다. 김장을 해놓아야 겨울이 와도 걱정이 안 되는 것이다. 야채가 많이 나지 않는 겨울철에 김치만 있으면 반찬 걱정은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동태 사와서 김치 넣고 찌개를 끓여도 되고, 우리 시댁 같은 경우는 김치에 참기름 넣고 물 조금 부어서 자작하게 지져 먹는다. 정말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물론 비결은 김치가 맛있기 때문이다. 또 김치전도 부치고, 찬밥이 많으면 들기름 넣고 김치 볶음밥도 만들고, 여하튼 김치만 있으면 반찬 걱정은 안 해도 되기에 김치는 겨울철에 중요한 반찬이다.

또 김장은 이맘 때 주부들의 가장 큰 관심사기에 사람들을 만났을 때 하는 첫 인사가 김장이다.

"김장은 어떻게 하세요?"
"좀 전에 남편이랑 가서 배추 서른 포기랑 김장거리 사왔어요."
"네 식구 먹는데 뭘 그렇게 많이 해요?"
"친정 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엄마네 것도 하니까 그렇게 됐어요."

학교 급식 자원봉사 갔을 때 매주 만나는 아줌마는 자기네 김장뿐만 아니라 친정 김장까지 한다고 했다. 재치 있고 부지런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유능한 주부였다. 주변에서 보면 젊은 주부들은 자신이 직접 김장을 하지 않고 친정이나 시댁에서 얻어먹는 게 일반적인데, 이 아줌마처럼 친정 김장까지 하는 경우는 정말 보기 드문 경우였다.

"김장 하셨어요?"

이번에는 김장 서른 포기 하는 아줌마가 나에게 물었다.

"지금 가서 10포기 담그려고요."

내 경우에는 3년 전까지는 시어머니에게서 김치를 얻어먹었다. 결혼 후 7년 동안은 그렇게 시어머니가 만들어주는 김치를 먹으면서 김장철이 와도 걱정도 하지 않은 채 김장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생각했다.

시어머니도 그때는 며느리가 나 혼자밖에 없으니까 김장을 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시동생들도 결혼을 하고 두 집 김장이 네 집 김장으로 늘어나자 어머님도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큰 며느리인 나는 시댁에서 너무 먼 곳에 살기에 애들 학교 문제도 있고 해서 김장하러 가기 힘들고, 또 동서들은 직장에 다니므로 김장을 도와줄 형편이 못 돼 어머님 혼자 네 집 김장을 하는 게 힘에 부친 듯 했다.

어머님이 힘들게 만든 김장을 받아먹는 마음도 편치만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난 결심을 했다. 우리 집 김장은 내 손으로 해결하겠다고.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지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배추 한 포기 절일 줄 모르는 내가 김장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총도 없이 전장에 나간 병사처럼 어쩌면 무모해 보일지도 모르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런 거창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데는 나름대로 복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자신 없어하는 것이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것인데, 자주 다니는 식료품가게서 주문만 하면 배추를 절여준다고 했다. 배추 절이는 게 문제였는데 이게 해결되고 나니까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해 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배추 속 만드는 건 친하게 지내는 베테랑 주부가 가르쳐 준다고 했으니 김장, 못할 것도 없겠다 싶었다.

직접 김장을 하는 첫 해,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웠는지 김장이 끝난 후 몸살과 두통으로 3일간 앓아누워야 했다. '김치가 제대로 될까?' '이러다 다 망치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어쩌지?' 등 너무 많은 고민과 의문을 갖고 김장을 한 탓에 끝나고 뒷마무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심하게 아프고 온 몸에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김치는 처음 만든 것 치고는 맛있게 잘 돼 마음은 편했다. 겨우내 먹을 김치를 내가 직접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주부로서 자신감을 갖게 해준 중요한 경험이었다.

역시 올해 김장도 절임 배추를 사서 했다. 절임 배추를 사는 이유는, 절이는 일이 자신 없어서기도 하지만 절임 배추를 사게 되면 일손이 반이나 줄어들어 김장에 대한 부담감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마침 집 가까이 있는 가게는 배추 값에 500원만 더 주면 배추를 절여주었다.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10포기를 주문하고, 대파, 파, 갓, 생강, 마늘 등을 사왔다. 고춧가루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시어머니가 주신 게 있었다. '과연 내가 만들 수 있을까' 하며 자신을 신뢰할 수 없어 지난 두 해 동안은 굉장히 불안했는데 올해는 많이 느긋해졌다. 이런 게 바로 경험이 쌓이면서 생기는 자신감인 것 같았다.

올해 김장엔 설탕 대신 호박죽을 넣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사찰 김장의 특별한 비법은 호박죽이라는 걸 알게 됐다. 설탕의 단맛을 호박이 갖고 있는 단맛으로 대치하면 김치가 훨씬 깊은 맛을 낸다는 정보를 입수해서 나 또한 그렇게 해본 것. 보통 호박죽 자체로 먹을 때보다 찹쌀 갈아놓은 것을 많이 넣어 걸쭉하게 끓였다.

그리고 작년엔 배추 10포기에 무채를 4개나 넣었더니 시원한 맛은 있었지만 김치가 좀 지저분해 보이고 배추 속 넣는 것도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올 해는 무를 두 개만 넣었다. 이렇게 무채의 양을 줄인 것은 내가 다니는 절에서 하는 김장을 도와주러 갔다가 김치 담그기 경력이 오래된 아줌마한테서 배운 것이다.

절임 배추를 사왔겠다, 무채도 두 개로 줄였겠다, 그간 김장을 하면서 쌓인 노하우와 자신감도 있겠다, 그래서 배추 10포기쯤 하였는데, 김장은 역시 큰일이라 아침 일찍 시작한 일이 저녁 늦게야 끝났다.

직접 김장을 하니 시어머니도 좋아하셨다. 어머님은 내가 김치 담근다고 이웃집에도 자랑한다고 하셨다, '우리 며느리는 나 힘들다고 직접 담근데' 하면서. 시댁 동네서 직접 김치 담그는 며느리는 나밖에 없다. 이렇게 어머님께 칭찬 받는 것도 좋고, 김치를 직접 담그니까 솔직히 내 입맛에 맞는 김치를 담게 돼서 좋고, 요리 가운데 최고로 어렵다는 김장을 정복했다는 주부로서의 자신감도 갖게 되는 등 김장을 직접 하니까 좋은 점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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